해야 할 일은 산더미이고 생각하고 정리해야 할 이야기도 태산 같은 걸, 이미 알고 있는데 나는 정신이 없습니다. 매일 아침, 오늘은 다시 새롭게 시작해 보자 다짐하지만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집에 올 때면 똑같은 실수, 똑같은 생각으로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올해 유독 더 힘든 건, 나의 일터인 어린이집에서 만난 아이 때문입니다. 주로 영아반을 맡으며 어린이집 17년 차 선생으로 일해오고 있습니다. 올해 만 1세 반 열 명의 아이들을 짝꿍 선생님과 함께 돌보고 있는데요. 유독 나에게 집착하며 늘 따라다니는 아이가 있습니다. 자리를 잠시라도 비우면 문에 있는 투명창을 통해 내가 올 때까지 밖을 쳐다보며 기다리는 아이지요. 오늘도 변함없이 창에 달라붙어 교실로 돌아오는 나를 보고는 웃습니다.
"갔다 올게, 기다리고 있어요라고 했잖아요." "선생님, 왔다! 하하!" '그래, 선생님은 어디 안 가, 못 가, 퇴근 전까진, 늘 함께 있다고...'
아이들이 주 양육자를 따르고 심한 경우 집착하는 건 당연한 건데 올해는 유독 힘이 듭니다. 물리적으로 나와 정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작은 아이들을 볼 때면 종종 6학년이 된 내 아들이 떠오릅니다. 복직을 한 후로는, 피붙이인 내 아들보다 남의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고 있는.
문득 생각난 내 아들, 훌쩍 커 버린
엊그제, 태어난듯한 나의 반쪽이자 분신 같은 아들은 어느새 초등학교 6학년이고, 곧 중학생이 됩니다.
'언제 이렇게 컸지?'
아기 때부터, 무던한 아이 었던 터라, 시간이 이렇게 흘러가는지도 몰랐습니다. 나는 어린이집에서 연수가 꽤 높은 교사가 되었고 아이는 사춘기가 온 것 같습니다. 어린이집 일은 점점 힘에 부치는데 아이도 이전 같지 않은 것이지요.
물어보는 것에는 모두 '몰라, 그냥, 왜?' 정도로 반응하고, 아빠랑은 자꾸 말싸움을 하기도 하고, 머리 스타일도 신경 쓰고요. 예전처럼 골라주는 대로 옷을 입지 않고요. 엄마이지만 컨트롤할 수 없는, 아이의 사소하고 소박한 행동들을 보면서 우리가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합니다.
아이도 분명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을 텐데 아이 앞에서 괜히 힘들다는 말을 해볼 때가 있습니다. 아들에게 ‘엄마 조금 힘들다’고 말하자마자 바로 후회할 걸 알면서도 그렇게 솔직하게 말했습니다.
"엄마, 힘들어요?" “응, 엄마 지금 많이 힘들다.”
사춘기라 엄마 마음에는 관심도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아들이 나를 살펴주기 시작하는 걸 느꼈습니다. 엄마의 상황을 살피고 공감하고 이해해 주다니, 언제 이렇게 큰 건지.
어린이집에서는 좋은 교사가, 가정에서는 좋은 엄마, 듬직한 엄마로 살고 싶었는데 조그만 어린아이에게도, 사춘기 아들에게도 동시에 좋은 사람으로 살기가 참 어렵다 생각됩니다.
엄마 같은 선생님
친구 같은 엄마
늘 이 생각을 품지만 쉽지 않은 것이지요. 어린이집에서 아직 손이 많이 필요한 유아들에게 모든 에너지를 다 쏟고 나면 정작 집에서 내 사랑스러운 아들에게는 같은 에너지를 쏟아줄 수 없습니다. 좋은 말을 많이 해주고 싶은데 힘든 말만 나오고요.
사춘기 아들의 엄마와 어린이집 선생님, 그 사이
이렇게 힘든 이야기를 하면서도 나는 오늘도 어린이집 교사로서 작은 꿈을 꾸어 봅니다. 친구 같은 엄마, 엄마 같은 선생님 역할을 잘 해내는 교사들을 발견해 아이, 부모, 선생님이 모두 행복한 어린이집을 세우고 싶습니다.
사춘기 아들에겐 ‘여전히 꿈과 일로 먹고사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어린이집 17년 근무 경험으로 얻은 인사이트와 지혜로 믿음직스럽고 실력 있는 어린이집을 꿈꾸고 있는 것이지요. 아이들도 어렵고, 사춘기 아들은 더 어렵지만 내가 맡은 이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이 결국에는 듭니다.
애쓰고 공들인 나의 뒷모습을 보고 자라는 이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삶.
(작년 작가 응모 공모글 저장 글 발행 글입니다, 날짜가 새롭게 나오내요.ㅎㅡㅡ, 팝업 해당 글 발행 후 저장 글을 발행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