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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실남 Aug 02. 2020

16년 동안 못 뚫던 고음을 6개월 만에 뚫었다.

맞습니다. 사실 저는 고음병자입니다.

2004년 내가 중1이 되던 해, 전국에 오락실 노래방, 일명 '오래방'(동전 노래방의 전신) 붐이 불었다.


당시 나는 노래를 아주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노래 부르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학교만 마치면 친구들과 오락실 노래방으로 달려갔다. 1, 2시간을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당시 우리 학교는 크게 국민누나 김경호를 대표로 하는 고음파와 대장님 박효신을 필두로 하는 소몰이파로 나뉘어 있었다. 고음이 잘 되지 않던 나는 자연스럽게 소몰이파에 합류하게 되었다.


고음파 애들이랑 오래방을 가게 되면 항상 스트레스를 받았다. 나는 음이 잘 안 올라가서 키(key)를 항상 몇 키 낮춰 부르거나, 비교적 음이 낮은 곡인 김동률의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같은 노래들을 부르곤 했다. 고음파 친구들은 그런 나를 은근히 무시했다.


'야, 사내 새끼가 무슨 키를 낮추냐. 이 형님 봐봐. 노래는 이렇게 원키로 불러야 제 맛이지!' 하면서 고음 노래들을 시원하게 지르는 친구들을 보면 짜증 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다. 부러운 마음을 애써 감춘 채, 나는 그 친구들을 '고음충', '고음병자'라 폄하했다. '고음 소리를 잘 낸다고 노래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여자들은 고음충들을 싫어한다.'며 애써 자기 위안을 했지만, 그래도 마음속 깊은 곳에는 '나도 고음을 뚫고 싶다.'라는 열망이 있었다.




맨날 다니던 오래방 때문이었을까. 고등학생 때, 나는 운 좋게 밴드부 보컬 오디션에 합격했다. 나의 첫 공연 노래는 휘성의 '안 되나요'였다.(밴드부가 무슨 휘성 노래냐고? 이것과 관련된 얘기는 기회가 되면 다음에 언급하겠다 ㅎㅎ)


교장, 교감 선생님, 다른 여러 선생님,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휘성의 '안 되나요'를 불렀다. 클라이맥스 고음 부분을 부를 때였다.

"안되나....요효(삑사리)    (전교생 웃음)"


전교생이 나를 비웃었다. 어떻게 밴드부 보컬이 삑사리를 내냐고... 저것도 제대로 못 하냐고...


고2 축제 때 공연을 할 때도 비슷한 망신을 당했다. 윤도현의 담배가게 아가씨를 부르던 중이었다. 절정 부분의 '아자자자자자자자자' 하는 부분에서 또 삑사리가 나서 이번에는 학부모들까지 내 노래를 듣고 폭소했다.


두 차례의 부끄러운 사건을 겪고 나니, 더 이상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두려웠다. 고음을 지르는 것이 두려웠다. '다시는 노래를 부르지 말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노래는 내가 워낙 좋아하는 취미였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은근히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고작 고음 때문에 노래를 포기할 순 없어. 고음 그까짓 거 한 번 뚫어보자. 내가 죽기 전에는 김경호의 '금지된 사랑'이나 더크로스의 'Don't cry' 같은 노래 한 번 불러봐야 하지 않겠어?'


그때부터 고음을 뚫기 위한 나의 열정이 시작되었다.




대학교에 가서도 노래를 계속 불렀다. 적어도 1주일에 한 번은 동전 노래방(일명 동노)에 가서 노래 연습을 했다. 당시 유명하던 김명기 보컬 강좌를 들으면서 이론 공부도 했다. 근데 아무리 노래를 불러도, 노래 공부를 해도 노래 실력이 전혀 늘지를 않았다. 특히 고음 부분이 문제였다. 적어도 '2옥타브 시'까지는 음역대가 되어야 시중에 있는 가요를 편안하게 부를 수 있는데 내 음역대는 2옥솔, 컨디션 좋으면 2옥라 정도가 한계였다.


대학교 2학년 때, 독학의 한계를 느끼고 보컬학원에 다니기로 결정했다. 4개월 정도 다녔나? 오히려 노래실력이 퇴보했다. 선생님이 고음 부분은 어느 정도는 타고난 부분이라서 자기가 해결해 줄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 정도 음역대면 괜찮지 않냐고 그냥 만족하고 살라고 했다.


하지만 난 만족할 수 없었다. 이대로 포기하면 나 자신한테 지는 기분이 들었다. 보컬 선생님의 말을 듣고 더 오기가 생겼고, 고음에 대한 내 열망은 더 커졌다.




26살, 군대에 입대했다. 훈련소에서 내 눈길을 끈 것은 조교들의 발성이었다. '어떻게 저렇게 쩌렁쩌렁 소리가 울릴 수 있을까? 혹시 노래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까? 조교에 지원하게 되면 저런 발성들을 가르쳐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조교에 지원하게 되었고 합격했다. 하지만 아무도 나에게 발성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선임들도 전부 자기 스스로 터득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조교 발성과 노래실력은 상관관계가 거의 없었다.(발성학적으로는 어느 정도 관련은 있다.ㅎㅎ 기회가 되면 다음에 설명하겠다.) 노래를 엄청 잘 부를 것 같았던 쩌렁쩌렁 울리는 발성을 가진 선임들은 대부분 음치였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었다. 내가 아직 깨닫지 못했을 뿐, 어딘가 고음을 뚫는 방법이 있을 것 같았다. 항상 일과가 끝나면 군대 선후임들과 같이 부대 노래방에 가서 노래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난다.




29살, 그날도 어김없이 차를 운전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갑자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기존에 내가 했던 발성의 근본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아예 발성을 하는 방법 자체를 바꿔보는 건 어떨까?'


그래, 기존에 하던 방법으로 계속 연습을 하면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수학에서 곱셈, 나눗셈 개념을 배워야 수학 실력이 더 늘 수 있는데, 덧셈, 뺄셈 문제만 죽어라 풀면서 수학 실력이 늘기를 기대하는 느낌이랄까? 아예 새로운 방법으로 노래를 불러보기로 했다.


노래를 부르면서 입모양, 혀 위치를 바꿔보기도 하고, 입을 크게 벌려서 노래를 부르기도 해 보았다. 후두를 떨어트려 보기도 하고, 바보 소리를 내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해 보았다.


'가성으로 고음을 소리를 낼 때에는 상대적으로 목이 편하니, 가성과 진성을 섞어보는 건 어떨까?'


한 번 시도를 해보았다. 헉... 평소에 안 올라가던 고음 음역대 소리가 났고, 난 주차장 안에서 환호성을 질렀다. 유튜브에서 찾아보니, 그건 '믹스보이스'라는 것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두성과 흉성, CT근(고음근)과 TA근(저음근)의 적절한 비율을 섞어서 내는 소리였다.


믹스보이스에 대한 내 깨달음을 바탕으로, 내 나름대로 유튜브를 보면서 열심히 노래를 연습했으나 금방 한계에 봉착했다. 일단 내가 소리를 맞게 내고 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잘못된 습관으로 계속 노래를 부르면, 예전처럼 또 몇 년의 시간을 낭비할 것 같았다. 그렇다. 난 내 발성을 제대로 듣고 피드백해 줄 훌륭한 보컬 선생님이 필요했다.


지난 10월, 보컬 선생님을 찾고 또 찾다가 유튜브에서 내가 지향하고자 하는 보컬 스타일로 강의를 해주시는 선생님을 찾았고, 바로 연락을 했다. 운이 좋게도 레슨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학원이 내가 사는 지역에서 5시간 거리나 되는 서울에 있었지만, 거리 따위는 나의 노래에 대한 열정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보컬 레슨'을 받기 위해 왕복 10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2주에 한 번씩 왔다 갔다 거렸다. 주변 사람들이 '너 정말 미쳤냐. 그 비싼 돈과 시간을 낭비해가면서 굳이 노래를 배울 필요가 있어? 차라리 동네 보컬학원에 다녀.'라고 얘기했지만, 제대로 된 보컬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는 것이 가장 빨리 실력이 느는 길임을 알고 있었기에 그들의 말을 흘려듣고 보컬학원을 열심히 다녔다.


기존의 보컬 선생님과 달리 새로운 보컬 선생님은 노래를 발성과 노래로 나누어서 지도해주셨다. 발성도 성구별(두성, 믹스보이스, 흉성)로 발음별(열린 발음, 닫힌 발음)로 나누어서 코칭해주셨다. 실전뿐만 아니라 이론적인 부분들도 많이 점검해주셨다. 레슨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면 밤 12시가 넘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배우는 즐거움이 워낙 컸기 때문에, 10시간 왕복의 피곤함 따위는 충분히 견딜 수 있었다.


레슨을 받고 오면, 2주 동안 선생님이 내준 숙제들을 연습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발성 음악 파일을 틀고 발성을 연습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서도, 아파트 주차장의 차 안에서 두성, 믹스보이스 발성 연습을 했다. 3월에 코로나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학원을 그만두었을 때도 나는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매일 최소 20분 이상은 발성 연습을 했다.


정말 미친 듯이 노래 연습을 했고, 난 지난 4월 나는 6개월 만에 '3옥타브 도'까지 음역대를 뚫었다. 아직 비브라토(=바이브레이션)도 불안정하고 소리에 텐션(=긴장)을 잘 유지 못하는 등 실력이 많이 부족하지만, 나에게는 의미가 있는 사건이었다. 무려 16년 간 동안 간절히 바랐던 나의 로망이 실현된 것이다!



어제 어릴 적 내가 그토록 부러워했던 고음충이라 폄하했던 친구들의 대표곡 더크로스의 'Don't cry'를 불러보았다. 예전 같으면 꿈도 못 꿨을 노래지만, 지금이라면 왠지 가능할 것 같았다.

Don't cry 교실남 커버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된다! 더크로스 형님들에 비하면 반의 반의 반도 못 따라가지만, 그래도 나는 내 노래가 마음에 든다. ㅋㅋㅋ 다른 사람들이 보면 '뭐, 별 거 아닌 일로 호들갑을 떠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 녹음이 나에게는 참 의미가 크다. 첫 번째, 일단 이 노래는 지난 16년 동안 노래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노력한 뒤에 맺은 결실이다. 그냥 '난 원래 고음이 안 되나 보다.'하고 포기할 수도 있었지만, 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고음을 뚫었다. 두 번째, 이번 일을 겪고 나서 '꾸준하고 의식적인 노력과 올바른 방법만 있으면 못 이룰 것이 없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16년 동안 못 뚫던 고음을 단 6개월 만에 뚫었다. 그냥 노력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꾸준하고 의식적인 노력과 올바른 방법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좋은 스승도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 편에서는 내가 노래실력을 어떻게 단기간에 빨리 늘릴 수 있었는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드리고자 한다.



P.S. 아... 독자님들, 원래 8시 전까지 올려야 하는데 늦어서 죄송합니다... 과거 추억 회상한다고 저 혼자 feel에 취하다가 그만... ㅠㅠ 평온한 주말 보내시길~^^


#보컬 #고음충 #고음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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