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우린 잠자리에 들기로 했다. 2시간쯤 지났나? 혹여나 이 훈련병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까 봐 난 잠을 한숨도 못 자고 있었다. 15~20분에 한 번씩 눈을 떠서 맞은편에 누워 있는 훈련병의 상태를 계속 확인했다. 시간이 지나 훈련병의 상태를 다시 확인하는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훈련병은 몸을 반쯤 일으킨 상태였고, 마치 누군가를 바라보는 것처럼 어딘가를 계속 응시하고 있었다. 음산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나는 훈련병에게 말 한마디 걸지 못했다. 혹여나 그 순간에 말이라도 걸면, 큰 사고가 하나 터질 거 같았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났다.
1시간이 지나도 훈련병의 자세는 변함이 없었다. 마치 무언가와 접신한 느낌이었다.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내어 훈련병에게 말을 걸었다.
"훈련병, 김정환(가명) 훈련병. 지금 뭐 하는 겁니까?"
"(...) 조교님... 잠이 안 옵니다... 계속 누가 저를 죽이려는 거 같습니다. 너무 힘들고 미칠 거 같습니다."
"훈련병, 괜찮을 겁니다. 아무도 훈련병을 해치지 않습니다."
훈련의 심리 상태를 안정시키기 위해, 또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눴다. 가정사, 훈련소에서 있었던 일들, 대학생활 등등 다양한 얘기를 나눴다.
어느덧 아침이 밝아왔다.
"00조교, 중대장"
"Go ahead('말씀하세요'라는 TRS(무전기)은어)"
"지금 그 훈련병 데리고 중대장실로 오세요."
"Roger(라져)"
중대장님은 당시 30대 초반으로, 서울대 대학원 심리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심리학도는 어떤 식으로 면담을 진행하는지 궁금했다.
"(책상을 탕 내리치며) 훈련병!"
"(왼쪽 손을 덜덜 떨며)네, 김정환 훈련병.."
"(호통을 치며) 아까 중대장이 손 떨지 말랬지?! 너 일부러 중대장한테 손 떠는 거 보여주는 거지?"
"(울먹거리며) 아닙니다. 멈추려고 해도 멈추지 않습니다..."
"손 떨지 말라고 분명히 얘기했다. (계속 손을 떨자) 손 떨지 마!"
"(울면서 떨리는 왼쪽 손목을 부여잡으며) 중대장님. 정말로 이게 제 마음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심리학도라고 해서 따뜻한 눈빛으로 내담자의 말을 경청하는 상담자를 상상했는데, 중대장님의 방식은 달랐다. 심리학도가 아닌 형사로 착각이 들 정도로 중대장님은 훈련병이 펑펑 울 때까지 심하게 몰아붙였다. 나중에 중대장님은 이 훈련병이 군기피를 목적으로 일부러 정신병에 걸린 연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판단하려고 좀 세게 나갔다고 말씀하셨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다른 방법도 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훈련병과의 면담이 끝나고 나는 중대장님을 따로 찾아갔다.
"중대장님, 그냥 오늘도 제가 이 훈련병 데리고 있어도 되겠습니까?"
"그냥 들어가서 쉬지. 왜?"
"너무 걱정이 됩니다. 극단적인 선택을 또 하지는 않을지... 어제 훈련병 과거 얘기를 들으니, 더 마음이 쓰입니다."
"(내 이름을 부르며 친근하게) 00아. 네가 아무리 옆에서 상담하고, 옆에서 도와주고 해도 저 훈련병은 변하지 않을 거야. 일단 저 친구는 단순한 우울증이 아니야. 선천적으로 뇌에 이상이 생겨서 생긴 우울증이지. 저런 경우는 치유하기 힘들어."
"그럼 평생 저렇게 살아야 한다는 겁니까? 너무 잔인한 거 아닙니까?"
"평생 그렇게 살아야지... 거의 90% 이상은 치유가 힘들어. 그러니까 너도 쓸데없는데 신경 쓰지 말고, 밖에 나가서 여자친구도 사귀고 해. 왜 계속 훈련병한테 마음을 쓰냐?"
"음... 중대장님의 말씀을 저는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저는 사람은 누구나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우울증도 충분히 극복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 되는 거는 안 돼~~ 쨌든 저 훈련병 걱정은 하지 말고, 얼른 생활관 들어가서 쉬어. 잠도 못 잤을 텐데..."
그날 오후 김정환 훈련병은 교육상황실(조교들이나 소대장이 명령을 내리는 곳)에서 조교가 한 눈 판 사이, 우연히 발견한 커터칼로 한 차례 더 자살시도를 했다. 그리고 다시 항의전대(군병원)로 실려갔다. 동기의 말을 들어보니, 대대장님은 0조교(나)가 괜히 이 훈련병의 말을 계속 들어줘서 이렇게 된 거 아니냐고 화를 냈다고 한다.
'하... 빌어먹을...'
중대장님의 말대로 이 훈련병은 유전적으로 절대로 변할 수 없었을까? 대대장님의 말대로 이 훈련병이 다시 자살시도를 한 것은 내 탓이었을까?
나의 생각은 다르다. 중대장님이 조금만 더 따뜻하게 훈련병을 대해줬다면 어땠을까? 대대장님이 기계적이고 사무적으로 훈련병을 대하지 않고, 좀 더 인간적으로 대해줬다면 결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지금 그 훈련병은 어떻게 살고 있을지.. 가끔 궁금하다.
#훈련병 #군대상담 #자살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