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2세가 우리 소대 훈련병으로 왔다.

by 교실남

몇 년 전, 조교로 군 복무할 때 있었던 일이다.


그날은 새로운 훈련병들이 입영한 날이었다.

"0조교, 큰일 났다. 잠시 일루와 봐."


"네, 소대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 사실 큰일은 아니고, 오늘 훈련병들 인적사항 보니깐 대기업 회장 아들이 우리 소대에 있네? 그냥 알고만 있어~"


와... 말로만 듣던 대기업 회장 아들이라니... 처음 조교에 지원했을 때, 선임들이 조교가 되면 유명한 사람들의 자녀나 연예인, 가수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 훈련병은 이름만 대면 아는 커피 전문점 회장님의 아들이었다. 사실 궁금했다. 대기업 회장의 아들은 어떻게 생겼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성격일지. 한편 걱정이 되기도 했다. 가끔씩 뉴스에 나오는 것처럼 대기업 회장 아들이 사회에서의 권력을 사용해서 나에게 갑질을 하지 않을까. 나는 영화 베테랑에 나오는 조태오(유아인)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소대원들이 모여있는 방으로 갔다.



나는 소대원들의 이름과 얼굴을 기억하고자 한 명, 한 명씩 호명했다.


"김지산 훈련병"


"네, 김, 지, 산 훈련병"


"임영채 훈련병"


"네, 임, 영, 채 훈련병"


그 훈련병의 차례가 되었다.


"오정명(가명) 훈련병"


"네, 오, 정, 명 훈련병"


큰 목소리로 관등성명을 대는 그 훈련병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다. 베테랑의 유아인 같이 오만한 말투와 불량한 자세 등을 상상했으나, 그 훈련병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큰 키와 다부진 몸, 엄청 성실해 보이는 인상.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선한 농부의 느낌이랄까?




그 뒤로 나는 오정명(가명) 훈련병을 계속 예의주시했다. 혹시나 주변 전우들에게 피해를 입히지는 않는지, 특이행동을 하지 않는지 관찰했다. 하지만 이 또한 나의 고정관념이었음이 판명났다. 오정명 훈련병은 항상 먼저 나서서 솔선수범하는 훈련병이었다. 조교가 시키는 일, 소대에 필요한 일들을 묵묵히 잘 수행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투 뜀걸음 때 체력이 떨어진 전우의 총기를 대신 들어주거나 뒤에서 밀어주는 등 배려심도 깊었다. 주변 동료를 도울 수 있을 만큼 체력 또한 좋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오정명 훈련병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었고, 이 훈련병을 조교로 스카웃하기로 마음먹었다. 식사대기 시간에 따로 이 훈련병을 불러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훈련병, 병영생활 어떻습니까? 지낼만합니까?"


"네, 오정명 훈련병. 지낼만합니다. 다만 외부 소식을 접할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병사들도 신문을 보게 해주는데... 훈련병들도 국민으로서, 알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


'(속으로) 이놈 봐라, 물건일세. 역시 유학파라 생각이 남다른 건가?'


"사실 병영 문화를 바꿔보고 싶어서, 장교가 되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군대는 되도록 빨리 갔다 오라고 하셔서, 이렇게 병으로 왔습니다."


"음... 병영 문화를 바꾸고 싶다라... 혹시 조교가 되는 건 어떻게 생각합니까? 본 조교 같은 경우도, 훈련병 때 봐왔던 폐단들을 바꾸기 위해서 조교에 지원했습니다. 본 조교와 함께 일하면서 병영 문화를 바꿔보는 건 어떻습니까?(지금 생각하면 오글오글~~)"


"(고민하는 표정) 아... 조교님 저에게 조금만 고민할 시간을 주십시오."




이틀 뒤,


"훈련병."


"네, 오정명 훈련병"


"고민은 다 했습니까?"


"조교님, 저 못 할 거 같습니다..."


"왜? 무슨 이유라도 있나?"


"주변 동기들이 그러는데, 조교생활이 무척 힘들다고... 저는 역량이 부족해서 안 될 거 같습니다..."


"(황당해하며) 아니, 그저께까지만 했어도 병영문화를 바꾸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그 정도 힘든 건 어느 정도 감수해야지."


그 이후로 2~3번의 설득을 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 기왕 병으로 온 김에, 편한 보직으로 가서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1~2주의 시간이 지나, 어느덧 보직 발표날이 다가왔다. 공군 같은 경우, 특기(보직)를 특기적성검사(아이큐 테스트+수능 합쳐놓은 느낌)라는 시험을 통해서 뽑는다. 특기적성검사 시험을 잘 치면 자신이 원하는 보직에 들어갈 확률이 높다. 반면 시험을 못 친 훈련병들은 대부분 훈련병들이 꺼리는 보직으로 빠졌다.


오정명 훈련병의 결과가 궁금했다.


'당연히 해외 유학파고, 어릴 때부터 교육도 많이 받았을 테니 좋은 보직을 배정받았겠지?'


하지만 이번에도 내 예상을 벗어났다. 오정명 훈련병은 특기적성검사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고, 대부분의 훈련병이 꺼리는 헌병 보직을 받게 되었다.


오정명 훈련병을 따로 불렀다.


"훈련병,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 조교님...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다시 돌리고 싶습니다... 그때 조교 한다고 할 걸... 아..."


그렇게 그는 헌병이 되었다.




커피만 보면, 오정명 훈련병이 생각이 난다. 농땡이를 피울 거 같았으나 성실했던, 조교를 하고 싶을 것 같았으나 하지 않았던, 시험을 잘 칠 것 같았으나 못 쳤던... 나에게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준 그...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원래 그 친구는 그런 친구였는데, 나 혼자 이름표를 붙이고 멋대로 생각한 거 같다.


오늘도 그를 떠올리며, 사람에게 함부로 이름표를 붙이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이름표 #군대 #재벌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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