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14 토요일 2시. 아내와 함께 무려 2시간 반 동안 신박사님과 웅이사님의 빡독 라이브 강연을 시청했다. 단기기억을 장기기억으로 전환시키기 위해, 인생에 도움이 되는 좋은 내용들을 내재화하기 위해, 나에게 울림을 준 내용들로 요약(=Output)을 해보려고 한다.
질보다는 양이다.
우리는 행동을 취하지는 않고 최선의 접근법을 생각해내는 데만 몰두할 때가 많다.볼테르는 말했다. '최선은 선의 적이다.' 사람들은 유튜브에서 빠르게 살 빼는 전략,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 노래 실력을 가장 빠르게 늘리는 방법을 찾지만 이를 실제로 실천에 옮기는 경우는 드물다. 실제로 그대로 실천에 옮기더라도 양이 뒷받침되어주지 않는다면 질은 따라올 수가 없다.
예를 들면 노래 같은 경우, 특히 느낌과 감각에 의존하는 분야이기 때문에 다양한 시도(=양)가 필요하다. 혀를 앞으로 내밀어본다던지, 후두를 내려본다던지, 목을 조여본다던지, 연구개를 들어본다던지 여러 가지 시도들을 통해(=양) 경험치가 쌓이게 된다. 그리고 그 경험들은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과 결합하게 되고 의식적 반복을 통해 결국 나의 실력은 향상된다.(양→질)
실력과 지위를 혼동하지 마라.
이 말을 듣자마자 바로 우리 교장선생님이 떠올랐다... '라떼는 말이야.' 하시면서 매일 우리를 훈계하시는 교장선생님... 1990년대, 2000년 대의 교육을 그리워하시고 지향하시는 교장선생님은 '수학, 영어 경시대회 부활', '학생 성적순으로 세워서 졸업식 때 10등까지 상 주기', '영어 말하기, 작문대회 부활' 등을 부임초에 주장하셨다. 더 큰 문제는 일방향적인 소통방식에 있다. 우리가 10을 말하면 당신은 90을 말하신다. 그리고 그 10조차 들으려고 하시지 않는다. 교장 선생님께 토드 로즈 교수님의 '평균의 종말'을 빌려드리고 싶지만 아마 이렇게 말씀하실 거 같다. '이런 책 읽지 말고 고전 인문학을 위주로 읽는 게 좋아. 고전이 최고야!' (평소에 항상 강조를 하심...)
내 또래의 많은 친구들이 관리자(교장, 교감)를 목표로 승진의 길을 가고 있다. 하지만 나는 교장(=지위)보다는 실력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교육공무원의 승진제도는 실력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내 동기, 후배들이 교장이 되어 있을 때, 평교사 지위를 유지하면서 뛰어난 실력으로 많은 꿈나무 교사들에게 영감을 주며 일선 교육현장에서 활약하는 것이 내 꿈 중에 하나이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애들이 자신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새로운 것을 안 배우고 포기하는 교사들이 너무나 많다. 너무 안타깝다. 나이가 들더라도 학생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지금 내가 겪는 고통은 고통이 아닐 수 있다.
우리는 항상성에 의해 Comport Zone(컴포트 존)을 벗어날 때 고통을 겪는다. 공부를 미친 듯이 하고 나면 머리가 아프고, 근력운동을 열심히 하면 팔, 다리가 아프지만 이는 궁극적인 고통이 아니다. 자고 일어나면 뉴런들 간의 연결고리 강화,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의 전환 등을 통해 우리의 지적능력은 업그레이드되어있을 것이고 전날 운동으로 세포가 파괴된 자리에 체세포 분열로 새로운 세포가 두배로 늘어나 우리의 근육은 강화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단기적으로는 고통을 얻지만 장기적으로는 성장의 기쁨을 얻는다. 그리고 이 패턴이 반복되면 단기적인 고통에서조차(=신호) 성장에 대한 기대감(=열망)으로 인해 기쁨을 맛보게 된다. 마치 드래곤볼의 나메이크인이 죽을 위기를 넘길 때마다 점점 강해지는 것처럼...
사고 실험해보기
정확히 웅이사님의 몇 차의 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으나 웅이사님이 감정에 휩싸여 회사를 나누자고 말했을 때 신박사님의 한마디가 웅이사님을 정신 차리게 만들었다. '그럼 직원들은 어떡하려고?'
감정에 휩싸여 이성의 힘이 약해졌을 때,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 등 여러 가지 선택의 상황에서 우리는 사고 실험을 해볼 필요가 있다. 주로 내가 쓰는 사고 실험의 질문은 '내가 이 행동을 10년 간 지속했을 때 10년 뒤의 결과는 어떨까?'이다. 내가 컴퓨터 게임을 하루에 2시간씩 10년간 한다면 10년 뒤 모습은 어떨까? 일주일에 소주를 2병 정도 마신다면 10년 뒤에 나의 건강상태는 어떨까? 내가 계속 이렇게 감정 컨트롤을 한다면 10년 뒤 나의 인간관계는 어떻게 변해있을까? 이러한 사고 실험은 나의 중심을 시스템1(=감정, 무의식)에서 시스템2(=이성, 의식)으로 끌어올려준다. 투쟁/도피 반응의 편도체보다는 이성을 담당하는 신피질이 활성화되어 우리는 보다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
Extreme Ownership
직원들의 가족까지도 생각하시는 신박사님의 극한의 책임감에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물론 학교는 기업이 아니다. 하지만 교사는 아이들에게 교사의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 문제는 그 책임의 범위가 어디까지냐이다. 많은 선배 교사들이 나에게 이런 류의 조언을 해주셨다.'어차피 학부모들이랑 애들한테 잘해줘 봤자 아무 소용없어. 결국 일이 터지면 학부모는 애들 편이지 교사는 나몰라라 하거든. 매뉴얼대로만 하면 되지 굳이 그 이상으로 일 만들 필요가 없어!' 사실 이분들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지금 교사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바닥을 치고 있다. 어떤 학부모는 상황과 맥락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애들의 말만 듣고 선생님한테 전화를 해서 다짜고짜 화를 낸다. '선생님! 왜 우리 애한테 뭐라고 했어요? 선생님이 어떻게 우리 애한테 그렇게 말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회의적이고 소극적인 태도로는 지금 현상황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먼저 학부모와 학생, 교사 간에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신뢰회복의 첫 번째 단계는 소통이다. 교사인 내가 어떤 교육관을 가지고 있고 평소에 어떤 수업방식으로 수업을 하는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학부모님들에게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학부모님들이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도 피드백이 필요하다. 두 번째 단계는 실력을 늘리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는 교육자로서의 전문성이 부족하다. 수능은 남들보다 좀 잘 봤을지는 몰라도 그 뒤는 엉망이었다. 학생을 어떻게 가르치는 게 효율적 일지, 어떤 방식으로 훈계를 하는 것이 학생에게 도움이 될지 등 최신 이론을 바탕으로 한 사회과학 서적을 읽고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 번째 단계는 책임 범위의 확장(학생→부모)이다. 궁극적으로 아이들이 변하려면 부모교육이 핵심이다. 연구에 따르면 교사가 1년 동안 아무리 애를 써도 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은 10% 내외이다. 하지만 부모의 영향은 60~70%이다. 압도적인 차이다. 학부모에게 뇌피셜이 아닌 정확한 사회과학 실험에 근거한 교육지식 전달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선 앞의 두 가지 소통, 실력이 필수적이다.
나름 1년 동안 부모교육을 위해 준비를 많이 해왔고, 많이 부족하지만 올해부터는 실행에 옮겨보려고 한다. 오프라인 교육은 사실상 제약이 많기 때문에(주변 선생님의 눈치, 혹여나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 주말에 온라인을 통해 학부모 교육을 실시하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이미 반 학생들과는 매일 아침 8시에 일주일째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이미 해본 경험(아이들과의 라이브 방송)이 있기 때문에 학부모들과 라이브 방송도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사업을 할 때 돈을 보고 하지 마라. 내적 동기가 충만해야 한다.
사업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 통용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내 주변에는 슬럼프를 겪고 있는 친구들이 많다. 'SKY를 들어가고 대기업에 들어가면 해피엔딩이고 다 좋아지고 행복해질 줄 알았는데 허무하네...' 남들 다 부러워하는 명문대학교를 나와 대기업에 다니는내 친구의 말이다.
감히 분석하자면 이 친구는 그동안 결과 위주의 삶(좋은 대학 입학, 좋은 기업 취직)을 살았다. 결과 중심주의 삶은 단기적이다. 결과를 이루면 끝이다. 허무하다. 그동안 목표를 이루기 위해 형성했던 좋은 습관들은 목표를 달성하는 순간 사라진다. 많은 고3 수험생들이 좋은 대학을 들어가려고 열심히 공부를 하다가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공부를 거의 안 하게 되는 이치와 같다. (물론 취업이라는 목표로 인해 다시 공부를 하게 되지만..)
그렇다면 내 친구가 이 지독한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없을까?
해결책은 정체성 위주의 삶(=가치를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다. '나는 좋은 대학에 갈 거야. 좋은 직장에 취직할 거야. 돈을 많이 벌 거야.'가 아닌 '나는 훌륭한 교육자가 될 거야. 나는 어제보다 오늘 나은 사람이 될 거야. 난 다른 사람들이 최고의 자아가 되는 자유를 얻도록 돕고 싶어.'의 삶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정체성 위주의 삶(=가치를 따르는 삶)은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하다. 그리고 중간중간 작은 목표를 달성할 때마다 나의 정체성은 더 강해진다. 성취감이 들고 내적 동기가 충만해진다.
아마 신박사님이 사업을 할 때 돈을 보고 하지 마라고 한 이유에는 이런 기저 생각들이 숨어있었을 것이라고 감히 짐작해본다.
정리하다 보니 상당히 글을 많이 썼다. 사실 그동안 나는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서 그리고 지나친 완벽주의 성향 때문에 글을 쓰지 않았다. 매일 계획만 하고 생각만 할 뿐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 양보다는 질을 중요시한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최소 일주일에 2편씩은 글을 써보려고 한다. 질보다는 양이다. 양이 질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