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장 수술비 1천만원 후엔씨의 사연과 막걸리 담그기 체험
91학번
체류탄 지랄탄 화염병 데모
이를 닦기 위한 것이 아닌 치약의 다른 용도에 대해 진지하게 들었던거 같다.
한번은 종로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종로 대로는 넥타이를 맨 젊은 직장인들과 학생들로 가득 매워졌다. 집회가 처음이었던 그날 거대한 군중의 에너지에 가슴이 떨렸다. 여자였고 집회 경험이 없던 나와 내 친구들은 비교적 안전한 후미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순간 앞에 있던 선봉대가 흩어지면서 안전하게 여겼던 우리근처로 지랄탄이 떨어졌다. 순간 사방에 퍼진 독가스.
친구들은 사방으로 흩어졌고 나는 몸을 가누지 못하고 그자리에 쓰러졌다. 숨을 쉴 수없었다. 그 때 두명의 남학생이 나를 발견하고 내 양팔을 각각 잡아 질질 끌어 종각 뒤 어딘가로 피신을 시켜줬다.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된 나는 말 그대로 정말 질질 끌려갔다. 그 학생들은 딱 봐도 어설픈 내게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두려움에 대한 강한 본능을 느꼈다 .
그 뒤로 나는 더이상 데모현장에 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리 세대가 데모에 찌들고 암울했던 것만은 아니였다. 가끔 어린 친구들에게 자랑하듯 했던 말처럼 91학번은 여러면에서 복받은 세대였다. 모든 것이 풍족했고 여유가 있었다. 공대생, 학점이 2점대였음에도 나는 취업 걱정을 하지 않았다.
나는 학교 근처에서 하숙을 했다. 하숙집 내 룸메이트는 의과생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담배에 쪄들어 들어와서 내게 철거촌 판자촌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했다. 그녀는 대학생활의 재미에만 빠져 있는 나에 대해 가끔 답답한 마음을 표현했다.
'너같은 사람들 때문에 세상이 바뀌질 않는다'고
'너가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아픔들이 세상이 있다'고.
철거촌 데모현장에서 돌아온 담배냄새에 찌든 그 친구는 나를 머리 빈 날날이 정도로 생각했을까
그럴 때마다 나는 오히려 반발심이 작동하여 더 엇나가는 말들을 뱉어냈다.
'글쎄.. 나는 말이지.. 나는 세상의 밝은 것만 보고 살고 싶어. 굳이 왜 어두운 것들에 눈을 돌리고 아파해야 하지? 나도 세상에 아픔이 있다는 것 알아. 그렇지만 나는 좋은 것만 보고 행복하고 싶어'
그렇다고 내 삶이 그렇게 행복한 핑크빛이었냐면... 글쎄다.
가끔 어떤 친구들은 말한다
'선생님이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은 선생님의 삶이 안정적으로 잘 사니까 그러는 거라고 봐요.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기초생활 수준도 안되는 삶을 살고 있어요.'
'경아샘은 어려움 없이 사니까 그렇게 밝게 세상을 보는데 그게 보는 사람에 따라 불편할 수 있어요'
그럴때마다 생각하곤 한다. 내가 우리나라 평균 이상의 삶을 살고 있는걸까?
어쩌면 나는 연기를 잘하고 있는지 몰라
마흔 아홉
만으로는 아직 마흔 일곱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아픔에 눈을 들어도 좋은 나이인지 모른다
재작년 제주에 예멘 난민들이 들어왔을 때
환경단체 팀원이셨던 선생님 한분이 '경아샘에게 맞는 봉사활동이 있어서 말이야...'라며 한국어 봉사활동을 추천하셨고 그 때부터 1년동안 그 친구들과 함께 한국어 공부를 했다.
그들의 삶을 말하자면 그러니까 그들과 함께 있던 시간들을 말하자면 다양한 물리적인 힘듬은 있었으나 그럼에도 우리는 많이 웃고 행복했다. 물론 그들의 입장에서는 달랐을지 모르지만 말이다.
인도의 가난한 친구들과 태국에 노동자로 온 미얀마 친구들.
가난과 노동에 찌든 그들의 모습은 안타까웠지만 그들도 여전히 웃었고 희망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들어와 있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즐겁고 차려진 이야기가 아닌 조금은 불편하고 힘들 수도 있는 이야기. 그렇지만 필요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프로그램의 첫번째 이야기로 이주노동자의 삶을 이야기 하는 시간을 준비했다.
힘든 이야기라 사람들이 함께 하기를 꺼릴까봐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활동으로 전통 체험들을 함께 엮었다.
맹장수술비 1천만원 후엔씨의 사연과 막걸리 담그기 체험은 그렇게 기획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이야기를 끌어갈 기자친구는 이야기가 결코 가볍게 다뤄져서는 안될 이야기이므로 막걸리 담그기 체험 속에서 풀어내기는 힘들다고 전해왔다. 진지해야 하고 무겁게 해야 할 이야기라고 했다. 그들의 아픔을 웃음속에서 풀 수 없다고 했다.
'힘든 이야기라고 해서 꼭 무겁게만 다뤄야 할까요? 저는 담담하게 공감을 끌어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진지해야 하지만 침울하게, 울분을 터뜨리며 하면 너무 힘들지 않을까...
아직도 나는 힘든 이야기를 하기가 힘든가 보다
기자친구와 꽤 긴 통화를 끝내고 침대에 누워 한참을 생각했다.
재밌는 기획을 하고 싶은게 아니다. 단지 힘든 이야기를 올곧이 힘들게만 풀고 싶지 않다. 그렇다면 그런 이야기는 점점 꺼내 놓기 어려우니까.
그런데 어쩌면 그 이야기는 정말 무겁게 해야 하는건지도 몰라. 왜냐면 사실 아주 무겁고 아픈 이야기 이니까. 그걸 담담히 풀어내는 것은 어쩌면 그 힘듬에서 도망하고 싶은, 여전히 마주 보고 버틸 힘이 내겐 없어서 일지 몰라.
무거운 이야기를 무겁게 풀고 가벼운 이야기는 가볍게 풀어야지. 뭔가 조미료를 치면서 변질되지 않길 바라는 건 욕심일 수 있을거야...
막걸리와 함께 프로그램은 진행이 될거다. 그러나 과연 어떤 모양새로 진행이 될건지는 아직 미지수다.
무거운 이야기는 무거워야 한다는 그 친구의 말이 정답일지 모른다는 생각만이 머리를 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