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중에 K방역에 대해 어떤 기억을 가질 것인가.
영화 모가디슈를 보면 남측 대사가 북측 대사에게 "진실이 두개인 경우가 있다"고 했다. 소말리아에서 북한이 반군에 개량형 AK-47 소총을 팔았다고 허위로 현지언론에 공작한 것을 놓고 남측 대사는 진실, 북측 대사는 거짓이라고 말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K방역을 놓고 향후 기억은 두개일 것 같다. 한쪽은 '그래도 성공', 한쪽은 '결과적 실패'로 귀결지을 듯하다. 현재 '진실이 두개'이기 때문이다. 특히 백신 공급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놓고도 '진실이 두개'여서 기억도 두개로 갈라질 듯하다.
백신 공급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라서 결론을 짓기는 이르다. 다만, 호주, 뉴질랜드, 대만 등과 마찬가지로 방역 성공의 영향 속에서 백신 도입에 신중하고 서두르지 않은 측면이 있었고, 그 악영향이 지금까지 미친 것은 사실이다. 총리도 인정했던 사안이다. 이 정도는 기억으로 남겨야 할 지점이 아닐까. 올해 계약대로 백신 공급이 이뤄지지 않은 데에는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와 제조단계에서의 문제가 작용했을 터다. 올해 백신 공급의 차질은 정부만 탓할 문제는아니다. 물론 그것만으로 변명은 안되겠지만 말이다
◆2020년 K방역의 성과, 기억해야 한다.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기억의 자산이 될 것이다. 어느 정도는 '국뽕'을 즐길 수 있다고 본다. 디지털 기반의 신속한 행정력, 상대에 대한 배려 문화 등은 정말 기억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당시는 별로 기억하지 않으려 했던, 무시하고 돌아보려고 하지 않았던 지점이 있다. 한국 사회의 '혐오 문화'다. 스스로 혐오의 대상이 되지 않기 위해 많은 이들이 감염이 되지 않기 위해 주의했다. 당시 바이러스에 대한 호들갑도 결과적인 평가를 할 필요도 있다. 호들갑이 좋건 나쁘건 간에 말이다. 독일에선 지난해 초 '독감으로도 수만명이 죽는다'는 식의 쿨하고 느긋한 반응들이 많았다가 속수무책으로 방역이 무너졌다. 백신 공급 문제에 대한 기억은 정말 상반될 것 같다. 진실이 두개여서는 안 되지만, 각자의 믿음에 따라 진실이 두개로 나타나는 현상은 현실이다. 2015년 메르스 대응에 실패한 박근혜 정부 당시, 극심하게 대치 중이던 여야가 K방역의 법적 근거가 된 '감염병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신속하게 처리했던 합의의 문화에 대한 기억도 K방역 신화에선 애초 자리가 잡히지 않은듯하다.
◆ 그러나 기억은 두개여서는 안 된다. 한국사회에서 근현대사의 여러 인물과 사실에 대해 기억이 두개인 경우가 많다. 김원봉에 대한 기억과 평가도 한 사례일 게다. 그런 기억이 소환될 때마다 사회가 두쪽이 나곤한다. 독일은 기억이 대체로 하나다. 극우세력이 2차세계대전을 놓고 '피해자 민족주의'식의 기억의 공작을 펼치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단호하게 대응한다. 식민지 시대 나미비아에서의 학살에 대해서도 기억이 하나다. 다만 유심히 돌아보지 않다가 최근에서야 반성적 움직임을 확실히 가져가고 있다.
옛 동독지역에서 극우세력이 부상을 막고 이 지역에서의 '2등 시민'론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도 '동독의 기억'을 꺼내들려 하고 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린 주체가, 민주화 혁명의 주체가 동독 시민이었다는 점을 독일인 전체의 기억으로 끄집어 올리려 하고 있다. 흡수통일된, 뒤쳐진 지역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선택하고 체제를 무너뜨린 주체가 옛 동독시민이었다는 점을 말이다.
독일도 과거사에 대해 "진실이 두개"인 때가 있었다. 역사의 기억, 사회적 문제에 대한 극단적인 대치가 일상일 때가 있었다. 초중고 교육 현장으로까지 진보와 보수 간의 대립이 극심했다. 1976년 서독의 지식인들은 보이텔스바흐 합의로 교사의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을 금지하고 학생이 문제의 당사자로서 토론에 참여하도록 해 모범답안이 아니라 문제를 둘러싼 논쟁을 체화하도록 했다.
◆ 책 '힙베를린, 갈등의 역설'에는 이런 기억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큰 줄거리다. 이 책은 독일 통일 책이 아니다. 서독부터 시작해 독일의 생산적 갈등능력, 갈등능력을 토대로 한 기억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힙베를린갈등의역설
※ 참고로.. 아래 내용에 대해 의견이 갈릴 수도 있겠지만, 앞서 잠깐 언급한 K방역과 관련된 기억을 하나 적어본다. K방역의 평가와 박근혜 정부의 메르스 대응에 대한 기억에서 거의 거론되지 않는 일이 하나 있다. 2015년 메르스 대응의 실패에 따른 비판 여론 속에서 처리된 감염법 개정안이다. K방역에서 추적 및 공개의 근간이 되는 법이었다. 물론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로 코로나 사태 속에서 일부 개정이 되기도 했다.
2015년 처리 당시 국회가 여야 간 정치적 공방으로 교착 상태였지만, 당시 임시국회에서 이 법안만 여야 간 합의 속에서 처리됐다. 여론이 압박 때문이었다. 어찌됐건 여야 간의 합의 속에서 원활하게 처리됐다. 박근혜 정부가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정부 당시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에 의해 만든 법으로 기억되어야 한다. 여야가 여론의 압박을 무시했다면, 특히 새누리당이 곤경에 처했을테지만 만약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2020년 초 코로나 대응이 덜 원활했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가정이긴 하다. 2015년에 개정이 되지 않았더라도 이듬해 처리됐을 수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여야 간에 드물게 일어난 원활한 합의가 추후 방역의 성공에 일조했다고 기억되어야 한다고 본다. '합의의 문화'에 대한 기억을 만들어나가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