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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갓 Mar 03. 2021

슬픈인연

인연에 대하여

 참 기묘한 날이다. 어제 비에 대한 이야기를 썼는데 오늘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오랜만의 비라그런지 참 반가웠다. 일을 하면서 빗소리를 듣고, 창문에 맺힌 빗방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오후무렵 카톡 하나가 왔다. 인연의 끝을 알리는 톡이었다. 절로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창밖에는 봄비가 하염없이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나는 예전부터 사소하거나 작은 인연에도 큰 의미를 부여했다. 사실 내가 그것을 의식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냥 내 마음속에서 저절로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라서 나도 어쩔 수가 없다.

 대학생 때 영어와 일본어를 배우러 학원에 다녔다. 보통 같은 반 사람들과는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서너달 정도를 함께한다.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는 직장에 가고, 방학이 끝나 학교에 가고, 고향에 가는 등 각자 저마다의 이유로 학원을 그만둔다. 그런데 나는 그럴 때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아쉬움을 느꼈다. 마치 초등학교 때 친한 단짝이 어느 날 갑자기 전학을 가버릴 때의 기분처럼.

 몇 년 전 일본 여행을 갔을 때는 파주에 사는 형을 숙소에서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저녁부터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다음날 그 형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그 형과의 인연이 더 깊어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느꼈다. 지금도 그 형의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는 것을 보면 그 때의 일들이 나에게는 꽤나 강한 인상을 남겼던 것 같다.

 지금 수영장 모임의 사람들과도 그렇다. 사실, 매일 수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지만 강습 시간이 끝나고 나면, 샤워실로 들어가 샤워를 하고, 각자 제 갈 길을 간다. 가끔 회식을 하기는 하지만 두 세달에 한 번 정도일 뿐이다(그나마도 코로나 때문에 벌써 마지막 회식을 한지도 6개월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 수영장 모임 사람들이 하나 둘씩 수영을 그만 두기 시작할 때 나는 다시 허전함을 느꼈다.

 이런 일들이 여러 번 반복되다보니 나도 의식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내 자신이 이상하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여자친구와 헤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항상 그 이유는 알지 못한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어떤 큰 의미를 부여한 것일까?

 어쩌면 내가 외동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겉으로는 혼자가 편하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외로웠던 것이 아닐까? 그 외로움은 그들이 채워줄 수 있는 것일까?

 오늘처럼 인연이 끝나는 날이면 나는 항상 비슷한 생각을 한다. 우리가 인연이라면 어떤 이유로든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사실, 다시는 만날 일이 없겠지, 라는 생각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지만). 우리가 앞으로 다시 만나지 못하든, 연락을 하지 못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어디에 있든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면 그걸로 됐다. 이런 주문같기도, 기도같기도 한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정말 내 진심이다.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웃을 일이 많아지기를 바래본다. 그거면 됐다. 

 오늘따라 한 밤중에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따뜻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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