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만 더 높이 갈 수 있다면...

하나하나 올라갈 때마다 보는 세상이 다르다

by 규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가 된 삶을 살고 있다. 오래간만에 백수의 생활을 하니깐 익숙한 부분이 있는 것 같지만 결코 반가운 익숙함은 아닌 것 같다. 나에게는 그리 좋지 않은 기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노는 것을 좋아하는 나지만 그렇다고 아무 일을 안 하고 가만히 노는 것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일을 하는 것과 안 하는 것의 차이는 단순히 돈을 벌고 안벌고의 차이가 아니다. 심적으로 내가 소속감으로부터 나오는 안정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로도 믿음과 삶을 살게 해주는 원동력을 받는 것 같다.


나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속담을 좋아한다. 중요하고 책임감이 요구되는 어떤 자리에 오르게 되면 처음에는 좀 부족할 수도 있지만, 점차 그 자리에 맞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발전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 말을 이해하기에는 어느 정도의 용기가 필요하다. 중요한 자리에 가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마인드는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실제로 중요한 자리에 가보지 않는 이상 이것을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다. 그러나 다녀온 사람의 입장으로는 그 자리에서 보이는 시야와 이해심의 영역이 넓어진다는 것을 느낀다. 그만큼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고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워지고 무게감 있는 사람으로 변한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기업의 임원 혹은 국회의원같이 정말 높은 자리가 아니어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동아리 동호회 혹은 작은 단체의 중요한 자리를 맡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나의 대학시절을 이야기하고 싶다. 낯선 환경에 낯선 사람들이 가득한 대학교에서 단순히 사람들과 친해지고 싶다는 명목하나로 뭣도 모르고 과대표를 한다고 말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냥 인싸가 되고 싶었던 무지한 나에게 과대표의 자리는 생각보다 과분한 자리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중요한 자료를 모으거나 혹은 수업진행, 과제제출, 이러한 다양한 일들을 조교들과 도와야 했고, 중간중간 서투른 나의 업무처리방식에 제출기한에 늦는다거나 금액이 맞지 않는다는 등 일명 펑크가 나기도 했다. 이런 나 자신에 너무 답답하기도 했고 과대표를 하는 것에 대해서 후회를 하기도 했지만, 1년이라는 시간은 나에게 있어서 그런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일에 대한 반복과 여러 번의 실패가 이제는 내가 어떠한 일을 할 때 신중하고 책임감 있게 계획적으로 하게끔 만들며 학우들과의 관계에서도 어려운 점이나 상의를 해야 하는 부분에서도 들어주려고 노력하고 좋지 못한 상황에서 내가 중재하려는 내가 돼 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2년 동안 과대표를 하고 나서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학회장 혹은 임원진 여러 제안을 받았지만 나는 하지 않았다. 힘든 일을 하지 않고 나도 한번 내 일에 대해서 몰두하고 싶었다. 그런데 신기하게 내가 막상 내일에 집중하려고 하지만 쉽지 않았다. 오히려 중요한 일을 하려고 한다면 스스로 피하기 마련이고 부담감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별로 큰일이 아닌 상황이어서 예전 같았으면 쉽게 해결할 수 있었지만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시도도 행동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우울감과 내가 다시 예전의 위치에 있고 싶어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다시 내가 그 자리에 돌아갈 수 만 있다면 하는 나의 후회가 지금의 나를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그래도 하나 깨달은 것은 그래서 나의 위치를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계단에서 넘어지면 아파서 다치지만 계단은 모양 그대로 변하는 게 없다. 언제나 내가 올라갈 준비만 되어있다면 계단은 항상 나에게 올라가라는 신호를 주는 것 일지도 모른다. 계단을 많이 오르라는 법은 없지만 적게 올라가라는 법은 없다. 올라간 만큼 나의 눈높이가 달라지고 내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순간 올라간 만큼 넓게 보일 테니깐 내려다보기 전까지는 하늘을 바라보고 올라갔으면 한다.



우리는 행복해지고 싶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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