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관심은 블랙홀과 같아 앞뒤 가림없이 집중한다. 요즘은 책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는데, 다음 달 분량까지 준비를 마쳤다. 평소에도 가지고 다니긴 하나 독서량이 많지 않았다. 한 달에 한 권 정도 읽는데 전공서적이라 어려운 이유도 있다.
요즘 빠진 책들도 범주를 벗어나지 않으나 비교적 쉬운 것들이라 빠르게 읽어낸다. 진짜 원인이라면 소설 쓰기에 관심 가진 게 큰 원인이려나(일주일에 한 글자 포스팅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사람이 소설이라니). 그래서 글쓰기 책도 틈틈이 읽어 준다. 독서량이 늘어난 것이 좋은 현상이라지만 급작스레 늘어난 독서량에 꾸준함을 가하긴 어렵겠다. 한번 심히 몰입한 후엔 손에서 놔 버리는 성격도 있어서다. 그래도 느낌 왔을 때 해두지 않으면 하지 그런 채로 지쳐버리는 걸 알기에 눈에 불을 켜고 독서를 즐긴다.
처음 '쓰기'에 관심 가졌을 때 왜 하려는지 고민했었다. '쓴다'라는 행위의 의도가 전달, 보존 그리고 복수(자신이 싫어하는 누군가를 글로 담아내려는 의도로)등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내적 성찰을 위해 지속해왔다. 생각을 표현하거나 전달하는 능력을 키우려던 이유도 있지만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의도가 제일 컸다.
'읽다'의 목적? 목표? 이유가 궁금해진 것도, 왜라는 물음에서 부터다. ('왜'를 왜 그토록 좋아하게 됐는지 모르겠다. 추측컨대 학부시절 프로그래밍을 배운 덕에 성향이 강해 진건 확실한데, 타고난 성향인지 아니면 그때부터 시작됐는지는 의문이다) 도대체 나는 '나는 왜 읽는가?' 지식을 쌓으려는 의도는 분명한데, 그렇다면 지식은 왜 쌓는가?
지식을 쌓은 이유를 알아보려 스스로가 '공부'라는 행위를 시작한 아주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갔다. 지금에야 그때 행동이 공부라는 것을 잘 알지만 당시엔 그저 엉뚱한 짓이었다. 학교에서 시키는 학습은 제쳐두고 하고 싶은 짓만 했으니 말이다. 가부좌 틀고 책 읽는 것이 공부라 생각한 부모님 세대는 나를 그저 얼빠진 놈으로 생각하셨다. 그렇다고 책을 안본건 아니다. 초등시절엔 독서 반에서 독서 2위였다.(좋아하는 책만 재독 했지만) 부모님은 내가 본다라는 책이 무어냐가 중요했나 보다.
어린 시절, 주로 초등생일 때를 말한다. 하고 싶은 것을 뭐라 표현하는 게 적절할는지, 남자아이들이 좋아하는 부시고, 붙이는 행위랄까? 부모님이 말하기를 다른 아이들보다 유난히 심했던 모양이다. 혼나는 게 무서워 집안 살림에 관심을 두진 못했으나 뒷산은 풍족한 실험실이었기에 마음껏 행위를 가했다. 남들에겐 엉뚱해 보였겠지만 돌아보니 그것이 최고의 학습이었다. 시작은 호기심이었고 결과로 즐거움을 남긴, 그러니 공부의 이유는 즐거움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니 만드는 것이 즐거움만은 아니게 됐다. 공고에 진학하여 기계를 다루고 쇠를 가공했는데, 주어진 도면을 가공하니 자유로움이 제한된 것이다. 목표는 명확했다. 남보다 뛰어나 기능경기대회에서 입상해야 했다. 그러니 고등학교의 공부는 남을 이기기 위함이었다. 메달을(국내 기능대회는 국제기능올림픽 출전을 위한 예선이다. 그래서 금상, 은상이 아닌 금메달, 은메달이 수여된다) 따는 것은 대학 진학의 목표도 있는데, 그 또한 남을 앞서기 위함이었으니 당시 공부는 이기기 위함이다.
도 대회에서만 입상했으나 그도 메달은 메달이라 쉽게 진학했다. 입상경력으로 입학 가능한 가장 높은 점수대의 대학교를 가니 공부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수능 기준 공부 잘하는) 게다 그 대학교는 수능을 망친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은 학교였는데, 수학, 물리는 이미 대학 1학년을 마친 정도 수준인 것에 압도적 차이를 느꼈다.(1학년 때 난 중학교 수학도 못 뗀 수준) 전역 이후 2학년 까지도 환경에 적응 못해 운동의 길로 들어서려고도 했다. 그렇지만 나름 성깔이 있어 그딴 거 한 번 해보자는 마음에 '내가 말하는 공부'가 아닌 '사회가 말하는 공부'라는 걸 시작하게 됐고, 몇 년 깊숙이 빠져있다 보니 지금은 완전 학자 스타일이 돼버렸다.
학자 스타일이 됐다는 이후로도 지식을 쌓는 것은 앞서고 과시하기 위함이었다. 은연중에 그런 것으로 쾌감을 느끼기도 했을 테나 다행히 공부 자체가 재밌었던 이유가 크다. 지식 과시의 쾌감은 나 그리고 나를 대하는 사람에게도 불쾌함을 주기에 다스리려는 노력도 많았다. 지식에 대한 이상향은 역시 후자 쪽이다. 어떤 의미도 부여되지 않은 채 오직 즐거움을 위해 지식을 쌓는 활동 말이다. 하지만 그럴순 없지 않은가? 복권이라도 된다면 모를까!
즐거움 이상의 의미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최근이다. 내가 하고픈 짓을 마음껏 하고도 남이 이로울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부터다.
지금 나는 4명의 조촐한 스타트업 멤버다. 처음 사업을 시작했을 땐 다른 기업을 이기는 방법을 알려했다. 공부하고 경험하며 시장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그런 열정으로 이제야 얼핏 시장의 흐름을 이해해 가고 있다. 그러나 반면 회의감이 드는건 꼭 남을 이겨 시장을 빼앗는 것이 사업인 건가라는 물음이다. 저명한 사업가들은 윤리경영을 외치고 시장 개척을 말하지만 실상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지금도 완벽히 이해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도를 도라고 말하다니)
"내가 하고픈 짓을 마음껏 하고도 남이 이로울 수 있다." 이 말을 경영의 수준에서 설명하지는 못하겠으나 다른 것으로 설명하면 주말마다 나가는 운동 모임이다. 운동할 때 먹을 음식을 준비하거나 잡일을 잘 처리하는 편인데, 단 한 번도 남을 위해 행동하지 않았다. 오직 나의 즐거운 운동을 위해 행하는 움직임이 남들에게도 도움이 됐던 것이다. 최근에야 그 관계를 깨달았는데, 알고 나니 마음이 더 간결하고 부드러워졌다. 수학, 물리를 학습하고 엔지니어링 활동을 하는 것 만이 학습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했던 대학생활이 창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살며 지나고 겪은 모든 것이 공부며, 행하는 모든 것이 배운 것을 이용하는 것인데 말이다. 그러니 내가 배운 것이 나의 즐거움 만이 아니라 우리의 즐거움이 될 수 있었고, 나의 이기심이 남을 돕는 활동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야 그 관계를 눈치챘다. 머리론 알았지만 마음으로는 이제야 깨달았다.
경영윤리라는 것, 시장은 점유하는 것이 아니라 개척하는 거라는 것이 이제야 점차 이해되기 시작한다. 그것이 어떻게 관련이 있는가를 설명하는 건 매우 어렵기에 하지 않겠다. 설명할 만큼 깨닫지 못했다는게 더 맞는 말이겠다.
그리 흘러왔다. 오직 즐거움을 위한 공부에서 이기기 위한 공부를 거쳐 우리를 위한 공부로 올라섰다. 지금 지식을 쌓는 이유가 '우리'에 있다. 내가 배운 무엇이, 움직인 행동이 우리를 위함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 위함은 이기적으로 나를 먼저 위해야 한다. 그래야만 가식도 위선도 아닌 진정한 나의 모습일 테니까.
'읽다'는 행위를 '공부'와 연결 짓는게 모호하나 내 인생에선 그래야 하는 것 같다. 그래야 읽는 이유를 알 테니. 내가 독서에 혼란을 겪었던 건 누구를 앞서가기 위함이 아니라는데 있었다. 아무 이유나 목적 없이 그저 그 활동 자체를 즐기는 건 못하는 성격이 돼 버렸으니. 게다가 초등시절 이후론 공부는 남을 이기기 위한 행동으로만 존재해 왔으니까. 아직은 구름을 잡으려는 일인걸 알지만, 어느 순간 솜사탕처럼 진짜로 손에 잡을 수도 있잖은가? 그러니 나는 책을 읽는 이유를, 지식을 쌓는 이유를 우리를 위해 하는 것으로 하겠다. 하지만 원칙은 반드시 내가 먼저 즐거운, 우리를 위한 일 한다고 하여 내가 당장 어느 시설에 다니며 빨래를 하거나 밥을 한다는 건 아니니까. 내가 재미있어하는 활동을 하면서도 그것이 필요한 사람들과 함께 하겠다는 의미이다.
지식을 쌓는 것은 즐거움이고 공익적 가치다. 나누는 것은 스스로를 더 열정적이게 만든다. 쓴다는 행위는 반성하게 했지만 공부는 나를 유익하게 한다. 그 의미를 더 깊이 더 어려이 고찰할 수 있겠으나 나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니 읽는 것은 우리를 위한 이기적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