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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조 Jun 30. 2021

[영화에세이]#19. 유리의 여름

그날의 여름 아래 햇살 비치지 않는 곳에서

그날의 여름 아래 햇살 비치지 않는 곳에서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마음에 담아둔 시는 여럿 있지만 가장 용감하다고 느낀 시는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 일 것이다. 예술이란 무릇 아름다움을 탐미하고 숭고하며 순수할 것이라고 여겨지던 시대에 스스로의 동력이 시기 어린 질투였음을 고한 위대한 선언이다. 곱씹어 생각해보면 그 누가 이러지 아니할까 싶으면서도 진실로 위대한 선언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예술이란 길가의 자갈처럼 여기저기 발에 채이며 흔하게 굴러다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무릇 예술가란 자갈을 갈고닦아 빛나는 순간을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일상을 반짝이는 것으로 꾸며내는 것이 예술의 업이라고 생각했다.


기형도 시인의 <질투는 나의 힘>이 그러하였고 이어서 다룰 영화가 그러하였다. 영화를 업으로 삼지 못하고 자판만 이따금씩 두드리는 스스로가 부끄럽지만, 여운이 짙게 드리워 질투할 수밖에 없는 단편영화 하나를 소개하려고 한다.  

영화 <유리의 여름>

<유리의 여름>(2017, 김서현)은 소외받은 생명에 대한 이야기이다. 고등학생인 유리는 혼자 힘으로 낙태비용을 마련하기 위하여 두줄이 뜬 임신테스트기를 5만원에 판매한다. 5주 남짓된 생명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방법이란 헛구역질 혹은 두 줄짜리 임신테스트기 정도일 . 그렇기에 두 줄짜리 임신테스트기는 5만원어치 '생명의 외침'이며 30만원은 소외된 생명이 창출해낸 값어치이다


이토록 자그마한 생명의 가치는 각자에게 다르게 다가온다. 누군가는 모종의 이유로 사용하기 위해, 공짜로 받아가려고 하려 하는 정도.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부적이자 소망이다. 유리에게는 생명을 지워내기 위한 간절함일 테고.

영화<유리의 여름>| 유리가 지우려는 생명은 누군가가 간절히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유리가 모은 30만원 중 25만원은 낙태, 즉 생의 소실을 목적으로 소비된다. 그리고 나머지 5만원으로는 편의점의 즉석식품 진열대에서 고르고 고른 미역국을 사는데 쓰인다. 누구를 위한 것인지는 몰라도 생을 어루만지기 위함이겠다.


이 영화에서 식사를 하는 장면은 두 번 등장한다. 아버지와 함께 집밥을 먹는 첫 장면과 즉석식품으로 된 미역국을 유리 홀로 먹는 두 번째 장면이다. 첫 장면에서 아버지는 유리에게 무관심하다. 학부모 상담에는 관심조차 없으며 브라운관 너머로 들려오는 소리에 유리의 소리는 묻혀버린다. 시끄럽다며 볼륨을 줄여보지만 아버지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산부인과에 홀로 찾아가 낙태 시술을 예약하고 돌아온 유리는 두 번째 식사를 한다. 그나마 차려져 있던 첫 번째 식사와는 다르게 물을 받아 전자레인지에 돌려 그릇에 담아낸 미역국을 입안에 넣는다.

영화 <유리의 여름>

유리는 홀로 낙태비용을 모으고 홀로 병원에 찾아간다. 유리는 남자 친구를 마주하고도 도망갈 수밖에. 유리를 보듬어 줄 사람은 도무지 찾을 수 없다. 아버지가 그랬듯, 남자 친구가 그랬듯. 유리 역시 소외된 생명일 터이다. 그날의 여름 아래 햇살 비치지 않는 곳에서 누구보다 더웠을 테다.


영화는 유리가 과연 낙태 시술을 받았을지 아닐지 알려주지 않는다. 헛구역질로 쏟아낸 쓰레기통을 물로 닦아내는 것은 뱃속 아이의 외침을 애써 등지려는 것일까, 아니면 지우려 했던 마음에 대한 사과일까. 5만원으로 차린 미역국은 스스로의 생일을 위로하기 위한 것일까, 훗날 태어날 아이를 위한 안녕일까. 무엇이 되었건 간에 뱃속의 아이만큼이나 소외되어 있는 세상 모든 유리 조금은 불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생일 축하해,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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