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편지
<까마귀가 나는 밀밭>(1890년 7월)은 빈센트 반 고흐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작입니다. 파란색과 노란색의 보색대비 효과가 눈부신 그림입니다. 이 그림 뿐만 아니라, 고흐가 남긴 어떤 그림을 보더라도 빠지지 않는 색깔이 있습니다. 바로 노란색입니다. 그것도 아주 강렬한 노란색이죠.
고흐는 이 노란색에 집착했습니다. '노란 높은 음에 도달하기 위해서 나 스스로를 좀 속일 필요가 있었다 '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나 스스로를 속인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말 그대로 실제 노란색으로 안 보이는 것들조차 노란색처럼 보이도록 스스로를 속인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선글라스를 쓰면 빛이 차단되어서 사물이 어둡게 보이는 것처럼 말이죠. 고흐는 어떻게 자신을 속였던 걸까요? 노란색 선글라스를 썼던 걸까요? 고흐가 치명적인 노랑을 끌어내기 위해 했던 일은 음주였습니다. 드링킹 알코올 말입니다.
고흐는 애주가였습니다. 지금이나 그 시대나 술 좋아하는 예술가들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당시 프랑스 파리에서 유행하던 술이 있었습니다. '압생트'라는 술이였는데요. 지금 우리나라로 따지면 소주와 다름없는 매우 대중적인 술이였습니다. 압생트는 도수가 기본이 45도이고, 80도짜리도 있었습니다. 저렴한데다 독주여서 가성비가 갑이였습니다. 적게 먹어도 빨리 취할 수 있어서 그 당시 주머니 가벼운 예술가들이 즐겨 마시는 술이였다고 합니다. 향이 좋고 은은히 풍기는 에메랄드빛이 매력적이여서 더욱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고흐 역시 압생트를 미친 듯이 즐겨 마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압생트에는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압생트를 만드는 재료인 향쑥에는 산토닌이라는 성분이 들어있는데, 이 산토닌을 과다복용하게 되면 황시증에 걸리게 됩니다. 황시증은 모든 것이 노랗게 보이는 병입니다. 고흐 역시 황시증을 앓았던 겁니다. 고흐가 처음부터 이런 부작용에 대해 알았는지 여부는 확실치 않지만, 압생트가 황시증을 악화시킨다는 사실을 알았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압생트의 부작용 때문에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압생트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하지만 고흐는 여전히 압생트를 손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궁극의 노란색에 도달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압생트에는 산토닌이 유발하는 황시증 뿐만 아니라 튜존이라는 성분으로 인해 정신착란과 환각이 생기는 문제 또한 있었습니다. 격렬해지는 환각과 정신착란 증세에 시달리던 고흐는 결국 자신의 귀를 스스로 자르게 되죠.
문득 궁금해졌습니다.
고흐가 캔버스에 쏟아넣은 강렬한 색감은 원래부터 자신이 보고 싶었던 것이였는지 말입니다.
아니면 황시증이 심해지다보니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린 것에 불과할까요?
19세기 후반 유럽의 인상파 화가들은 주관적인 감각을 표현상의 새로운 기법으로 나타내는 것을 중시하는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들은 자연의 변화속에 흐르는 다양한 색들을 캔버스에 그려 넣었습니다. 색이라는 것에 있어 빛은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사물이 반사한 빛에 불과한 거니까요. 빛에 따라 사물이 변합니다. 그 말인즉슨 그 어떠한 것도 고유한 색이라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빛의 화가라고 불리우는 클로드 모네는 자신의 작품인 <건초 더미> 시리즈를 통해 이를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바 있습니다. 똑같은 건초더미를 동일한 위치에서 그렸지만, 건초 더미의 색감과 분위기는 계절과 햇볕에 의해 완전히 다르게 보입니다(한번 인터넷에서 찾아서 보시면 좋겠네요). 클로드 모네 역시 건초 더미를 보고 싶은 대로 그렸던 걸까요, 단지 눈에 보이는 그대로 그린 걸까요?
태양에서 오는 빛은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지만, 일상에서 우리를 둘러싼 많은 빛들을 바라보는 것은 결국 우리의 의지입니다. 빛은 태양에서 오지만, 우리가 보고자 하는 시선을 위한 빛은 궁극적으로 우리 내부에서 나옵니다. 어두운 밤에 전등을 꺼버리면 우리는 보기 싫은 것들을 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보기 싫으면 눈을 감으면 되고, 보고 싶으면 눈을 뜨면 됩니다. 선글라스를 쓰는 것이나 압생트를 먹어서 노란색만을 보게 되는 것이나 결국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입니다.
햇볕과 자연의 변화에 따라 변화하는 풍경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시간에 그 자리에 가서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입니다.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인상파의 대가들은 보이는 것이 아닌 직접 보는 것을 그렸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세계 역시 홀로 존재하는 완전체가 아닌, 우리가 보고 경험함으로써 만들어지는 세계입니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것들은 어떤 색깔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