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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종 Feb 16. 2023

조르바의 탁월함

마음편지

철학자 최진석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 이란 책을 보다가 한 문장 앞에서 잠시 진도를 못 나가고 멈추었습니다. 시골길 운전하고 가다가 난데없이 엄청 높은 방지턱을 만난 것처럼요.


"나의 삶이 내 꿈을 실현하는 과정으로 되어 있는가 ?"


사실 뻔한 말입니다만, 개인의 상황과 맥락에 따라 한 줄의 문장이 찌르고 들어오는 깊이는 달라집니다. 마침 제가 그런 맥락에 놓여있었나 봅니다. 지금 내 삶은 내 꿈을 실현하는 과정에 있는지 자문해보았습니다.  지금 내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라는 것이 결국은 아이들 잘 키우고 은퇴자금 열심히 모아서 노후에 조금이라도 고생 안하고 편하게 살다가 죽는 과정에 불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범함 속에 위대함이 숨어있다는 핑계로 아주 작은 위험의 가능성도 사전에 차단하려고 애쓰며 사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삶이라는 들판에는 도처에 온갖 암초와 지뢰가 깔려 있습니다.  지뢰를 밟지 않으려면 조심해야죠.  이미 많이 걸어온 사람들의 발걸음은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평범한 것이 아닌 탁월함을 꿈꾸는 것은 젊은 시절 객기가 충만할 때나 가능합니다. 인생을 어느 정도 살아본 이는 탁월함을 쫓다가 평범함마저 잃고 마는 위험을 두려워하기 마련입니다.


탁월한 인간은 항상 '다음'이나 '너머'를 꿈꿉니다. 우리가 독립을 강조하는 이유도 독립만이 다음이나 너머로 넘어가도록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너머나 다음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불안합니다. 그 불안이 힘들어서 편안함을 선택하면 절대로 다음이나 너머를 경험할 수 없습니다. 이 때 불안을 감당하면서 무엇인가를 감행하는 일을 비로소 용기라고 말할 수 있죠. .....(중략)......
그런데 독립된 삶을 강조하고 독립할 수 있는 용기를 말하려고 하면 그 용기가 혹여 객기는 아닌지 우려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개의 모범생들이 이런 태도를 취합니다. 우리는 왜 용기가 객기로 흐르는 것을 그리도 두려워하는 것일까요? ...(중략)... 나의 생각이 합리적인가 아닌가를 따진다고 할 때, 그 합리성을 증명하는 근거들은 이미 있는 것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탁월한 사유의 시선> 중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제대로 선택된 것인지 아닌지를 계속 반추하며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저는 선택의 적합성 여부를 분명히 하려는 것에 매달려 방황하며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는 사람도 봤습니다. 만약 어느 정도의 수양을 거치고 적당한 지적 훈련을 거친 인물이 하나의 지향점을 발견하고 자신의 인생을 거기에 투입해도 좋겠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해봅시다. 그가 정말로 고려해야 할 무언가가 있을까요? 저는 고려해야 할 것이 별로 없다고 봅니다. 거기에 몰입하는 일 이외에 따로 고려할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등장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책임지거나 감당하면 됩니다. 내가 하고 싶은 그것이 우연한 객기에서 나온 게 아니라 어느 정도의  단련을 거쳐서 나온 판단이라면  그 다음은 좌고 우면할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낭 하면 되는 것입니다. 자기가 선택한 길이 맞는 길인지 맞지 않는 길인지를 고민하기보다는 자기가 선택한 길을 스스로 맞는 길이라고 확신하고 견지하는 일이 더 중요합니다. 조금 하다가 힘들면 혹시 내게 안 맞는 길이 아닌가 하고 계속 고민하는 일은 얼핏 보기에 자신에게는 진실한 태도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게으름과 나약함의 또 다른 표현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이는 최초의 선택이 자신의 진실한 내면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을 전제하고 하는 말입니다. 


쓰고 보니 이것이 과연 제가 한 말이 맞는지 거울 속의 저를 쳐다보게 되네요. 탁월함을 원하는 제 안의 누군가의 독백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가 했던 최초의 선택들을 다시 돌아봅니다. 그중에는 순전히 무모한 객기로 내렸던 것들도 있고, 내면에서 나온 진중하고 진실한 것들도 있었습니다.  진실했음에도 후속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길잃은 선택들에 고해성사를 주절거려봅니다. 이제는 용기와 객기를 어느정도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객기가 줄어든만큼 용기 또한 줄어드는 것이 보통의 삶입니다. 용기가 부족하다면 무엇이 두려운 것인지 생각해봅니다. 그 이유의 이유를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해보지만, 멤도는 생각은 좁고 좁은 사각의 우리 안을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문득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가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오늘 편지는 저와 같은 사람들에게 조르바가 던지는 명대사로 갈음하겠습니다. 


"두목, 어려워요. 아주 어렵습니다. 그러려면 바보가 되어야 합니다. 바보, 아시겠어요? 모든 걸 도박에다 걸어야 합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좋은 머리가 있으니까 잘은 해나가겠지요. 인간의 머리란 식료품 상점과 같은 거에요. 계속 계산합니다. 얼마를 지불했고 얼마를 벌었으니까 이익은 얼마고 손해는 얼마다! 머리란 좀상스러운 가게 주인이지요. 가진 걸 다 걸어 볼 생각은 않고 꼭 예비금을 남겨 두니까. 이러니 줄을 자를 수 없지요. 아니, 아니야! 더 붙잡아 맬 뿐이지.....이 잡것이! 줄을 놓쳐버리면 머리라는 이 병신은 그만 허둥지둥합니다. 그러면 끝나는 거지. 그러나 인간이 이 줄을 자르지 않을 바에야 살맛이 뭐 나겠어요? 노란 양국 맛이지. 멀건 양국 차 말이오. 럼주 같은 맛이 아니오. 잘라야 인생을 제대로 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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