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반차 좀 쓰겠습니다.”
“저는 내일 휴가 냅니다.”
MZ의 당당한 휴가 사용은 부러우면서도 너무나 당당해 혼이 나갈 지경이다. 휴가란 정말 아파죽을 것 같을 때 눈치 보며 아주 조심스럽게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쓰지 못한 연월차를 환산해 12월의 보너스가 있다는 것은 아주 짭짤한 보상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진 못했다. IMF라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온 나라를 휩쓸면서 연월차 수당은 자연스럽게 자취를 감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기 전까지 회사에 나오는 문화는 기업의 위기의식과 함께 더욱 강화되었으니 그 죽을 맛이 참 오랫동안 당연하다 생각되었다.
나는 내가 출근할 때 팀원들이 나보다 먼저 나와 있었으면 좋겠고, 퇴근할 때 우리 팀원들이 남아서 일하고 있으면 한쪽 가슴이 따뜻해졌다. 반면 그 모습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면 정말 꼰대스러움을 감출 수 없어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토록 어렵게 온보딩(임원으로서의 계약직)하고나니 정규직 직원들의 연차 사용이 자유로워지고, 정시 출퇴근 정착돼 내 배를 아프게 했다. 내가 왜 그들의 당연한 권리행사를 혜택으로 보고 있는지 자각하는 순간, 몹시 찜찜했다. 이런 생각이 바뀌지 않으니 난 중병을 앓고 있는 꼰대가 맞다. 요즘에는 그런 생각들로 반성할 때가 참 많다. 왜 그때 모니터에 보이는 인사관리 창의 결재란에 근태승인을 하면서 망설였는지 말이다.
그래도 물러설 수 없는 것은 직장인으로서의 프로정신이라 믿었다. 적어도 업무 시작 30분 전까지는 출근해서 당일 업무에 대해 준비하고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이 월급 받고 일하는 프로라는 생각이었다. 커피도 미리 마시고, 담배도 미리 피우고 말이다. 자신의 권리를 누리려는 MZ들이 오전 9시 5분 전에 1층 로비에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30m씩 줄을 서는 것을 보면서 한숨 짖는 날도 많았다. 아마도 마지막에 서 있는 직원들은 9시 10분 정도 되어야 사무실에 올라가지 않을까 걱정되는 순간, 몇몇이 출입 게이트에 자신의 출입증을 미리 인식시키는 모습을 보았다. 와우 영특했다. 정말 머리 좋은 우리 MZ들이 대견스러웠다.
나는 기억한다. 그날 팀원들에게 직장인의 자세에 대해 일장 연설을 했던 것을. 아침에 일찍 출근해서 책도 보고, 그날의 일과도 계획하는 직원은 성과가 좋다. 이러한 좋은 습관을 버리기에는 너무 아깝다고 생각해, 아침에 뭐라도 배우는 것이 어떠냐고, 골프도 외국어도 다 좋다고 했다. 그리고 정시에만 출근하라 했다. 그랬더니 모두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냥 출근만 정시에 했다. 거두절미하고 유리한 내용을 취사선택하는 탁월한 능력이 발휘되었다.
나는 왜 그 때 날을 세웠을까? 별 성과도 없는데, 그들도 이미 다 성인이고, 각자 생각이 있을 것인데 말이다. 이제는 힘을 빼고 그들에게 꼰대가 되지 않는 방법에 대해 조언을 좀 구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