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피어나는 들꽃 같은 영화 - <시>
“시를 쓰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닙니다. 시를 쓰려는 마음을 갖는 것이 어려운 것입니다”
〈시〉 - 김용택 시인 (실제 출연, 극 중 ‘김용탁’)
영화 〈시〉
배우 윤정희 주연, 이창동 감독의 작품.
2010년 5월 13일 개봉.
조용히 피어나는 들꽃 같은 영화
우리는 아무리 지옥 같은 세상 속을 살더라도
때로는 오롯이 피어난 예쁜 들꽃을 바라보며
유유히 걷고 싶어 하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어김없이 고개를 드는
현실의 추악함앞에서는 곧잘 무너지고 만다.
이 영화는 이런 우리의 삶 자체를 이야기하고 있다.
미자의 현실은 도무지 행복하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
상황으로 가득 차 있다.
줄줄이 나오는 불행의 연속을 맛보는 미자는
순수하면서도 어딘가 맹해 보이는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역시 사과는 보는 게 아니라 깎아 먹는 거야”
<시>- 극 중 미자의 대사
시를 쓰겠다며 세상의 모든 것을 자세히 관찰하고 되묻고 또 느껴본다.
시를 향한 애정과 고뇌로 현실을 살아가지만 그녀에게는 도무지 시를 쓸 수 없을 것 같은
고통만이 가득 찬다.
인간임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
손자의 잘못된 치부와 날것 그대로의 수치심
그리고 그 대상이 되어버린 한 소녀의 고통과 슬픔
미자는 그런 소녀가 있는 곳의 강물이 되어 그 고통을 오롯이 느끼고 공감하려고 노력한다.
그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은 피해자의 슬픔을 안고자
미자는 시가 되고 강이 되어 그렇게 흘러간다.
시를 쓰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시가 되어버린 삶
인간임을 실격하리만큼 암담한 주변 사람들 사이에서도 인간답게 살고자 했던 미자의 처연함과 담담함이 가슴을 울린다.
시를 쓰고자 했던 마음보다도 더욱 아름다운 시가 되어버린 미자의 삶.
내게 남은 한 줄, 여운
지옥 같은 삶에도 어여쁜 들꽃은 피어나지만
참혹한 현실은 흐르는 강처럼 애달프다.
인간다움을 원했던 미자의 처연한 위로가
인상 깊은 영화이고 그 어떤 시보다 와닿는다.
시는 아름답지만 추악한 현실은
아름다운 시가 될 수 없었다.
나는 미자를 기억하며 보이지 않는 진실을
묵묵히 바라보고 그 속에서 나만의 시를 쓰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아네스의 노래>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랫소리 들리나요
아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여름 한낮의 그 오랜 기다림
아버지의 얼굴 같은 오래된 골목
수줍어 돌아 앉은 외로운 들국화까지도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작은 노랫소리에 얼마나 가슴 뛰었는지
나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검은 강물을 건너기 전에
내 영혼의 마지막 숨을 다해 나는 꿈꾸기 시작합니다
어느 햇빛 맑은 아침 깨어나 부신 눈으로
머리맡에 선 당신을 만날 수 있기를
<시> - 극 중 ‘아네스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