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씁쓸한 마지막 인사말
나는 바쁜 현실에 파묻혀 살다가도 이따금씩 요양원에 계신 친할머니가 떠오른다.
찾아뵙게 된 건 사실 남편의 도움이 컸다.
살갑지 않은 성격을 가진 나는
무슨 방어기제인지, 나쁜 습관인지 친가족에게까지도 무신경한 사람이다.
하지만 남편은 웃어른 공경, 특히 부모님과 조부모님에 대한 사랑이 크다.
나도 점점 그 모습을 닮아가는 듯 조금씩은 따르게 된다.
부부는 닮는다더니 나도 그런 모습을 더욱 본받고자 닮아가지만 사실 아직도 한참 멀었다.
사람이 바뀌는 게 쉽지만은 않다.
요양원에 방문해서 할머님을 뵈면 할머니께서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항상 작별할 때가 되면 “잘 살아라, 고맙다, 복 받아라”라고 말씀하시고는 한다.
어린 시절, 할머니께서는 종종 ‘매작과’라는 전통 과자를 맛있게 잘 만들어주셨다.
그때는 이름도 몰라서 리본과자라는 이름을 붙이고 할머니가 해준 과자가 제일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우고 할머니께 전화드렸었다.
음식 솜씨도 좋으셔서 할머니댁에 가면
집에서는 못 먹었던 삼시 세끼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
요즘 들어 생각이 나 요양원에서 할머니께 여쭤본 적이 있었다.
“할머니 예전에 저한테 만들어주셨던 리본모양과자 생각나셔요?”
할머니께서는 앙다물어 쳐진 입매와 무표정,
느린 반응으로 나를 쳐다보시며 천천히 대답하셨다.
“이제는 그런 거 못하지 뭐.. 다 까먹었어”
반응 속도도 느려지셨고 풍부한 표현도 없다.
그저 힘이 없으시고 무기력하신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우리를 알아보시고 거동을 하실 수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가천대학교 이길여 총장님이 우리 할머니보다도 연세가 많으시다.
믿기지 않았다. 세월에 이긴 사람과 못 이긴 사람의 차이일까?
사실은 할머니의 모습이 지극히 평범하고 일반적인 우리들의 모습이리라 생각된다.
요양원에 가면 할머님 면회를 위해
미리 시간을 비워두고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함께 한다.
이가 거의 안 남으셨고 약하셔서 드실 수 있는 건 한정적이지만 우리는 가위를 이용해서 잘게 잘라서 드리고는 한다.
힘겹게 드시지만 소중하고 맛있는 식사 시간이라는 생각이 드시는지 남기지 않고 드신다.
어린 시절 나와 친동생을 먹이려고 분주히 준비하시고
종종 목욕탕에 데려가셔서는 나와 내 동생의 때도 말끔히 밀어주시고 씻겨주셨다.
하지만 체력이 약해져 너무 힘드시다며 푸념하셨다.
가쁜 숨을 몰아쉬시고는 이제는 안 되겠다며 한숨을 쉬시곤 했다.
그러고서는 한동안은 여러 사정으로 뵐일이 없었던 할머니는 못 찾아뵌 지 10년 만에 많이 쇠약해지셨고 그로부터 약 5년 뒤 할아버지께서 병약해지시며 할머니와 함께 요양원에 쭉 계셨다.
작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더욱 외로우실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려왔지만 이 마저도 내 남편이 아니었다면 묻어두고 외면한 채 세월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 한 번 찾아뵈어야 하지 않아?”
나는 남편의 말을 듣고서야 요양원에 전화를 하고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할머니를 찾아뵈었다.
결혼 후 제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내가 외면하고 있던 것과 나쁜 의미로써의 개인주의자로 살았던 모습을 버리고 조금 더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태어난 나의 소중한 아이를 통해 다른 사람의 삶도 소중하게 바라본다는 점이다.
‘그 누구도 나를 두고 떠나지 말기를,
나도 어느 누군가를 두고 떠나지 말기를’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언제가 될지는 모를 작별의 시간은 다가오기 마련이다.
우리는 모두가 이 세상에서 홀연히 사라져 어딘가에서 지켜볼 수도 있다.
사실은 그런 세상조차도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저 묵묵히 하루하루 살아간다.
우리는 서로가 막연히 홀로 남아버린 존재가 될까 봐 두려워한다.
사실은 떠날 사람도, 남겨질 사람에게도 그 일은 슬프고 무서운 일이다.
종교를 가지는 사람의 심정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무언가를 믿으며 살아가는 일이 인간에게 필요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저 잘 살아내는 것만이 방법일까 봐 그때그때의 시간을 버티다 보면 조금씩 결실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내 세월의 흐름에는 누구도 이길 수 없다.
살아내고, 익어가고, 이겨내는 여정 끝에 마지막은 다가온다.
그리워하는 마음을 품더라도 그저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자 남겨진 사람의 몫이다.
그렇게 우리는 수레바퀴 돌듯이 계절의 순환을 받아들인다.
며칠 전 방 안에서 할머니의 50대 시절 사진을 발견했다.
돌즈음 된 아가 시절의 나를 안고 환하게 웃고 계신 모습, 현재 우리 엄마보다도 젊으셨던, 그 시절 그 시간의 할머니.
지금의 나는 훌쩍 커서 무늬만 어른 같은데도
어느덧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할머니께서는 지금은 아흔이 다 되어가시는데 사실 뵐 때마다 그 시절의 할머니와 같은 분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빠르게 흘러버린 세월은 낯선 감정과 생경함까지 가져다주는 것 같다.
동일한 할머니인데도 마음속의 할머니와 현재의 할머니는 분명히 다르다.
슬프고 씁쓸하다. 잘 살라고 놓아주시는 할머니의 마음이 어떨지 감히 가늠이 되지 않는다.
어찌 되었든 누구에게나 그 시간은 찾아올 것이다.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흐른다.
이 씁쓸한 인사말이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 채.
그럼에도 우리는 오늘을 찰나의 행복처럼 살아간다.
할머니와 함께할 수 있는 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는 혼자만의 힘으로는 소중한 것들을 얻어낼 수 없었다.
가정을 이루며 깨닫고 얻는 것들이 훨씬 많다고 느끼는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