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lden Tree Sep 22. 2024

맛집 사장님과 함께 로또를 샀다.

진정한 자유를 꿈꾸는 당신에게 - 밀의 '자유론'

유난히 덥고 긴 여름을 보내며 유독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도대체 몇 살까지 직장에 얽매여 지내야 하는가?'이다. 이 답답한 질문의 답을 생각하며 길고 긴 여름밤 맥주를 홀짝거렸다.

직장에 메여 사는 그리고 앞으로 큰 이변이 없는 한 직장 생활을 꼭 해야만 하는 내 삶이 가여웠다. 하루빨리 진정한 자유인이 되고 싶다는 얄궂은 생각에 갇혀 긴 여름을 무기력하게 지냈다. 무기력은 가끔 우울과 불안을 초대했고 더운 날씨는 감정과 이성마저 삐그덕거리게 만들어 긴 여름날을 엉망으로 보냈다.


그래도 가끔 감정이 멀쩡해지는 어떤 날에는 일터로 출근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했다. 보잘것없는 나를 받아주고 월급까지 주니 이보다 감사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가족이 필요로 하는 것을 내 힘으로 충족시켜 줄 때는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해야겠다는 강한 의지마저 생겼다. 이런 감정도 잠시 뿐. 새벽 6시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고, 잠자리에 들 때면 내일 출근길을 염려하는 내 모습이 소름 끼치게 지겨웠다.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그리고 앞으로도 기약 없는 이런 삶을 반복해야 하는 내가 몹시 가여웠다. 내 자신이 측은해질 때면 로또를 샀다.


경제적 자유를 획득한다면 직장에 메여 사는 내 불쌍한 영혼과 육체를 해방시켜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간절한 마음으로 로또를 구입했다. 가지런한 숫자 조합이 담긴 로또 용지를 고이 지갑 속에 넣고 로또 추첨일을 기다렸다. 토요일에 바로 로또를 맞춰보진 않았다. 이것도 나만의 루틴인지 모르겠는데, 보통 일요일 오후 떨리는 마음으로 로또용지의 QR코드를 은밀하게 찍었다. QR의 응답은 찰나에 이루어지는데 그 찰나의 순간 온갖 상상의 날개를 펼쳤다. 1등에 당첨되면 어쩌지, 2등도 당첨금을 찾으려면 서울 본사까지 가야 하는 건가 등 일어나지 않을 기분 좋은 상상을 했다. 어김없이 등장한 낙첨이라는 선명한 글자를 보며 고이 간직했던 로또 용지를 마구 구겨버렸지만 경제적 자유를 꿈꾸는 K-직장인인 나는 언젠간 분명 저 숫자들이 내게 자유를 가져다줄 거라 믿으며 매주 로또를 구입했다.




동네마다 소문난 로또명당이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물론 있다. 가까운 판매처에서 구입하기도 하지만 이왕이면 당첨이 잘 되기로 소문난 명당을 기웃거렸다.

며칠 전, 로또를 구입하러 들어간 가게에서 우리 동네 맛집 사장님을 만났다. 사장님은 내 얼굴을 모르실 텐데 나는 사장님을 너무 잘 안다. 온 가족이 좋아하는 맛집이라 우리 집 외식목록에 자주 등장하는 집이기 때문이다. 사장님은 내 앞에서 로또 두장을 구입하셨다. 맛집 사장님도 로또를 구입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사장님은 충분히 경제적으로 자유로우실 텐데 로또를 구입하는 것이 신기했다. 사장님과 함께 로또를 사서 가게를 나오다 문득 '우리가 염원하는 자유로운 삶은 어떤 삶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늘 자유를 꿈꾼다. 각자의 삶이 모두 자유롭길 열망한다.

세상 사람 모두가 꿈꾸는 자유는 과연 어떤 걸까?

자유에 대해 문득 궁금해질 때면 밀의 [자유론]을 펼쳐본다.


밀은 [자유론]에서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개별성이 필요하다며 다음과 같은 문장을 들려준다.

누구든지 웬만한 정도의 상식과 경험만 있다면, 자신의 삶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 방식 자체가 최선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보다는 자기 방식대로 사는 길이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코트나 구두를 고를 때, 자기 몸의 치수를 재서 맞추거나 아니면 가게를 다 뒤져 자기에게 맞는 것 하나를 선택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코트 고르기보다 더 쉬운가?

사람은 취향만이 아니라 각자 추구하는 정신적 발전도 다르기 때문에 그에 맞는 조건 또한 필요하다.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일들, 고통을 느끼게 되는 상황, 이런 문제들을 지각하는 육체적, 정신적 작용은 사람에 따라 아주 다양하다.
그러므로 각자의 경우에 맞는 다양한 삶의 형태가 허용되지 않는다면 인간은 충분히 행복할 수 없다.

[밀, 자유론, 책세상문고, 2020, p.145-146 참고.]


밀은 개인의 자유로운 삶은 사람에 따라 다르며 다양한 삶의 형태가 허용될 때 행복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경제적 자유만 획득한다면 세상만사 자유로울 거라는 내 생각은 어쩌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만약 내가 경제적 자유를 획득했다면 과연 나는 자유롭게 세상을 맘껏 즐길 수 있을까?

밀의 문장을 읽으며, 내가 가진 다양한 취향과 정신적 발전 또한 나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음을 간과했던 길고 긴 여름날의 고민에 마침표를 찍었다. 경제적 자유뿐 아니라 나를 자유롭게 만들 조건들은 참 많다는 걸 잊고 있었다.  드디어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이 왔다. 이 좋은 가을날, 진정한 자유인이 되기 위해 내가 좋아하는 많은 일들을 차곡차곡해봐야겠다. 그 속에서 진정한 자유를 찾고 싶다.


[무기력에 갇혀 지내느라, 글 발행이 쉽지 않았어요. 끄적이다 지우고 끄적이다 지우고만 여러 번 반복했네요. 진정한 자유를 꿈꾸며 읽고 쓰는 사람으로 돌아오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