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를 보며 맹자가 생각났다.
어린 시절 사진 중 유독 좋아하는 사진이 있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담아낸 사진인데, 볼 때마다 미소를 짓게 하고 가끔은 눈물도 찔끔 짜게 한다.
사진 속 주인공은 세 명이다. 지금의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40대의 아빠, 다섯 살의 나 그리고 세 살 동생. 세 명은 아주 편한 옷차림(런닝과 속바지)으로 여름날 선풍기 앞에 앉아 과자를 먹으며 TV를 보고 있다. TV 속 화면도 사진에 포착되었는데 TV에는 야구 중계가 한창이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한 장면을 흐뭇한 미소로 카메라 앵글에 담았을 엄마의 미소도 그려지기에 이 사진은 내 보물 상자 속에 고이 간직중이다.
며칠 전 사진을 꺼내 봤다.
한참 들여다보다 TV 속 아빠가 관심 있게 지켜보던 야구 경기가 어느 팀의 경기일지 궁금해졌다.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하여 확대했다. 어렴풋하게 빙그레 이글스라는 글씨가 보였다. 한화 이글스의 십 년 된 팬으로서 나름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함께 이글스를 응원하며 행복해했을 텐데 아쉬움이 크다.
내가 야구를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십 년 전이다.
그 전에는 야구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 야구장에 가본 적도 없고 야구 규칙도 전혀 몰랐다. 가끔 야구 중계 때문에 정규방송이 편성되지 않을 땐 볼멘소리로 불만을 표출했었다. 그랬던 나를 야구의 세계로 인도한 건 아들이다. 여섯 살 무렵 아들은 남편과 함께 우연히 야구장을 갔다. 그날은 아들 인생에서 큰 변곡점이 되었다. 그 날 이후 아들의 삶은 야구로 시작해서 야구로 끝났다. 눈을 뜨면 야구, 학교 갔다오면 야구, 짬짬히 비는 시간에도 늘 야구 소식을 찾아본다.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하교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연락조차 안되는 아들을 몹시 걱정했던 날이다. 쓸데없는 안 좋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몰더니 결국 혹시 성적비관이나 학교생활때문에 자살을 하려는 건 아니었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안 좋은 생각에 아들의 학교로 향하던 차에서 연락이 된 아들에게 엄마가 이런 걱정까지 했다며 말하니, 아들은 "야구 때문에 못 죽어."라고 말했다. 이 정도로 아들의 인생에서 야구는 빼놓을 수 없는 화두다.
어린 아들의 야구 사랑은 내게 그대로 전염되었다. 아들과 함께 야구 경기를 보고 아들과 대화하기 위해 야구 선수에 자연스레 관심을 가졌고 경기를 챙겨 봤다. 그렇게 십 년을 지내다 보니 이제는 야구 경기가 없는 월요일이 일주일 중 가장 무료하다.
야구 사랑은 해가 거듭될수록 깊어지고 있다.
중학교 3학년인 아들은 요즘 바쁘다. 학원 스케줄도 촘촘하고 수행평가와 시험 때문에 야구 경기를 보지 못할 때가 많다. 야구 경기는 보통 6시에 시작해서 9시 넘어 끝나는 편이고 거의 매일 경기가 있기 때문에 매번 처음부터 끝까지 챙겨보기 어렵다. 학생으로 바쁘게 하루하루를 견뎌내는 아들 대신 엄마인 내가 라인업을 확인하거나 경기 중간중간 아들에게 소식을 전할 때가 많다.
매일 야구를 살뜰하게 챙겨보는 내 모습과 마주할 때면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으로 성장한 맹자가 생각한다.
맹자는 우리에게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로 익숙한 학자다.
맹자의 어머니는 아들의 바른 성장을 위해 세 번 이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맹자 어머니(급씨(伋氏))의 이야기는 유향(劉向)이 지은 [열녀전(列女傳)]에 등장한다. 열녀전에 따르면 맹자의 집은 원래 공동묘지 근처에 있었다고 한다. 어린 맹자는 자라면서 평소 보았던 대로 상여 옮기는 흉내와 곡하는 시늉을 하거나 상여꾼이 부르는 노래를 부르면서 놀았는데 맹자의 어머니가 이를 보고 아이의 교육에 좋지 않다고 걱정하여 이사를 간다. 맹자 어머니는 시장으로 이사를 갔는데, 이번에는 맹자가 친구들과 상인 흉내를 내며 놀았다. 맹자 어머니는 이 모습 역시 아이의 교육에 올바르지 않은 환경으로 생각하여 마지막으로 공자를 모시는 문묘 근처로 이사를 간다. 맹자가 관원들의 예절을 따라 하고 학문에 관심을 갖는 모습을 보고 맹자 어머니는 그제서야 만족했고 그곳에 계속 거주하였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 사랑이 대단한 부모들이 많다. 사람 사는 모습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언제나 어디서나 비슷한 것 같다.
맹자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 덕일까, 맹자는 따뜻한 철학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다수의 철학자들이 예민하고 냉소적인 반면 맹자의 철학은 굉장히 선하다는 인상을 풍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동양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맹자가 강조한 대표적 사상에서도 그의 따뜻함을 알 수 있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은 선하며(性善說) 이런 본성은 4단으로 표현된다고 말한다.
그가 전한 문장을 소개한다.
맹자가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남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不忍人之心)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에게 차마 어쩌지 못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까닭은 갑자기 어린아이가 우물로 들어가려는 것을 보게 되면 누구나 깜짝 놀라 측은한 마음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해서도 아니고, 동네사람들과 붕우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외면했을 경우 잔인하다는 오명을 듣기 싫어서도 아니다.
이로 말미암아 본다면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측은지심 惻隱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수오지심 羞惡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겸손하고 양보하는 마음(사양지심 辭讓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시비지심 是非之心)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측은지심은 인(仁)의 단서요, 수오지심은 의(義)의 단서요, 사양지심은 예(禮)의 단서요, 시비지심은 지(智)의 단서다. 인간이 이 사단(四端)을 가지고 있는 것은 팔다리(四體)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
맹자는 7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맹자가 직접 저술했다기보다는 맹자 사후에 제자들이 맹자가 전한 이야기와 문장을 엮은 것 같다.
- 양혜왕에게 왕도정치를 실시하라는 이야기를 다룬 양혜왕,
- 제자 공손추와의 대화를 통해 왕도정치 이야기를 강조한 공손추,
- 군주의 마음 가짐에 대해 이야기하는 등문공,
- 인간의 본성을 이야기하는 이루,
- 인간의 도리를 강조하는 만장,
- 고자와의 인간 본성에 대해 논한 고자,
- 군자의 마음가짐을 다룬 진심 7편이 전해진다.
위에 소개한 문장은 공손추 편에 나오는 것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맹자의 말처럼 사단은 인간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 도리이지만 그중에서 유독 눈길이 가는 것이 있다.
겸애를 강조한 측은지심과 자신의 잘못을 부끄러워할 것을 강조한 수오지심이다. 측은지심은 군주의 자질로 이어져 백성과 함께 즐거워할 것을 강조하는 여민동락(與民同樂) 이야기로 전개된다.
맹자가 전하는 문장들을 읽다 보면 묘하게 설득당하는 느낌이 든다. 적절한 비유를 제시하며 조곤조곤 이야기를 전개하고 대안까지 제시하는 모습에 듣다 보면 빠져드는 그런 기분이다.
맹자는 주나라가 몰락하고 혼란스럽던 시대를 살았다. 어지러운 시대를 견디며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존경받아 마땅하다 생각한다. 만나본 적은 없지만 아마도 맹자는 화도 잘 내지 않고 차분히 미소 지으며 할 말 다하는 그런 사람이었을 것 같다. 바른말을 해도 품성이 온화하면 주변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아무리 옳은 소리여도 짜증 섞인 목소리로 거친 모습을 보여주면 그를 따르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맹자를 처음 읽었을 때는 정치철학서라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읽다 보니,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이 꽤 많았다. 혼자 가만히 읽어도 위로받을 수 있는 문장들이 있기에 철학서의 역할도 충분히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여러 사람들에게 읽히는지 모르겠다. 맹자는 바람직한 인간상으로 군자를 언급하며 군자의 세 가지 즐거움을 말한다. 부모가 모두 살아계시고 형제에 변고가 없는 것이 첫 번째 즐거움이며, 하늘에 부끄럽지 않고 남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이 두 번째 즐거움이며, 천하에 인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이 세 번째 즐거움이라 말한다. 그는 두 번째 즐거움을 언급하며 ‘수오지심’ 이야기를 한 번 더 강조한다. 사단 중에서도 수오지심을 유독 강조했음을 알 수 있는 구절이다.
맹자가 강조했던 '수오지심'은 지금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필요한 삶의 자세라 생각한다. 타인의 작은 잘못을 들춰내기 바쁜 세상에서 정작 자신의 부끄러움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맹자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타인의 허물을 너무나도 잘 찾는다. 가끔은 이것도 허물일까 싶은 것도 과오라 판단하고 질책한다. 하지만 자신의 허물은 조용히 묻을 때가 많다. 여러 핑계거리를 찾아내서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한다. ‘부끄럽지 않냐’는 맹자의 말에 답할 때라 생각한다.
스포츠에 문외한인 내가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야구 경기를 본다. 그리고 경기를 보다 문득문득 철학자를 떠올린다. 그리고 글까지 쓰고 있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인간사는 늘 예측 불가능이다. 맹자 어머니의 마음으로 나는 앞으로도 바쁜 아들 대신 야구 경기를 보며 경기 소식을 전할 것이다. 아들이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마칠 때쯤에 매일 저녁 온 가족이 TV 볼륨을 높인 채 야구 경기를 보고 싶다.
어떤 사람들은 맹자 어머니가 이사한 모습을 보고 과한 치맛바람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맹자 어머니의 따뜻한 관심이 맹자를 탄생시켰다고 본다. 관심은 사랑의 표현이니 말이다. 나 역시 아들에게 야구 소식을 전하며 사랑을 함께 전한다. 그리고 야구 경기 속 숨어 있는 인생사와 맹자의 이야기도 조심스럽게 함께 전하며 아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속삭이는 어머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