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선수의 은퇴 시기는 비교적 빠른 편이다.
보통 30대 중·후반에 은퇴를 하는데 몸관리를 잘한 선수들은 불혹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 많은 사람들은 야구 선수의 연봉을 듣고 이른 나이에 은퇴해도 괜찮은 거 아니냐고 말한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프로선수들의 연봉은 억 단위이긴 하지만 모든 야구 선수들의 연봉이 높은 건 아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가 2024년 3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신인과 외국인 선수를 제외한 10개 구단 소속 선수 513명의 2023년 평균 연봉은 1억 5495만 원이라 발표했다. 2022년에는 1억 5259만 원, 2021년은 1억4648만원이었으니 평균 1억 중반대의 연봉을 받는다. 이 자료에 기초하여 선수 생활을 하는 10여 년 남짓한 기간 동안 받을 수 있는 연봉을 계산해 보면 10억 내외가 되는 셈이다. 30대의 나이에 은퇴하여 길고 긴 세월을 살아가려면 선수 생활이 끝나고 안정적 인생 2막이 필요해 보인다.
30대가 넘고 체력과 기력이 모두 예전 같지 않을 때 선수들은 불안한 모습을 보인다. 스스로 은퇴를 고려하기도 하고, 시즌 종료 후 구단에서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아 방출되기도 한다. 방출 통보 후, 이적할 구단을 찾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선수도 있다. 매년 새로운 신인의 등장에 자신의 존재를 슬며시 감출 수밖에 없는 선수들을 볼 때면 함께 늙어가는 처지라 그런지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누군가 말했다.
죽음보다 두려운 건 노화라고.
어쩌면 매일매일 늙어가는 모습을 마주해야 하는 고통 때문에 우리는 노화를 두려워하는지도 모르겠다.
한 구단에서 십여 년 넘게 장기근속한 선수들에게는 구단 차원에서 은퇴식을 마련해 준다. 의리를 지키는 구단들이 많지만, 간혹 장기근속한 선수를 방출시키는 잔혹한 구단도 있다. 함께 한 세월이 있는데 나이 들었다고 떠나라는 구단의 모습을 볼 때면 화가 난다. 나이 듦의 서러움을 아는 지라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최근 마무리 투수였던 선수의 은퇴식을 봤다. 마지막 경기인지라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괜히 짠하고 쓸쓸한 것 같아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이라는 말은 가끔 알 수 없는 힘을 끌어모으는 그런 힘도 갖는다고 생각한다. 마운드에서 마지막으로 공을 던지는 선수가 좋은 공만 던지길 염원했다. 경기는 패배로 끝났지만 선수의 은퇴식을 지켜보기 위해 팬들은 자리를 지켰다. 세월의 무상함 앞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선수를 보니 늙어가는 것이 노인이 되는 것이 마냥 슬픈 일은 아니라고 이야기한 키케로가 생각났다.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는 기원전 106년 1월 3일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기원전 43년 12월 7일(율리우스력) 포르미아에서 사망한 로마의 정치인이다. 라틴어 작가, 변호사로도 알려져 있고 의무론과 국가론을 저술하여 철학자로도 익숙한 이름이다. 그가 저술한 책 중 가볍게 읽고 생각할 만한 철학서 중 [노년에 대하여]가 있다. 그는 나이 듦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며 다음과 같은 문장을 전한다.
그는 [노년에 대하여]에서 나이 듦의 아름다움을 찬양한다. 키케로가 전한 문장을 소개한다.
"인생의 주로(走路)는 정해져 있네. 자연의 길은 하나뿐이며, 그 길은 한 번만 가게 되어 있지.
그리고 인생의 매 단계에는 고유한 특징이 있네. 소년은 허약하고, 청년은 저돌적이고, 장년은 위엄이 있으며, 노년은 완숙한데, 이런 자질들은 제철이 되어야 거두어들일 수 있는 자연의 결실과도 같은 것이라네."
키케로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노년기의 걱정과 불편함을 자세하게 열거한다. 그리고 그 불편함과 걱정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하며 조목조목 반박하면서 노년기의 긍정적 모습을 강조한다. 그리고 건강하고 유쾌하게 노년을 보낸 인물들을 소개하며 늙음의 미학을 묵상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는 노년에 대한 두려움을 네 가지로 분류한다.
첫째, 노년에는 큰일을 할 수 없다.
둘째, 노년에는 몸이 쇠약해진다.
셋째, 노년은 거의 모든 쾌락을 앗아간다.
넷째, 노년이 되면 죽을 날이 멀지 않다.
키케로가 제시한 네 가지 두려움은 나이가 들면서 인간이 느끼는 보편적 감정이다. 키케로가 제시한 네 가지 두려움을 마흔 중반에 들어선 나도 종종 느낀다. 그리고 앞으로 노화를 더욱 많이 두려워할 날들이 걱정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지금은 노안의 시작 단계라 가까이에 있는 작은 글씨를 보기 어렵지만 세월이 좀 더 지나면 백내장을 걱정할 것 같아 우울하다.
흔히 나이 듦을 풍미 가득한 포도주가 익어가는 과정에 비유한다. 하지만 오랜 기간 발효와 숙성의 과정을 거친 포도주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맛을 내는 것은 아니다. 나이 듦도 마찬가지다.
중년에 무언가를 시작해도 전혀 늦지 않은 100세 시대를 살고 있다. 100세 시대가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 모르겠지만 노인으로 살아가야 할 시간이 우리에겐 많이 주어진 건 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노화와 마주해야 할까?
마흔에 은퇴하는 선수의 눈물을 보니 직장생활 20년 차가 넘은 내 삶을 생각하게 됐다. 한 분야에서 10년 이상 장기 근속하면 전문가라 생각하는 내가 20년 넘게 한 분야에 몰두해서 살고 있다. 날씨가 좋은 날엔 훌쩍 떠나고 싶어 직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고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엔 이불 밖으로 나오기 싫어 직장으로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수요일의 고비를 넘기고 목요일이 되면 주말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버티는 중이다. 누구나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내게도 직장생활에 마침표를 찍는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나이 듦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시기도 조만간 도래할 것이다.(지금은 나이 듦의 흔적을 마주하면 애써 거부하는 중이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를 수는 없다. 마흔에 은퇴하는 선수의 눈물에 또 한 번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그리고 세월의 무상함 앞에 노년의 두려움도 함께 느꼈다. 노년에 대한 두려움에 한숨이 깊어질 땐, 키케로의 문장을 읽는다. 그의 문장과 마주하면 나이 듦이 속상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십 대 때는 삼십 대가 두려웠고 삼십 대에는 사십 대가 두려웠다. 마흔 중반인 지금은 앞으로 내게 닥칠 노화의 여러 장면들이 몹시 두렵다. 하지만 두려운 마음만 갖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두려워해도 시간의 흐름은 나를 노인의 자리에 데려갈 것이다. 백발에 돋보기를 쓴 할머니가 된 모습을 상상하면 두 눈이 질끈 감기지만, 이 또한 시간이 흐르면 괜찮아질 때가 올 것이다. 자연스레 노화를 인정하며 나이 값하며 늙어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부디 50 답게, 60 답게, 70 답게 주어진 세상과의 인연만큼 제대로 살다 갔으면 좋겠다.
마흔에 은퇴하는 선수가 인생 2막에 성공하길 기원하며, 나의 늙어가는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