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건주 Jan 19. 2023

다원주의자 김수영 : 달나라의 장난

김수영의 1950년대 시에서는 현대 자본주의 시대 유물론과 유심론, 물질과 정신, 전통과 문명, 돈과 예술 사이의 갈등이 주로 나타난다. 그는 1953년에 탈고한 「달나라의 장난」에서부터 당면한 물질적 생활난 해결뿐만 아니라 정신적 가치의 회복을 위해서도 노력하겠다는 다원주의적 의지를 제시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전쟁 직후 도시에서 쫓겨 다니는 듯이 살고 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생활난에 시달리면서 누구보다도 “여유” 없이 바쁘게 살아가던 그는 어느 날 “주인” 집에 와서 “어린아이”가 돌리고 있는 “팽이”를 보게 된다. 그는 “살림을 사는 아이”들처럼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하면서, 잠시 멈춰서 노는 아이들이 돌리는 자꾸 팽이를 쳐다보고 있다.      


그는 자신의 생활을 모두 다 내던지고, 자신의 나이와 나이가 준 무게를 생각하면서 “속임 없는 눈”으로 팽이가 도는 것을 보니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다고 하면서 팽이가 돌면서도 멈춰 서 있는 이중적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서서 있다는 말은 「토끼」(1949)에서 “고개를 들고 서서”가 “뛰는 훈련”과 대비되어 멈춰 서서 있다는 의미로 이해되는 것처럼 돌고 있는 팽이와 대비되어 멈춰 서 있는 팽이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토끼가 먹고살기 위해서 뛰어야 하는 육체적 존재인 동시에 멈춰 서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기도 하는 영혼의 존재이듯이 팽이도 돌고 있는 동시에 멈춰 서서 있기도 하는 이중적 존재라는 뜻이다. 그가 앞부분에서 “살림을 사는 아해들도 아름다웁듯이 / 노는 아해들도 아름다워 보인다”라고 말하는 것도 살림(물질적 생활)과 놀이(정신적 가치)를 모두 긍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해석은 그가 시의 끝부분에서 팽이를 “서서 돌고 있는” 다원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것으로 뒷받침된다. 팽이는 물질적 생활을 위해 도는 것과 정신적 가치를 위해 멈춰 서 있는 것을 모두 긍정하면서 그 사이에서 긴장과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다원적 주체인 것이다. 그동안 많은 연구자들이 쓰러지지 않고 돌고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추어 팽이를 “일상의 삶에서 자기 갱신의 삶으로 비극적 도약”이나, “김수영이 자신 있게 회복해야 할 단독자” 등으로 해석해 왔다. 그런데 여기서 김수영이 제시하는 팽이는 분명히 “서서 돌고 있는 것”이다. 그는 멈춰 서 있는 팽이면서 돌고 있는 팽이이기도 한 다원적인 팽이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 바쁘지도 않으니 / 마치 별세계같이 보인다”라고 하면서, 서서 돌고 있는 다원적인 팽이와 달리 개인적 생활을 위해서 쫓겨다니는 듯이 바쁘게 돌고만 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그리고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다고 하면서,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던지자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팽이를 “달나라의 장난” 같다고 느낀다. 그는 현실적인 속박을 상징하는 끈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도는 팽이를 보면서, 달나라에서 장난하고 있는 정신적인 존재를 상상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그는 팽이가 자신을 울린다고 하면서 팽이처럼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지 못하고 물질적 생활을 위해 바쁘게 살고 있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한다. 그리고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자신은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서,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 있는 이 밤에 방심조차 해서는 안 된다고 스스로 다짐한다. 낮에는 돈을 벌기 위해 뛰어다니더라도 밤에는 방심하지 말고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그가 물질적 생활을 완전히 부정하거나 초월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그가 이러한 자신의 “운명과 사명”이 놓여 있는 시간이 “밤”이라는 것을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밤’이 정신적인 예술을 추구하는 초월적인 시간이라면, ‘낮’은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돈을 버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현실적인 시간인 낮에는 가장으로서 돈을 벌기 위해 애쓰다가도 초월적인 시간인 밤에는 시인으로서 자신을 고쳐 나가는 정신적 예술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있다. 쉽게 말해서 낮에는 농사짓고, 밤에는 글을 읽는다는 전통적인 주경야독(晝耕夜讀)을 실천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는 “서서 돌고 있는” 팽이처럼 다원적인 주체가 되기 위한 방법으로 주경야독, 즉 낮에는 물질적인 생활을 위해 돈을 벌다가, 밤에는 정신적 예술을 추구하는 다원적 시간 의식을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팽이가 자신을 비웃는다고 느끼는 이유도 자신이 다원적인 존재인 팽이처럼 낮과 밤의 긴장과 균형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낮에는 육체를 가진 존재로서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다가 밤에는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서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휴식의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방심해서는 안 되는데 물질적 생활에만 사로잡혀 있는 자신을 팽이가 비웃고 있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도 그의 눈물은 단순한 일상적 한탄과 비애가 아니라, 영혼의 시간인 밤에는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는 “비행기 프로펠러”로 상징되는 물질적 생활보다는 “팽이”로 상징되는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전쟁 직후의 현실에서 어려운 것은 사실지만, 자신은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적어도 밤의 시간에는 수천 년 전의 성인(聖人)으로 상징되는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겠다고 다짐한다. 그리고 “서서 돌고 있는” 팽이를 보면서,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과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해서 울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한다. 여기서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이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각자 생존할 수 있는 물질적 생활 능력을 갖추는 것이고, ‘공통’된 그 무엇이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서 누구나 공유하는 정신적 가치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인 물질적 생활과 ‘공통된 그 무엇’인 정신적 가치를 모두 추구하겠다는 다원적 의지를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그가 “생각하면 서러운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서서 돌고 있는 팽이처럼 물질과 정신 어느 하나에 안주하지 못하고 양극 사이에서 긴장과 균형을 추구하는 것이 힘들고 서러운 일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쉽게 말해서 휴식의 시간인 밤에도 방심하지 않고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란 서러운 삶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원주의자 팽이-되기를 자신의 운명과 사명으로 제시한다. 그가 “팽이가 돈다”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시를 마무리하는 이유도 팽이처럼 끊임없이 물질과 정신 사이에서 균형을 추구하겠다는 의지를 형상화한 것으로 읽힌다.


이 시에서 김수영은 돌고 있는 팽이처럼 전쟁 직후의 폐허 속에서 생활난을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동시에 멈춰 서 있는 팽이처럼 영혼을 가진 인간으로서 정신적 가치도 함께 추구하겠다는 다원적 의지를 드러낸다. 그리고 구체적인 실천 방법으로 전통적인 주경야독(晝耕夜讀)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그는 다원주의자로서 낮에 물질적 생활을 위해 애쓰는 것처럼 밤에는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달나라의 장난」(1953)          


팽이가 돈다

어린아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 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 안에서 쫓겨 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

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

마치 별세계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 벽화 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과 사명에 놓여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의 성인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작가의 이전글 자유주의자 김수영 : 공자의 생활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