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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주 Feb 09. 2023

민족주의자 김수영 : 국립도서관

김수영은 1955년에 탈고한 「국립도서관」에서 민족적 전통을 강조하고 있다. 첫 연에서 화자는 국립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어린 학도”들을 보면서 옛날에 공부하던 생각을 떠올린다. 그리고 과거와 현재의 “우열(優劣)”을 따지지 않고,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이라고 “달관(達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설움”이 샘솟아 나온다고 고백한다. 그는 “당시의 시대가 지금보다 훨씬 좋았다”라고 생각하는 국수주의자는 아니지만, 국립도서관에서 “모독당한 과거”나 “약탈된 소유권”, “연령의 넘지 못할 차이”를 느끼면서 서러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서양 자본주의 문명이 불러온 “전쟁”의 파괴 속에서 “불사조”같이 살아난 무수한 “몸뚱아리”들, “우주의 파편”이나 “혜성”같이 반짝이는 민족의 역사와 전통 속에서 살고 있는 젊은 세대들이 무엇을 “예의 연마”하고 있는지 묻는다. 


이어서 서양 자본주의 문명만을 추종하는 이런 현실을 보고도 흥분할 줄 모르는 자신을 비롯한 우리들의 “생리(生理)”와 민족이 나가야 할 “방향”을 가리지 않고 서양주의에만 빠져서 “도적질”해 온 “죽어 있는” 서양의 서책들만 모아 놓은 도서관을 “조류(鳥類)의 시뇨(屎尿)”, 즉 새의 똥과 오줌에 비유하면서 신랄하게 비판한다. 이로 보아 그가 국립도서관에서 설움을 느끼는 이유가 나라에서 만든 도서관이 민족의 전통을 배제하고 파괴적인 전쟁을 초래한 서양 자본주의 문명에 대한 책들만 소장하고 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그는 국립도서관을 보면서 서양 자본주의 문명으로 인해 모독당하고, 약탈된 “피폐한 고향의 설움”을 느낀다고 거듭 토로하면서, 민족의 전통을 부정하고 서양 자본주의 문명만을 추종한다면, 새로운 민족의 미래를 창조할 수 있는 “예언자”를 배출할 수 없을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국립도서관의 창설 의도 자체가 자본주의 문명의 한계를 비판하는 “풍자”일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예언자를 내기 위해서는 “옛날”에 자신이 공부하던 것처럼 우리의 민족적 전통을 연마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 시는 “곧바로 부정해야 할 전통과 연결”되는 서책들을 모아 놓은 도서관이나, “조선 문화를 검열하고 일본 문화를 세뇌시키는 방도를 연구하는 조선총독부 도서관”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전통을 배제하고 서양 자본주의 문명만을 담고 있는 서책들로 가득한 국립도서관을 비판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국립도서관」(1955)


모두들 공부하는 속에 와 보면 나도 옛날에 공부하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 당시의 시대가 지금보다 훨씬 좋았다고

누구나 어른들은 말하고 있으나

나는 그 우열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이라’고

구태여 달관하고 있는 지금의 내 마음에

샘솟아 나오려는 이 설움은 무엇인가

모독당한 과거일까

약탈된 소유권일까

그대들 어린 학도들과 나 사이에 놓여 있는

연령의 넘지 못할 차이일까……     


전쟁의 모든 파괴 속에서

불사조같이 살아난 너의 몸뚱아리―

우주의 파편같이

혹은 혜성같이 반짝이는

무수한 잔재 속에 담겨있는 또 이 무수한 몸뚱아리―들은

지금 무엇을 예의 연마하고 있는가     


흥분할 줄 모르는 나의 생리와

방향을 가리지 않고 서있는 서가 사이에서

도적질이나 하듯이 희끗희끗 내어다보는 저 흰 벽들은

무슨 조류(鳥類)의 시뇨(屎尿)와도 같다     


오 죽어있는 방대한 서책들     


너를 보는 설움은 피폐한 고향의 설움일지도 모른다

예언자가 나지 않는 거리로 창이 난 이 도서관은

창설의 의도부터가 풍자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모두들 공부하는 속에 와 보면 나도 옛날에 공부하던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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