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은 1964년에 탈고한 「현대식 교량」에서 자본주의 문명과 민족 정신 사이의 갈등을 제시하고 있다. 화자는 “현대식 교량”을 건널 때마다 갑자기 “회고주의자”가 된다고 하면서, “식민지의 곤충들”은 이것이 얼마나 “죄가 많은 다리”인 줄도 모르고 “자기의 다리”처럼 건너다닌다고 비판한다. 여기서 현대식 교량은 1962년에 착공해서 1965년에 준공한 제2한강교(현 양화대교)를 가리키는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이 다리가 왜 “죄가 많은 다리”인지, “식민지 곤총”이 왜 나오는지 분명하지 않다.
여기서 현대식 교량은 실제의 다리가 아니라, “양극단을 매개하는 “다리” 고유의 기능을 한 단계 추상화함으로써 세대 간의 소통”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시가 한일협정이 체결된 1965년 6월 22일 직후인 7월《현대문학》에 게재되었고, “회고”, “죄”, “식민지”, “적” 등이 직접 언급되어 있기 때문에 당시 논란이 컸었던 한일협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식민지 곤충들”은 과거 일본이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죄”를 망각하고 한일협정을 무조건 찬성하는 사람들을 풍자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는 특히 “나이 어린 사람들”이 어째서 이 다리가 “부자연스러운지”를 모른다고 한탄하면서, 자기는 이 다리를 건널 때마다 심장을 기계처럼 중지시키는 연습을 무수히 해 왔다고 강조한다. 젊은 세대들은 식민지 시대를 겪어보지 못해서 한일협정의 부자연스러움을 모르지만, 자신은 한일협정 얘기가 나올 때마다 일제 강점기의 울분을 참기 위한 연습을 무수히 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자신의 “반항”보다 젊은이들의 자신에 대한 “사랑”, “신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대식 교량인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것은 과거 20년 전 식민지 시대에 머물러 있는 시대착오적인 반항임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가 젊은이들이 “선생님 이야기는 20년 전 이야기이지요”라고 말할 때마다 “새로운 여유”와 “새로운 역사”를 느끼는 것도 과거의 민족 감정에 치우쳐 한일협정에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미래 젊은 세대에게 물질적 생활의 여유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새로운 역사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일협정은 미래 세대에게 경제적 여유를 가져다 줄 수 있는 새로운 역사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런 해석은 그의 1964년 산문「대중의 시와 국민가요」로 뒷받침된다. 여기서 그는 “우리 사회에 좋은 국민가요가 아직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천재적인 작사자나 작곡가가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남북통일과 현대공업화의 비전이 아직까지도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276)라고 쓰고 있다. 그는 당시에 “남북통일”이라는 민족적 과제에 못지않게 물질적 생활의 여유를 위한 “현대공업화”를 시대적 과제로 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어서 그는 “이런 경이(驚異)는 나를 늙게 하는 동시에 젊게 한다 / 아니 늙게 하지도 젊게 하지도 않는다”라고 하면서, “다리는 이러한 정지의 증인이다 / 젊음과 늙음이 엇갈리는 순간 / 그러한 속력과 속력의 정돈 속에서 / 다리는 사랑을 배운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현대적 문명을 추구하는 “젊음” 세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여유”를 위해서 자신처럼 전통적 민족을 추구하는 “늙음” 세대가 속력을 “정돈”해서 멈추는 “정지”의 순간이 바로 사랑임을 배웠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구세대가 민족정신을 내세워서 반대만 하지 말고, 새로운 여유를 위해 현대 자본주의 문명을 추구하는 신세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한일협정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말 희한한 일이다 / 나는 이제 적을 형제로 만드는 실증을 / 똑똑하게 천천히 보았으니까!”라고 외치면서 시를 마무리한다. 여기서 희한한 일은 “적을 이기려면 적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역설적 사랑”이 아니라, 한일협정이 적대적인 국가 간에 체결되는 조약으로서 “적을 형제로 만드는 실증”이기 때문에 좀처럼 일어나기 어려운 희한한 일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제는 자신을 비롯한 과거 세대가 민족적 감정과 정신만을 중시하지 말고 한일협정을 수용하면서 “적을 형제로 만드는” “사랑”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김수영의 시에서 일본은 친일과 반일이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의 대상이 아니다. 시인은 과거 식민 지배자인 '적'으로서의 일본과 미래의 자본주의 문명 발전을 위해 협력해야 하는 '형제'로서의 일본 사이에서 긴장과 균형을 추구했던 다원주의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