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공화국에서는 교원이나 공무원도 다른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이 제한되고 있는 것은 독재 권력에 의한 부당한 탄압이나, 교원 집단에 대한 비합리적 혐오 때문이 아니라, 헌법에 규정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이라는 공공선을 위해서이다.
87년 민주화운동의 성과라고 할 수 있는 현행 헌법 제31조 제4항에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정치적 중립성 및 대학의 자율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그리고 헌법 제7조 제2항에는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과거 1960년 4,19 혁명을 불러온 3,15 부정선거 이후 우리 헌법은 선거에서 정권이 교원과 공무원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는 관권선거를 방지하기 위해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명시해 놓은 것이다.
그동안 헌법재판소에서도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보장해서 얻는 사적 이익보다 이를 제한해서 얻는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공적 이익이 더욱 크다는 이유로 기본권 제한이 정당하다고 판단해 왔다. 민주공화국에서도 조직적인 관권선거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금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일반 교사들은 정치활동을 허용해도 관권선거가 문제될 리가 없다. 하지만 학교 교장만 해도 사정이 다르다. 지금은 교장이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려면 퇴직해야 한다. 그리고 현직 교사들도 선거운동을 할 수가 없으니 퇴직 교장을 드러내 놓고 도울 수가 없다. 학부모들은 선거운동에 나설 수도 있지만, 이미 퇴직한 교장을 위해 애쓸 학부모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현직 교장이 휴직한 후 교육감 선거에 출마할 수 있고, 교사들도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교장은 소속 교사와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선거 캠프를 꾸리고 선거 운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소속 교사와 학부모들 입장에서도 출마한 교장이 선거에서 낙선하더라도 다시 교장으로 복귀할 수 있으니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현직 교장이 아니라 현직 교육감이 교육감 선거에 다시 나오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관권선거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 지금은 교육감이라도 지역 학교의 교장과 교사들을 선거운동에 동원할 수가 없다. 그런데 정치활동이 허용되어 교장과 교사들도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되면, 현직 교육감은 이들을 선거에 조직적으로 동원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교원과 함께 교육청 공무원까지 정치활동이 허용된다면, 현직 교육감이 공적인 교육청 조직까지 총동원하는 관권선거를 막을 수가 없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미 지금도 현직 교육감들은 선거법의 공백을 이용해서 암암리에 관권선거를 하고 있다. 그런데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활동까지 허용하면 현직 교육감들이 날개를 달게 될 것이다. 지금 교육감 임기는 4년이고, 3선 연임이 가능하지만, 방대한 공적 조직을 동원할 수 있는 현직 프리미엄으로 인해 사실상 교육감 임기가 12년으로 늘어나게 될지도 모른다.
교원의 정치활동 허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교육감의 정치활동도 허용하자고 주장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 이론적으로만 보면, 교육감은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원이 아니라, 선거라는 정치적 과정에 의해 선출되므로 정치적 중립 의무가 교원보다는 약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지역의 학교 교육을 책임지는 교육감은 정당 가입이나 선거운동 등 집단적인 정치활동을 절대로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정치활동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내년 선거를 앞두고 교육감들이 정치적인 행보를 하고 있는데, 정치활동까지 허용되면 지위를 이용한 관권 선거를 막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현행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 제24조 제1항에는 "교육감후보자가 되려는 사람은 해당 시도지사의 피선거권이 있는 사람으로서 후보자등록신청 개시일부터 과거 1년 동안 정당의 당원이 아닌 사람이어야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교육감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규정이지만, 과연 이를 통해 교육감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될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내내 특정 정당 소속으로서 적극적으로 정치활동을 해왔던 국회의원이나 대학 교수들도 후보자등록 1년 전에만 꼼수 탈당을 하면 교육감 선거에 출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민의힘이 김민석 국무총리를 선거법 위반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김민석 총리가 오세훈 시장의 한강버스, 세운4구역 등 종묘 일대 재개발, 광화문 '감사의 정원' 설치 문제까지 연이어 비판하고 나선 것은 오세훈 시장의 낙선을 위한 사전 선거운동적 성격이 짙기 때문에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 의무를 규정한 실정법 위반이라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한강버스를 두고 정치공세를 펼치기 위해 현장에 방문했을 때,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이 총리 왼편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다. 윤영희 서울시의원도 지난 시정질의에서 '서울교육감인가? 정치교육감인가?' 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정근식 교육감은 지난 국정감사에서도 박주민 의원이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당일 학부모 간담회를 박 의원과 함께 열었다가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으로 질타를 받기도 했다.
교육감은 누구보다도 정치적 중립성이 철저하게 요구되는 자리이다. 그래서 정당에 가입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정당에 가입하면 출마할 수도 없다. 그런데 정근식 교육감은 내년 서울시교육감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의도를 의심 받을 수밖에 없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하고 있으니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교원과 공무원이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있게 되면 교육감 선거에서 가장 유리해지는 것은 교육감이나 교육청 고위 공무원들이다. 교육감 선거의 경우 현직 교육감은 교육청의 모든 공무원들을 선거 운동원으로 합법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일선 학교의 교장이나 일부 교사들도 인사권자인 현직 교육감을 위해서 선거 운동에 발 벗고 나설 것이 틀림없다.
실제로 최근 춘천지법원이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불법 선거 운동과 뇌물수수 혐의를 받는 강원도교육감의 교육자치법 위반과 사전 뇌물수수 혐의 사건 선고 공판에서 교육감에게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검찰은 앞선 결심 공판에서 교육감과 도교육청 대변인에게 징역 3년을, 전직 교사에게 벌금 500만 원을, 지역 초등학교 교장 등에게 징역 6개월을 구형했었다.
교육감이 선거법 위반으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자, 강원지역 교원단체들이 선출직 공무원의 선거법 위반은 공공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중대 사안이라는 이유로 교육감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앞으로 교원과 공무원들의 정당 가입과 선거 운동 등 정치적 행위가 허용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동안 교사 출신으로서 명예퇴직을 하고 내년 서울시교육감 선거를 준비하다 보니 정치활동이 제한되어 있는 교사가 선거에서 얼마나 불리한지 몸소 느끼고 있다. 그동안 교류해 왔던 사람들이 대부분 교사들인데, 선거에서 도움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선거법 위반으로 피해를 주지 않을지 더욱 조심하게 될 뿐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교원의 정치활동 허용에 반대한다. 이를 허용하면 관권선거로 인해 평교사 출신 후보가 당선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한편, 교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일반 시민들처럼 완전히 보장하는 것은 정치적 중립 의무가 부여되는 다른 공무원과의 형평성 문제가 발생한다. 교원도 시민으로서 정치적 행위를 허용해야 된다는 논리는 공무원도 시민으로서 이를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국공립 유초중고 학교 교원은 법관, 검사, 경찰공무원, 소방공무원, 군인 등과 함께 특수 분야의 업무를 담당하며 자격, 신분보장 등에서 특별법이 적용되는 특정직 공무원이다. 따라서 교원의 정치적 행위를 허용하면, 동일한 신분인 검사를 비롯해서 법관, 경찰공무원, 소방공무원, 군인 등의 정치적 행위도 허용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일반직 공무원까지 정치활동이 허용된다면, 전체 지자체 선거에서 현직 시장이나 도지사들이 소속 공무원들을 총동원하는 관권선거가 자행되어도 막을 길이 없게 될 것이다. 특히 현직 시장이나 도지사가 다시 선거에 출마한 경우는 공무원 조직 전체가 관권선거에 동원될 수도 있다.
교원과 공무원도 근무지 밖에서만 정치활동을 허용하고, 근무지 안에서는 정치적 중립을 지키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교원이나 공무원들이 특정 정당에 가입해서 선거 운동을 해도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이므로 관권선거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더구나 교사들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므로 어린 학생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암암리에 주입하지는 않을까, 그래서 학생들 사이에서도 극우니 극좌니, 1찍이니 2찍이니 하면서 적대적으로 대립하고 갈등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국민들이 더 많을 것이다.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적 행위를 허용해도 공직선거법상 엄정한 선거법 집행이나, 선관위의 감시, 감독을 통해서 관권선거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적 행위가 금지되어 있는 지금도 선거법 위반 사건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는데 엄정한 법집행만으로 해결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사실 일반 교사들만 생각하면 정치활동을 허용해도 조직적 관권선거를 걱정할 필요는 별로 없다. 그런데 교장, 교육감이나 시장, 도지사 등을 생각하면 교원과 공무원들을 총동원하는 조직적인 관권선거 우려를 지울 수가 없다.
우리 사회가 관권선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정치적 양극화가 해소되지 않는 한,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은 시기상조다. 우리 헌법에서 같은 시민임에도 불구하고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적 기본권을 제한하고 있는 이유는 그동안 정치적 이념 대립이 극심해서 관권선거의 폐해가 너무나도 컸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치적 이념 대립이 완화되기는커녕 계엄과 탄핵 등으로 오히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망국적인 관권선거를 방지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도 없이 교원과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 이건주 교육평론가/전 한국교총 현장대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