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행복의 함정.

여태까지 몰랐던 나를 위한 행복의 기준들.

by 김준태의 인사이트
나는 행복하다.


이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요? 저 또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족을 위해 달려가지만. 늘 무언가에 쫓기는 느낌을 받습니다.


누군가는 가끔 이야기합니다. '어릴 때가 행복하다. 학생일 때가 행복하다' 등등. 행복한 시기를 나눠 놓는 것도 신기한 일인 것 같습니다. 행복은 특정 조건들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 느껴야 할 만족인데 말이죠.


'시간이 흘러 생각해보면 그때가 행복했어'라는 이야기도 결국 현재 만족할 수 없고 과거를 추억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행복은 머나먼 것처럼 느껴지고. 추억에서나 만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힐링 자체가 행복은 아니다.


요즘 디저트를 먹으면서 힐링을 하고. 여행을 하면서 힐링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 돌아오면 모든 것은 그 자리에 있습니다. 여행 횟수는 잦아지며. 달디 단 디저트를 먹는 일도 많아집니다. 많이 먹을수록. 많이 다닐수록 그것이 주는 힐링의 가치는 점점 떨어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근본적인 해결은 아닙니다.


누군가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것이 바뀌어야 된다. 이것만 되면 행복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삶 속에서 완벽함을 찾는 인간의 습성이지만. 그것을 얻기 위해서 잃어가는 것들은 볼 수 없는 것이 또한 우리들입니다.


힐링은 곧 도피입니다. 도피가 꼭 나쁜 것은 아닙니다. 태풍이 불면 피하는 것이 분명 맞습니다. 그러나 매일 도피를 하게 되면 우리는 현실에서 맞서 싸울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행복에 대한 스스로의 기준.


사회를 살아가다 보면 정말 많은 요구를 받게 됩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등등. 우리가 속해 있는 곳에서 의무와 책임. 그리고 관행 등. 행동 하나하나를 구속받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잃어갑니다.


돈을 벌기 위해 직장을 다니지만. 행복하지 않습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해보지만 행복하지 않습니다. 학교에서 교육을 받지만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모습들은 누구의 책임일까요?


분명한 것은 개인의 책임으로 되돌리기엔 너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상황입니다. 모두가 스스로의 행복함을 꿈꾸기만 할 뿐. 자신이 행복하다고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적어 보입니다. 행복은 분명 현재 진행형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미래에 대한 꿈에서 행복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소박하다.


직장에서는 업무를 인정받으며. 효율적으로 일이 진행되면 만족도는 높아집니다. 업무에 따른 보상도 적절하다면 더욱 좋겠지요.


가정에서는 대화가 끊이질 않습니다. 부부간에 화목함이 있습니다. 무언가 고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부모 형제간에 함께 고민하고 격려해줍니다.


학교에서는 패가 갈리지 않고 친구들 간에 협력합니다. 성적만으로 아이들을 평가하지 않고 개개인의 잠재력을 키워주기 위해 집중합니다.


사회에서는 우리가 정해놓은 법에 따라 일이 진행되니다. 편법은 없으며 누구나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것은 합심하여 시정합니다.


위에 나오는 이야기는 교과서 적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기본적인 행복을 추구할 뿐입니다. 모두가 경쟁을 통해서 약자의 것을 빼앗아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지금은 내가 강자처럼 보이지만. 언젠가는 약자로 되돌아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하라'는 강요.


누군가는 행복에 대해서 강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돈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다는 달콤한 이야기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부분에서는 사실이지만. 그 이야기는 틀린 이야기입니다.


사회, 직장, 학교, 가정 등에서 우리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우리는 행복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조금 더 풍요로워진다고 해서 위의 것들이 자연히 해결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함정입니다.


우리는 집단 최면에 빠져 있습니다. 마치 부자가 되면. 물질적으로 얻는 것이 많아지면. 몇 가지 일들만 해결되면 행복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현재가 아니고 과거 혹은 미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현재를 희생할 것을 요구합니다.


현재가 희생되어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든 그때에 맞는 시기가 있습니다. 학생이라고 해도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직장인 역시 지금 행복해야 합니다. 은퇴 후 행복보다 지금의 행복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가정은 모두가 좋아해야 할 곳입니다. 안정된 느낌이 들어야만 합니다. 권위 대신 평등과 사랑이 넘쳐야 합니다.


작은 것을 포기하면 얻게 되는 큰 것.


나도 부자고 너도 부자고 모두가 부자일 수는 없습니다. 자본주의는 현실적으로 그런 제도입니다. 물질적으로 모두가 풍요롭고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지는 사회는 불가능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탐욕입니다. 탐욕 사회에 정의가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기본적으로 법과 질서가 지켜져야 하며. 부당한 사유로 억압받는 일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정화해 나가기 시작해야 합니다.


기본이 지켜지는 사회는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가정의 시작은 '나'입니다. 내 스스로 기본 원칙을 무시하면서 가족 구성원에게 기본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가정 안에서 탄탄해진 결속력은 사회가 어떻게 변한다고 해도 순리를 우선시하게 됩니다. 당장은 손해인 듯 하지만 장기간을 놓고 보면 얻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우리가 작은 것을 포기하면 얻게 되는 것은 기본적인 안정성입니다. 만약 불합리함을 보고도 이득 될 것이 없다고 눈을 감는다면. 그것은 나중에 더 큰 문제로 내 앞에 다가와 나에게 불합리함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그 상황에서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요?


변화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내가 변화되기 시작하면. 분명 주변에 작은 변화가 시작됩니다. 만약 불합리함으로 인해서 불행을 겪고 있다면 우리는 결단과 실행을 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첫 번째 행복의 조건은 내 스스로 이 상황에서 벗어나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나의 삶을 다른 사람이 개선해주길 바란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아마도 은퇴할 때까지 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현실 속에서 나를 변화시키는 일은 불가능할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능합니다. 다른 사람을 바꾸는 일은 어렵지만. 나를 바꾸는 일은 내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 결단과 실행이 필요합니다.


행복할 자격이 있는 우리.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우리 스스로가 사랑받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이 사회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태어난 부품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조종하는 생각의 노예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존재는 우리 스스로 인정하는 가치만큼 커질 수 있습니다.


스스로의 행복을 우리가 포기한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은 우리 스스로 암묵적인 동의하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원칙이 지켜지는 사회이며. 그것이 존재하는 본질을 잃지 않는 삶입니다.


행복은 멀지 않습니다. 맹목적인 만족이 아닙니다. 주변에서 만족할 수 있는 것은 만족하되. 내가 개선해야 할 것은 상황에 맞게 개선해야만 합니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스스로입니다. 그리고 내가 얻은 만족을 모두와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나눔의 기쁨 또한 행복의 조건에 해당합니다.


행복의 함정에 빠졌던 나.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나오고. 남들과 경쟁해서 늘 이기며. 돈을 많이 벌어서 탄탄한 노후를 만드는 것. 안정된 생활을 위해 경쟁을 통해 내 것을 챙기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그렇게 내 것이 많아야만 행복한 줄 알았습니다.


이 것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 방식이고 적응해야 하는 길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경쟁에서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모두가 피폐한 패배자였으며 성공한 사람 1명을 위해 99명의 희생자가 발생하는 구조였습니다.


가지면 가질수록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행복을 위해 새로운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작은 것부터 기준을 바꾸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젠 치열한 경쟁은 벗어나기로 했습니다. 경쟁 대상은 협력 대상으로 바꾸기로 했습니다. 가정에서는 권위 대신 평등을 선택했습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바꿔가며 아내와 행복을 실현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꼭 사회에서 정한 기준이 나에게 맞는다는 법은 없습니다.

행복하세요. 지금.

당신의 기준 대로.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