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양평김한량 Jun 29. 2018

이젠, 즐겁게 살아볼까요?

인생을 바꾸는 습관

즐겁게 산다는 것. 그것은 나에겐 모험과 같은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나는 도전했습니다. 왜 도전을 했는지는 계속해서 생각이 바뀜에 따라 이유도 달랐습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었고. 그것에서 결과를 보는 것만큼 흥분되는 일도 없었습니다.


새로운 일을 하다 보면 엄청난 반대에 부딪치게 됩니다. 만약 조직 안에서 한다면 조직 전체가 반대하기도 하고. 가족에게 보여준다면 그것도 놀라움으로 인해서 전통적인 삶을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이 나쁜 것은 아니고 미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는 또 답이 바뀔 수 있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즐거운가? 


 즐거움의 기준은 각자마다 다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느낌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가 느끼기에 즐겁다는 생각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즐거웠던 순간을 바로 '오늘'이라고 답하거나 바로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 하진 않습니다. 엄청 예전에 떠났던 일이나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즐거울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렇게 나는 살아도 되는 것인가에 대한 부분입니다. 먼저 즐겁지 않은 이유를 아래에 나열해보겠습니다. 


1.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지 못하다. 

2. 흥미 없는 일에 많은 시간을 쓰고 있다. 

3.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4. 의무감으로 인해서 잡일이 많다. 

5. 하루를 바쁘게 사용해서 밤이 되면 번아웃이 된다.

6. 하고 싶은 말을 누군가에게 마음껏 못 한다.

7. 내가 무언가 한다고 했을 때 응원해주는 이가 없다.

8. 현재 하고 있는 일이 미래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

9. 점점 상황이 좋아지지 않고 있어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10. 현재 상황은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다. 


잠재력을 연구하다 보면 모두가 비슷한 패턴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을 때. 힘들어합니다. 수많은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을 힘들어한다고 가정하면. 학생들이 힘들어하는 학교의 문제인지. 아니면 학생들이 이상해서 학생들이 힘들어하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무엇이든 본질에서 벗어나게 되면 언밸런스가 나타나게 됩니다. 학교에서 학생이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면. 학습의 본질인 잠재력 개발에서 실패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르침을 받는 학생도 가르치는 교사도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모두가 잠든 교실 속에서 혼자 수업을 하는 상황. 과연 어떤 것이 문제일까요? 즐겁게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요? 


해야 되니까 하는 것들. 


 학생들을 예로 들면. 학교에서 잠을 자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밤에 학원으로 인해서 피곤해서 그럴 수 있습니다. 학교 수업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다녀야 합니다. 책상에 누워서 긴 시간을 자는 스케줄이라고 하더라도 해야 하니까 모두 마쳐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10대의 가장 소중한 '시간'은 낭비가 되어 버립니다. 졸업한다고 해서 보상이 되진 않습니다. 


의무감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즐거움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해야 되니까 하는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장 피하는 음식점은 불친절하고 무표정하게 음식을 만드는 곳입니다. 아무리 맛있다고 하더라도 그곳은 피합니다. 밥을 먹으면서 체할 것 같은 분위기는 음식점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건강해지고자 먹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야 되니까 인생을 산다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가 누려야 할 것들은 일상에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점점 그 즐거움은 나이가 들 수록 사라져 갑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사회에 대한 불만이 많아지고 스스로가 움직이기보단 비판만 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시선을 바꿔야 합니다. 생각보다 나에게 의무를 강요하는 사회, 조직,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남들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 


 내가 무언가를 할 때.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듣고 일을 추진했다고 가정합니다. 그런데 일이 그만 잘못된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럼 남은 나에게 책임을 질까요? 물론 지지 않습니다. 일을 실행한 내 책임입니다. 지금 사회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에 대해서 말이 많습니다. 내가 먹고, 입고, 쓰고 하는 것을 의식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의식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의식하는 것은 모두 허수입니다. 왜냐하면 모두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죠. 내가 남을 의식해서 '어휴~ 쟤 왜 저래'라는 말 한마디를 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무언가를 바꿨다고 가정합니다. 그럼 저는 그 사람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것일까요? 물론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말하는 사람은 그냥 말하는 것뿐입니다. 그럼에도 서로 인식하느라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자신이 살고 싶은 인생을 산다는 것은 대부분 그게 무엇인지 조차 모릅니다. 저 역시 제가 해야 되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냥 삼성, 현대 같은 굴지의 기업을 만드는 것이 제 사명으로 느꼈고 경영 공부를 하고 수천 개의 기업을 사례 분석했습니다. 그러다가 재벌들이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았고. 그 가족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깨달으면서 다른 방향을 꿈꿨습니다. 


양평에 나의 마당을 갖고 사무실을 갖고 그곳에서 '잠재력'을 제대로 연구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집을 짓고 난 후에 느껴지던 무언가가 생겼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그 일이 그렇게 가치가 있는지 반문했습니다. 이전에 벌어 놓았던 전재산을 투입해서 그 프로젝트를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인지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혼자에게만 소중하다. 


 제가 잠재력 개발이라는 것에 사명을 느끼게 된 것은 저의 잠재력을 보게 되면서 였습니다. 아내와 저는 정말 산을 보고 땅을 샀습니다. 산 아래 2개의 집만이 존재하는 곳을 선택하고 가격도 매우 낮은 합리적인 가격에 땅을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6개월도 되지 않아서 20개가 넘는 집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부부는 좀 더 추진을 해보기로 합니다. 


이 집을 통해서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일을 마음껏 해보자. 그래도 망하는지 안 망하는지 테스트해보자. 그런 식으로 그전에 했던 일을 모두 그만두었습니다. 수입은 다시 급감한 상태에서 집을 짓느라 여러 가지 비용만 계속해서 올라갔습니다. 결국 통장의 잔고에 몇만 원 남을 때까지 버텼습니다. 그럴 때 전화가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집짓기 강의, 출판, 연재 등. 생활비 고민을 해소할 수 있는 부분들이 탄생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걱정했습니다. 과연 그렇게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게 되면 정말 살 수 있는지 말입니다. 그런데 자신이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것은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본인 밖에는 모릅니다. 안정적인 삶 그리고 다른 누군가가 내 인생을 책임져 주는 그런 삶. 이것이 과거에 학습된 삶의 모습이었을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그런 삶을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결국 소중한 삶을 찾기 위해서 모험은 필요합니다. 


즐거울 자격은 나에게 있을까? 


원하는 대학

원하는 직장

원하는 재산


이것은 삶을 살다 보면 얻게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단 2%만이 들어갈 수 있는 최상위권의 학교와 직장에 들어가지 못해서 불행하다면 98%의 인생은 인생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허상입니다. 그렇게 좋은 대학과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도 외로운 사람이 많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럼 현실적인 즐거움은 대학, 직장, 재산과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삶을 포기하고 살면서 그 자체에서 행복을 찾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각자가 모두 즐거울 자격을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즐거운 인생의 기준은 외형적인 것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먼저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아도 오해하지 않을 소중한 사람들. 내가 아끼는 일들. 취미. 물건 등. 생각보다 작은 것들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남들이 정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누군가가 


' 너 이 사람들하고 친하게 지내' 

' 너 앞으로 이런저런 일 해'

' 너 이 취미를 갖고 해'

' 너 이 물건 소중히 다뤄'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요? 듣는 입장인 경우라면 노예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회에서 정해준대로 살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정해준 공부를 하며, 일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즐거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가 노예임을 자처하는 것과 다를 게 없기 때문입니다. 


바꿀 수 있을까? 


 바꿀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들이 크다면 바꾸기 힘들 수 있습니다. 당장 그곳을 탈출하게 되면 다른 사람의 시선이 신경 쓰이고, 이전에 해보지 않았던 일들과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꾸기 위해서는 낯선 곳을 여행하듯 살아보는 것도 좋습니다. 왜냐하면 여행을 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익숙지 않은 곳에서 주는 묘한 매력은 강하기 때문입니다. 


바꾸는 힘은 자신이 갖고 있습니다. 저와 아내도 시골에 내려와서 원하는 대로 해보자는 도전을 했을 때. 둘만이 의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무게도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은 신기하게도 시간이 해결해줍니다. 익숙해지기 때문입니다. 스스로가 체감하는 것들이 영원할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우리의 상상입니다. 지금의 고민도 익숙해지면 다른 고민이 생기는 것과 같습니다. 


정말 인생을 즐겁게 바꾸고 싶은가? 


 바꿀 수 있는 것은 기정사실입니다. 인생에서 불변의 법칙은 '사람은 죽는다' 밖에 없습니다. 그 외에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게 변합니다. 세상도 변하고 나도 변합니다. 결국 내가 변하고자 마음을 먹는가 아닌가 가 가장 큰 관건입니다. 바꿀 의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말만 하는 경우라면 어떨까요? 그건 바꿀 수 없습니다. 


즐거움은 무언가 해낼 때 느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소소한 것들을 해냈을 때. 대단한 것들을 해냈을 때. 모든 사람에겐 즐거움을 줍니다. 그래서 일 뿐만 아니라 취미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여태까지 만약 자신만의 온전한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다면. 괜찮습니다. 모를 뿐이지 찾으면 찾을 수 있습니다. 수많은 직업이 있고, 취미가 있고,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삶을 바꿀 수 없다고 했었던 비관적인 사람들도 인생이 변화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체험'이 늘어나면서 였습니다. 이 체험은 이전에 해보지 못했던 색다른 일을 우연히 만나거나 도전했을 때 나타났습니다. 무엇이든 근본적인 방법이 바뀌면 결과도 바뀌게 됩니다. 자신의 인생이 즐거워지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만 합니다. 


내 앞길을 막는 것.


 생각해보면 무언가를 하려고 하면 꼭 앞길을 막는 것들이 있습니다. 바로 내 앞길을 막는 수많은 것들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생각했을 때. 안 되는 이유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룹니다. 스스로에게 안도감을 줍니다. 할 건데 나중으로 미룰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안도감은 지금 당장은 괜찮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똑같은 불만과 똑같은 상황에서 계속해서 쳇바퀴처럼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만약 쳇바퀴도 상관없다면 모르겠지만 그게 싫다면 바꿔볼 만합니다.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실패하면 또 배우고 다시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 멸망은 없습니다. 겁을 먹고 상상에만 존재하는 것들입니다. 


내 앞길을 막는 것은 나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책임'이 크게 없으므로 나만큼 나를 막진 못합니다. 자신 스스로가 늘 스스로를 막을 뿐입니다.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를 찾을 때 사람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각자의 위치는 각자가 마음먹은 만큼 가능합니다. 


여러분도 이젠 즐거워질 차례가 올 것입니다. 


기회를 잡으세요. 


이상 양평 김한량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성공과 실패를 부르는 선택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