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 도피로는 적합하지 않은.
허송세월 보내지 마라.
아버지께서는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 이런 이야 길 르 하셨다. 명언 중에 명언이었고. 실제로 우리 가족은 그 한마디대로 살게 되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도 그것이 가훈인 줄 알고 학교에 글씨로 써서 냈을 정도니.. 말의 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 줄 알았다.
실제로 나는 귀촌을 하면서 생각했다. 너무 바쁘게 살았으니. 이제는 좀 쉬고 싶다는 생각. 그런데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온 나에게 가만히 있으라는 이야기는 무언가를 하라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도피의 의미.
삶을 도피하는 일은 제일 간단하다. 외면하는 것은 눈에서 안 보이니 마치 모든 문제가 사라진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러나 중요한 일을 도피하게 되면 작은 것이 크게 되어 더욱 나를 괴롭히게 된다. 그래서 중요한 일은 도피해서는 안되지만. 사람 마음이 어디 그렇게만 될까.
몇 년간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쉬었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했다. 글을 쓰고 영상을 찍고. 이제 부부에서 아기까지 태어나 가족을 배우게 된다. 어쩌면 사람이 숨만 쉬고 있더라도 주변은 끊임없이 변하고 그 변화를 내가 완전히 외면하고 살 수는 없기 때문에 이 세상은 더 이상 도피를 허락하지 않는 듯하다.
강원도 산골에 가도 세상은 변했다.
제주도는 유배지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제는 외국인들은 물론 육지의 사람들도 마음만 먹으면 버스비보다 저렴하게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기까지 한다. 강원도 역시 올림픽을 개최하면서 고속도로까지 뚫려버려 이전 같은 모습은 아니다.
어딜 가나 국토의 대부분이 개발되었고 땅값은 천정부지 올랐다. 과거 서울의 삶이 힘들어서 시골에 땅을 크게 사서 내려온 분들은 오히려 더 부자가 된 경우도 많다. 돈의 가치는 줄었지만. 땅의 가치는 꾸준히 올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돈이 생기니 이젠 상황이 또 달라졌다. 시골에 돈이 없다는 말도 옛말이 되었다.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도피.
귀촌을 한 사람들이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이유는 '사람 때문에 지쳐서'였다. 아니 왜 귀촌을 해서 한적하게 사는데 사람 때문에 다시 도시로 돌아갈까?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웃끼리 서로 너무 삶에 간섭을 해서'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참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오죽 힘들었으면. 그렇게 까지 할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무엇보다 우리나라 사회에서 자리 잡고 있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모두의 삶에서 피로를 느끼는 듯하다. 지금 세대야 다르다지만. 과거의 세대에겐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귀촌은 결국 도피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을 피해서 왔지만. 결국 사람이 그리워 만나고. 사람이 그리워 만났다가도 너무 가까워서 피곤해지게 되어 자신을 스스로 고립시키기 위해 다시 아파트로 떠난다. 아이러니 하지만. 도피가 아닌 다른 의미로 오지 않는 이상 이것은 50%는 현실이 되어 떠나간다.
나의 삶. 그리고 살아 있는 삶.
자신의 삶이 살아있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진화되어야 한다. 육체는 늙지만. 정신 적으로는 진화가 멈추지 않을 수 있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젊은 생각들이 모여 세상을 바꾸기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갓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지금도 평생 머리를 자르지 않고 상투를 틀고 다닐 수 없는 노릇이다.
고려가 조선이 되고. 조선이 대한민국이 되었듯이. 계속해서 강산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세상은 변한다. 그러나 과거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거나. 지금 현재 상황이 싫어서 도피를 떠나게 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곳에서는 똑같은 문제는 발생할 확률이 높다. 왜냐하면 아무것도 해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삶은 살아 있는 삶이다.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고. 개구리가 또 알을 낳듯이. 세월은 흘러 흘러 변화한다. 도피는 그 변화를 거부하는 일이지만. 거대한 파도를 손으로 막는 일과 같다.
시골에서의 삶. 그리고 매력.
이곳에서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 그러나 원하지 않는 대로 살 수도 있다. 삶의 현실에서 지옥과 천국이 되는 것은 도시나 시골이나 같다. 무엇이든 마음먹기 달렸다는 어른들의 말씀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 삶은 꼭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더라도 그것이 시대와 맞지 않고. 나와 맞지 않는다면 스트레스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 아파트처럼 정형화된 설계도 없고. 모든 집의 땅의 크기도 위치도 다르다.
바라보는 풍경 역시 자연의 변화에 따라 무쌍하게 바뀌고 있다. 삶이란 이렇듯 바람이 불듯이 바뀌는 가운데 내 몸을 맡기는 것 과 같다. 느리지만 오히려 자연의 변화는 우리의 생각보다 빠르다. 수 십 년 동안 내 고집, 내 생각을 꺾지 않을 수는 있지만. 자연은 결코 그렇지 않다. 상황에 맞게 변한다.
이미 세상은 변했다. 도망칠 곳은 없다.
보통 시골로 내려오게 되면 50년 전의 삶을 상상하고 내려온다. 그러나 그런 세상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우린 변했다. 시골도 변했다. 읍내를 가기만 해도 이전처럼 낮은 건물이 있는 것은 아니다. 4층 이상의 건물도 보이고 주상복합 개발도 들어갔다.
집집마다 차가 있고. 최첨단 설비를 통해서 집이 가동되고 있다. 아파트의 삶과는 다르지만 40년 동안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없는 아파트에 비해서 시골의 집들은 개성에 맞게 올라가고 고쳐진다. 더욱 혁신적이 되었다.
내가 살고 싶었던 삶이 철저하게 느린 삶이었다면. 어느 정도 세상의 속도에 맞게 그리고 나의 발전에 맞게 변하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사람 역시 자연의 일부였던 것이다.
누군가 도피를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한다면. 귀촌을 도피의 답으로 생각한다면 결코 추천하고 싶지 않다. 내가 어떻게 살 것인지 분명한 사람들이 오히려 행복한 것이 귀촌 생활이었다.
집 짓는 것에 휘둘리고, 사람에 휘둘리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을 하게 되면 이곳은 도시에 비해서 정형화된 것이 없기에 더 심한 방황을 하게 된다. 도망치기 위해 올 곳이 아닌 오히려 내 마음대로 살기 위해 오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좁은 곳을 벗어나..
서울은 크다. 인구도 많다. 그런데 양평이란 곳은 더 크다. 면적은 1.5배나 되고. 녹지는 80% 이상이 숲으로 이뤄져 있다.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에 드문 드문 집들이 들어서 있다. 이렇게 큰 땅과 낮은 인구 비율에서도 마음을 좁게 가지면 좁은 문제로 인해서 힘들어진다. 그러니 마음을 넓게 가져야 한다.
시야를 코 앞에 있는 것들에서 멈추지 말고 더 멀리 있는 산을 보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삶은 행복으로 인도해준다. 도시는 바쁘다. 그리고 넓지만 좁다. 하늘도 보기 힘들다. 그러나 바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를 놓치면서 살게 해 준다.
내 마음대로 살라고 해도. 그게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를 먹어도 방황을 한다. 고민을 계속하지만. 마땅한 철학은 없다. 작은 것조차 내 이름으로 만든 게 없으면 어떤 꿈이든 멈춰있기 때문에 10년, 20년 동안 내 진짜 삶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 수밖에 없다.
마음을 넓혀 진짜 나의 삶을 고민해야 한다. 귀촌은 에덴동산과 거리가 멀다. 그리고 이민을 떠나도 마찬가지다. 진짜 내 모습을 알기 전엔 계속해서 남의 시선을 의식할 뿐이다. 마땅히 할 것도 없으니 계속해서 다른 사람을 나의 희생양으로 삼아서 핑계로 만들게 된다. 도시가 좁은 게 아니라. 내 땅이 좁은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좁은 것이었다.
진짜 나는 누구일까?
이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다면. 그리고 대답을 했더라도 바뀐 상황에 적절히 적응하지 못한다면. 결국 자신의 상황을 주변 탓으로 돌리게 된다. 무언가를 갖고 있더라도 행복하지 않다. 이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내 삶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몰려오는 허무감이다.
자신이 진짜 누구인가는 간단하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가 나의 진짜 모습이다. 아무리 그것이 내가 아니라고 외쳐보더라도 결국 그게 나다. 변하지 않는 사실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겠지만. 그것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나다.
만약 진짜 내 모습이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면. 그 행동을 멈추고. 생각을 멈춰야 한다. 사람들의 시선이 나를 가로막는다고 하더라도 진짜 나의 모습을 찾기 위해서 의미 있는 행동을 용기 내서 해야만 한다. 어차피 행동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내일도 못하고 모레도 못한다. 이렇게 10년, 20년은 또 흘러간다.
소년이 청년이 되고 청년이 중년이 되어. 노년까지 가는 것은 하루하루가 쌓여 만들어지는데. 정말 번개처럼 흘러가 버린다. 오늘 고민하지 않으면 어느샌가 나는 노년까지 금방 달려가고 만다.
해답을 찾는 것에 겁내지 말 것.
' 5가지 중에 해답은 단 한 개'라는 것이 우리의 문제 해결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그런 것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100가지 보기가 있다면. 100가지 모두 해답이 될 수 있고. 단지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서 더 많은 열정을 쏟아부어야 하는 상황이 오거나 더 적은 것, 더 많은 것을 갖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그런데 답안지가 없는 삶에서 당황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해답을 찾는 것을 겁내서는 안 된다. 만약 그렇게 되면 나의 삶은 다른 사람이 이끌어 가는 대로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겁을 내는 사람은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상황에 오게 되면 움츠려 들게 되어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된다.
틀린 답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답은 문제지에만 있을 뿐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만약 어려운 길로 들어서는 답을 선택했다고 하더라도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훌륭한 피드백을 얻을 수 있게 된다. 피드백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값진 경험이다.
어차피 넘어질 것이면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넘어지는 것이 낫다. 그래서 나의 딸이 넘어지는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하지 않는다. 넘어질수록 아이는 낙법을 익히기도 하고. 중심을 더 잘 잡게 된다. 삶 역시 넘어지면 넘어질수록 강해지기 마련이며. 자신이 문제를 외면하지만 않는다면 그 안에서 더 큰 기회를 만들게 된다.
내 인생에 도피처는 없었다.
힘들게 살았으니 이제 좀 쉬어볼까 생각했던 시간들. 그런데 도피를 위해 올린 집은 나에게 훌륭한 스승들을 만나게 해 주었다. 아내와 나 역시 이곳에서 다양한 경험, 사람, 생각으로 인해서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만약 도피를 한다는 생각으로 방에만 있었다면 얻을 수 없을 경험이었다.
오히려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일인지 깨닫게 되었다.
요즘에 수많은 사람들이 도피를 추천한다. 그리고 책도 쓰고 영상도 올린다. 그런데 정작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더 유명해지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도피하게 만들면서 자신은 더 많은 것을 얻게 되는 상황은 아이러니했다.
인생은 단 한 번이다. 너무 힘들어서 잠시 쉬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나 자신이 누구인지. 내 삶이 무엇인지 모른 채 몇 년, 몇십 년을 허비한다면. 뒤돌아 서서 누구도 원망할 수 없다. 어차피 내 인생은 나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도피가 아닌 잠시 쉬자.
그리고 진짜 나의 삶을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