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지 않은 착한 어린이.

우리나라에 사는 어린이들이 불행한 이유들.

by 김준태의 인사이트

우리나라의 청소년은 아빠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하루 10분 미만'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청소년의 5명 중 1명이 자살충동을 느낀다는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의 자료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그렇게 죽고 싶어 할 정도로 힘들어한다면. 어른들은 당혹스럽기만 합니다.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모두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가족해체 작업과 무한 경쟁시대의 희생양입니다. 모두가 명문대학에 들어가서 대기업에 취업하고. 넉넉한 은퇴자금으로 은퇴한다는 전 국민 불가능 프로세스로 인해서 모두가 희생되고 있습니다. 아이는 아이대로 부모는 부모대로 안타까움의 연속입니다.


어린이들이 행복하지 않은 이유는 위에서 말씀드렸지만 제가 보기엔 두 가지로 생각됩니다.


첫째는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지 못하는 것


둘째는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점.입니다.


아이들은 원래 자유분방합니다. 거짓말도 잘못하고 남들에게 나쁜 행동을 하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어린이를 보면 '천사를 보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실제로 아이를 보면 그 눈빛이 어른과 다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어른과 같은 잣대로 아이를 훈육합니다. 그러니 아이는 자신 스스로 마음대로 하기 힘듭니다. 매번 그 높은 부모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힘겹게 살아갑니다.


1.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자신을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부모가 자신의 아이를 잘 안다는 것은 착각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더 오랜 시간 살아온 부부끼리도 잘 모르는데 어찌 아이는 잘 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요? 마찬가지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우리는 스스로를 잘 알고 그에 맞는 인생을 살고 있을까요? 결국 우리는 아이를 모른다고 가정을 하는게 맞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 스스로도 자신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찾을 수 있도록 곁에서 지켜봐주어야 합니다.


2. 부모는 이미 구세대. 신세대의 삶은 따로 있다.


우리의 부모님이 일제시대 때 겪은 일이나 6.25 전쟁에서 겪은 사건을 말씀해주신다면 어떨까요? 전래동화의 내용처럼 와 닿게 됩니다. 그리고 그 당시의 기준으로 우리에게 살기를 바란다면 우리 역시 어려워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갖고 있는 삶의 방식은 이미 과거로부터 축적된 지식이 대부분입니다. 심지어 새로운 기술력은 어렵다고 적응하길 손사래 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척척 잘해냅니다.


이렇듯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정보는 도움이 조금은 될 수 있지만.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갈 시대에 완벽히 적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물론 이렇게 되면 부모가 할 일은 너무 없는 것은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부모님께 감사했던 경우는 '매번 했던 잔소리'가 아니라 '잘못을 용서' 했을 때나 '위로를 해주신 것' 등이 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3. 주고 싶은 것만 주는 것을 멈추자.


내가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것. 사실 이건 내가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것입니다. 아이가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사람 관계에 있어서 관계가 지속되려면 서로 원하는 것을 줄 때 유지가 됩니다. 아이는 무언가 스스로 하고 싶어 하는데. 부모가 모든 경로를 차단하고 자신의 삶을 대신 살게 한다면 어떨까요?


아이는 내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내가 결핍되었던 것을 아이에게 받을 것을 강요하는 것을 저는 경계합니다. 반대로 그 에너지로 아이에게 원하는 것이 무언인지 들어주기만 해도 아이의 삶은 행복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행복한 아이는 자신의 삶을 사는 아이.


그런데 우리는 어느샌가부터 '황금만능주의'에 사로 잡혀서 인생을 담보로 놓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바쁘고 피곤합니다. 그런 피로로 인해서 집에 들어가서 행복 에너지를 발산하기 어렵습니다. 집에서는 쉬기 바쁠 수 있습니다. 가족을 위해서 사는 우리지만. 정작 가정에서는 대화가 점점 줄어들게 됩니다.


만약 아이가 스스로에 대해서 찾지 못한다면 집에서 에너지를 풀어낼 수 없습니다. 역시 밖에서도 답답하고 집에서도 답답하니 대화를 모두 중단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일은 우리 세대에서 충분히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세대에서도 아빠와 아이가 나누는 대화 시간은 10분 미만이라는 것은 충격적입니다. 평균이기 때문에 아예 한마디도 안 하고 사는 시간도 많을 수 있습니다.


사회가 달라져야 할까. 내가 달라져야 할까.


우리는 고민해봅니다. 한국 시스템. 이게 문제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저부터도 힘든 일을 겪으면 사회부터 매번 원망합니다. 그런데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단지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황금'을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전에 '소득'과 '지출'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결국 스트레슬 풀기 위해 돈을 쓰고 돈을 쓰니 벌어야 합니다. 벌기 위해서 또 스트레스를 받는 악순환은 은퇴까지 이어집니다. 그런데 은퇴를 하게 되면 아이들은 이미 훌쩍 크고 난 후입니다.


이렇게 미래가 보이는 상황에서 어찌해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기만 합니다. 아이를 키우기 위한 정부의 보조와 도움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정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나라의 사교육비 시장은 커지다 못해 국가 예산도 뛰어넘을 기세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고급 유모차와 물건들 역시 즐비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 늘리기.


우리 사회는 이것부터 하기 쉽지 않은 사회입니다. 육아유직도 마음껏 쓰기에도 어렵습니다. 집에서 남은 에너지를 쓰기엔 사회생활이 너무 피로합니다. 하지만 생각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가정의 회복을 위해서는 우리 스스로가 달라져야 하고. 마을이 변해야 하고 사회가 변해야 합니다. 가족을 회복시키는 것에 관심 없는 정치인에게 표를 주어서는 안됩니다.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현재 불행한 아이들의 미래는 더욱 어두울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미래를 알고 스스로 개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그런 것은 '학원'에서 절대 배울 수 없습니다. '비싼 장난감'으로도 배울 수 없습니다. 부모와 살을 맞대고 눈을 맞추고 배울 수 있는 것이 더 많습니다.


말을 잘 듣는 아이는 불행하다.


아이는 분명 우리와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른 의견은 존중받기 어렵습니다. 아마 어설픈 답을 제시할 수도 있고. 지금 맞지 않은 답을 스스로 도출해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틀리고 스스로 개선하려고 할 때 모든 것을 배웁니다. 우리 역시 수학 강의를 칠판에 남이 적는 것만 보면 실력이 늘지 않습니다. 틀리고 계속해서 답을 탐구하고 연습문제를 풀 때 비로소 깨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가 말을 잘 듣는 상황을 만들 것이 아니라. 아이의 의견을 좀 더 표출하고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물론 모두 다 OK 하며 허락하는 것은 절대 압니다. 아이 능력에 맞는 아이의 환경 내에서 허락해야 합니다. 실내에서 어른들처럼 앉아서 2시간씩 이야기를 하라면 그것을 해낼 아이는 없습니다. 10분 ~20분만 되어도 집중력은 흐트러지기 마련입니다. 그럴 바엔 실내에서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고 아이가 마음껏 뛰노는 것을 더 많이 시켜주어야 합니다.


카페에서 부모님들은 웃고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괴성을 지르면서 뛰어다닙니다. 그럼 두 가지 경우로 나뉩니다. 부모는 가만히 나두거나. 아이를 야단칩니다. 그러나 두 가지 조치 모두 적절하지 않습니다. 부모님들끼리 모인 카페는 아이들을 위한 공간이 아님에도 아이에게 그것을 맞출 것을 강요하는 것입니다. 혹은 가만히 놔두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아이가 여러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기 때문입니다.


답은 분명합니다. 그곳 대신 다른 곳을 선택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아이도 행복하고 부모도 행복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야 합니다. 육아 스트레스로 인해서 풀어야 한다면. 반대로 아빠가 아이를 밖에서 뛰놀 수 있도록 하고. 엄마는 친구를 만날 수 있도록 하면 좋습니다. 그리고 반대의 상황으로 번갈아 가면서 해야 합니다.


저는 제 아이가 억눌리길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누군가에게 미움받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 상황을 만들어준 어른들의 잘못만 있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우리에게 보기 싫은 영화를 연속해서 몇 편 들어주고 그 공간에 가둬버린다면 어떨까요? 저는 어떻게든 그 공간을 나가려고 발버둥 칠 것 같습니다.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 일 것 같습니다. 그 상황을 나가고 싶다는 것을 어필할 권한은 아이에게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행복한 아이.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행복한가요?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분도 계시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린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하는 날이 많을까요? 우리가 우리의 의지대로 산다면. 아마 우리나라는 스웨덴을 뛰어넘는 행복도를 보여줄 것 같습니다. 이미 답은 나왔음에도 같은 방식으로 아이에게 힘든 삶을 살도록 교육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제 자신을 늘 경계하려고 합니다.


아이가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해복하려면 스스로가 누군지 알도록 자유의사를 지지해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북유럽 사람들이라고 해서 북유럽이 혼돈의 세상은 아닙니다. 충분히 아이들은 스스로의 삶을 개척할 수 있습니다. 조금은 미숙해 보여도 언젠가는 생활의 달인에 나갈 수 있습니다. 단지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사회는 힘들지만 가정에선 힘이 난다.


밖에 나가서 시달리고 왔는데. 집에서는 잔소리를 한다면 그 집엔 아무도 들어가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걱정이 된다고 하더라도 일단 말은 꿀꺽 삼켜야 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모두 들어주어야 합니다. 간단한 듯 하지만 잘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내가 잔소리를 한다고 해서 아이가 한 번에 달라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그렇게 말 한마디에 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고난의 연속이라고 하더라도 아이에겐 가정에서만큼은 스스로가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오냐오냐 키우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작은 것은 대부분 허락하되 무리한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작은 것부터 하지 못하도록 다 차단시킨다면 어느 누가 그 삶을 존중받는 삶이라고 생각할까요. 이거 하지 마 저거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왜냐하면 어른들은 하지 않을 실수를 아이들은 매번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그것을 거쳐야만 배울 수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많은 실패를 통해서 성장하고 있는 것이 당연한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실수 없이 완벽한 코스로 키우고 싶습니다.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길 바라면서 이것저것 지도편달합니다. 아이는 말합니다.


숨이 막힌다.


아이들이 솔직히 답한 자살충동에 대한 이야기와 행복지수는 아직 우리 사회를 바꾸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아이들이 신호를 계속해서 보내고 있음에도 무시를 할 경우 큰 결과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습니다. 신호가 나타났을 때 개선하면 정말 어렵지 않게 바로 고칠 수 있지만. 아이가 병이 나거나 사회적 문제로까지 발전하여 사건 사고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고칠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래서 아이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네가 네 인생을 살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봐줄게 힘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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