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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레이스 Feb 24. 2023

저희 싸우는 거 아니에요!

함께 더 행복해지기 위한 대화




  지난 크리스마스 즈음, 나와 집안사람(남편)은 각자 일과 독서를 하자고 스타벅스에 갔다. 그때 내 눈에 띈 것은 크리스마스 시즌 컵들. 그중에 작은 에스프레소 유리잔에 눈이 갔다. 집에서 커피를 자주 내려먹기 때문에 이런 잔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던 중이라, 구매하고 싶은 마음과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은 마음 사이에 치열한 갈등 끝에 결국은 컵을 구매했다. 마침 커피 쿠폰이 있어서 거의 현금을 쓰지 않고 구매할 수 있었다. 행복한 구매를 마치고 커피를 마시며 각자에 일에 집중했다.





  몇 시간이 흐른 후 집안사람은 컵이 든 봉투를 잊고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봉투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찹’하는 소리가 났다. 불안했다. 아니나 다를까 봉투를 열어보니 에스프레소 잔은 산산조각이 나있었다. 나는 망연자실했다. 한 번도 써보지 못하고 깨버린 잔을 바라보다가 평소에는 꼼꼼하고 조심스러운 집안사람이 왜 이걸 깼는지 속상한 마음이 들어 원망과 속상함이 묻어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집안사람은 말했다.




“새로 사. 새로 사면 되지.”





“새로 사. 새로 사면 되지.”




  여기서 많은 여성분은 공감하실 거다. 혹은 많은 F(감정)형의 사람들은 공감하실 거다. 누가 그걸 몰라서, 그런 대답을 바라고 쳐다봤겠는가. 그때부터 우리의 길고 긴 대화가 시작되었다.





“지금 그걸 말하는 게 아니잖아.”


“그럼 어떡해?”







  당황스러웠다. 이걸 몰라서 묻는 건가 싶었다. 일단은 컵을 깨뜨린 게 실수이든 아니든 속상함의 표현, 혹은 자신의 부주의에 대한 화라도 보통 내지 않나? 아닌가? 그게 보통이 아닌가? 보통은 뭐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스스로에 대한 의심까지 생기자 나는 화가 나기보다 도리어 차분해졌다.



“음, 글쎄. 보통은 아니, 컵이 깨졌네. 아 이러려고 한 게 아닌데 실수했네. 미안해라던가, 어떡하지. 카운터에 얘기해서 새 제품으로 달라고 해볼까? 말도 안 되는 거겠지라던가.”


“나는 어쩔수 없었던 상황에서는 사과하는 게 이상하던데. 내가 행동을 고쳐서 바꿀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그냥 실수잖아. 그 말들은 의미가 없지 않아?


“음, 그 말을 한다고 어떤 의미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감정을 추스를 시간을 줄 수 있지.”


“그건 생각은 하지. 말로 하지는 않을 뿐이야.”


“음, 당신이 그냥 아무 말 없이 “새로 사자”라고 말을 하면 나는 무슨 생각이 드냐면 음, 당신은 돈을 잘 버니까. 새로 새 걸 사는 게 별게 아니구나 라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돈을 버는 거랑 이게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쿠폰으로 산거잖아. 그리고 쿠폰도 더 있어.”


“음. 나는 그렇게까지 생각이 든다고. 그래서 당신이 새로 사자 라고 하기 전에 한 두 마디만 더 붙여줬으면 좋겠어.”


“나는 이런 대화를 하면 혼나는 기분이 들어.”


“전혀 아니야 혼내다니. 나한텐 언제나 당신이 나보다 위에 있는데? 윗사람을 어떻게 혼내. 혼내는 건 아랫사람한테 하는거지.”


“아닌데? 당신이 나보다 위에 있는데.”




  우리가 이 대화를 싸우듯이 한 것이 아니다. 위에서 음. 이라고 썼던 구간은 다 정적이 흘렀던 구간이라고 볼수 있다. 말과 말 사이에 3분 이상의 정적이 있을 때도 있었고, 나도 내가 이 말을 하면 집안사람이 오해하지는 않을까 조심스럽게 단어 선택을 하면서 이야기했다. 화가 나서 실수하지 않도록. 나는 왜 기분이 나빴을까 스스로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상대에게 내 상태를 더 정확하게 알려주기 위해 계속 생각해 보면서 대화했다. 이 대화를 하는 것은 상대의 기분을 나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 당신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더라도 그 말을 들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하고 알려주고, 서로의 말의 의도에 서로 오해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곧바로 집에 가려던 참이었지만 30분 정도를 더 앉아 이야기를 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함께 산지 10년 차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말해야 아는 부분이 있구나. ‘30년을 부부로 살아도 모르는 게 있다’는 게 무슨 말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서로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대화를 띄엄띄엄하고 있지는 않는지 또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친정집에 내려갔다가 아빠에 대해 불평하는 엄마의 험담을 듣고는 처음으로 온 가족 대화에 도전했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를 상대에게 최대한 오해 없이 전달하고, 천천히 내 마음과 상대의 마음에 대해 알아가는 것. 그리고 서로가 기분 상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가는 우리의 방식으로 말이다. 두 분 다 이런 대화는 처음이라 아빠는 처음에 이건 너네와 할 대화가 아니다 하시며 대화를 피했고, 를 내실 뻔도 하셨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화낼 일이 아닐 수 있다. 상대의 본마음을 정확히 몰라서 일수도 있고, 내 마음 깊은 곳에 어떤 피해의식 때문일 수도 있다. 천천히 내 마음의 동기를 잘 들여다보고 상대의 행동을 혼자 판단하지 않기. 왜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가 한 번 더 생각해 보기. 그리고 그 마음으로 단어를 잘 골라가며 천천히 대화하기. 그래야 우리는 더 성장하고 더 행복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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