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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기획자 Sep 08. 2022

기획자의 여행은 무엇이 다를까

최상의 프레임 만들기

기획자로서 여행을 갈 때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부분은 바로 프레임이다. 프레임은 어떤 기준으로 무엇에 하이라이트를 하고 콘텐츠를 만들지를 미리 정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미리 프레임을 정한다고 하면 낯선 환경에서 다양한 것을 보고 느끼는 데 오히려 제약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 경우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장면을 프레임을 씌우는 순간 한 번이라도 더 들여다보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가끔은 너무 많은 정보가 쏟아질 때 여행의 방향을 다시 잡아주는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스페인 여행 당시 미리 만든 나만의 프레임은 ‘모빌리티 서비스 기획’이라는 방향이었다. 스페인의 모빌리티 서비스에는 어떤 것들이 있고, 작동 방법은 어떠하며 무엇이 편리했는지, 미리 질문을 만들었다. 6공 바인더에 해당 질문을 적은 페이지를 10장 정도 프린트한 다음 여행지에서 들고 다니면서 기록하고 숙소에서 정리하는 방식으로 활용했다. 이동할 때도 상기시키기 위해 핸드폰 메모장에 넣은 뒤 핸드폰을 켜면 바로 나타나는 화면으로 설정했다.


막상 스페인 말라가에 가보니 모빌리티 외에도 매력적인 게 너무나 많았다. 시원한 상그리아부터 초콜릿, 빠에야, 타파스까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느라 가끔은 모빌리티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그때 웃고 즐기다가도 핸드폰에 적힌 프레임을 보면 관심 있게 봐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호텔로 이동할 땐 택시가 아니라 킥보드를 타고 갔던 기억이 난다. 이처럼 프레임은 분산된 관심을 일관성 있게 모아주면서 재료를 정돈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프레임은 그냥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시간을 특별하게 만들어 주는 마법의 도구다. 우리는 여행하는 24시간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특별한 사건을 기억한다. 특별한 사건을 만들어주는 것이 미리 만든 프레임이다. 택시를 보고 아무런 감흥이 없던 내가 모빌리티 서비스라는 프레임을 갖고 택시를 보면 스페인에서는 지역마다 택시 색깔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이 킥보드를 많이 이용하도록 만들기 위해 제작한 쿠폰이나 이벤트 티켓 하나까지도 소중해진다.



나는 여행 준비를 최상의 프레임 만들기로 시작한다. B5 용지에 펀치를 뚫어 바인더로 만들어 놓고 종이테이프 20개 정도를 미리 뜯어 놓는다. 상단에 여행 날짜, 이번 여행의 키워드 몇 개만 적어놓으면 끝이다. 키워드는 내가 여행을 통해 얻고 싶은 것, 궁금한 것들 위주로 미리 생각한다. 가령 전주 한옥마을로 여행을 간다면 맛집을 키워드로 삼고, 충남 아산으로 여행을 간다면 힐링을 키워드로 삼는다. 이렇게만 준비해도 여행을 기록 하기가 한층 수월해진다.


키워드를 잡고 글을 쓰는 것까지 완료하면 낯선 장소를 여행하다 키워드 옆에 생각을 쓰기 수월해진다. 장담하건대 백지에 여행 기록을 남기는 것보다 열 배는 편하고 이 자료가 쌓이면 자신만의 시선으로 해석된 콘텐츠가 탄생하게 된다. 



‘에이, 여행 자체에 집중해야지. 키워드와 프레임은 다 뭐야, 일하러 간 것도 아니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형태가 내용을 지배한다고 생각한다. 가족과의 추억 남기기를 키워드로 정하면 엉뚱한 체험을 중간에 넣어 추억으로 남을 요소를 극대화할 수 있다. 추억거리에 초점을 맞춰 여행 중간중간에 교복 사진을 찍거나 쿠킹 클래스에 참여할 수도 있다. 그럼 그냥 흘러가는 여행보다 훨씬 즐거워지지 않을까.


현업에서 종종 형식에 집착하지 말고 콘텐츠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듣지만, 형태가 없는 콘텐츠는 설득이 되질 않는다.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그 콘텐츠를 이끌어 가거나 전달할 수 있는 프레임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프레임과 키워드가 존재할 때 특별한 여행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베트남과 카메룬에서 거주까지 했었지만, 사전 준비 없이 갔다가 돌아와 시간이 지나니 그때의 기억이 잔상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반면 여행 책을 만들고자 떠났던 라오스나 스페인의 경우 프레임을 세워놓고 여행을 다녀왔더니 그때의 자료 몇 장만 훑어봐도 음식, 건축 양식 등등 재미있는 경험들이 떠오른다. 심지어 과자 껍데기까지 미리 준비한 바인더에 종이테이프로 박제해 당시의 생생한 기억을 더듬는 데 도움이 된다.

여행이 맛있는 음식이라면 여행을 더 잘 기록하기 위한 프레임은 그릇이다. 프레임은 나만의 관점이 담긴 의지이기도 하면서 음식 맛을 더 돋우기 위한 정성이기도 하다. 국은 정말 감칠맛 나는데 국그릇이 없어 담아내질 못하거나 비닐봉지에 담아 맛이 떨어지는 게 가장 아쉽다. 미리 프레임이라는 그릇을 준비해보자. 소박한 그릇이라도 찬장에 준비되어 있으면 마음이 한결 편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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