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이 나를 유혹한다

내가 좋아하는 공간, 바 루체 (Bar Luce)

by 여행하는 기획자


매주 공간에 대한 수업을 듣고 있다. 공간은 나라는 사람을 다양하게 만들어줘 일부러 좋은 공간을 찾아다닌다. 예를 들어 어지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고 싶을 땐 성당이나 공원, 포근한 분위기의 카페를 찾아가고 일상이 나태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땐 시장이나 재미난 팝업 스토어를 찾아간다. 공간은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기에 공간을 좋아한다고 막연히 생각하였다. 강사님은 사람마다 좋아하는 공간이 모두 다를 텐데, 왜 공간을 좋아하는지 막연한 생각을 가급적 정성적인 기준으로 정리를 해달라고 하셨다. 워낙 좋아하는 공간이 많아 어디를 선택할지 고민을 하다, 최근 3년간 다녀간 카페 중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바 루체를 선정해 사심을 담아 분석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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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루체는 프라다 파운데이션이라는 건물 안에 위치한 카페이다. 프라다 재단에서 만든 복합예술 미술관으로 시각, 영상, 건축 등 다양한 예술 전시가 펼쳐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샵에 입점한 카페답게 바 루체라는 공간은 심미적으로 예쁘다. 예쁘다는 건 참 주관적이다. 알록달록한 화려한 색상도 누군가에게 예쁠 수 있고, 무채색의 컬러도 누군가에겐 예쁠 수 있다. 내 경우에는 오랫동안 질리지 않게 바라볼 수 있는 게 예쁘다고 느껴진다. 바 루체의 경우 스피아 블루, 핑크, 바이올렛의 컬러가 유치하지 않게 배색되어 몽글몽글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예쁜 장소들은 조화롭다. 컬러, 레이아웃, 소품, 패턴들이 어느 것 하나 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바 루체 역시 모두가 과한 소품이 아닌 포인트 소품 몇 가지로 주변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다. 컬러도 과한 컬러가 없다. 공간도 예쁘지만 직원들의 분위기도 공간과 잘 어울린다. 호리호리한 키에 하얀 피부를 갖고 있는 직원들은 딱 봐도 인형 같은 비주얼을 하고 있다. 가장 압권은 유니폼이다. 빈티지한 영화 속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단정한 유니폼 차림의 직원들과 공간이 예쁘다. 아무렇게나 사진을 찍어도 그 장면이 영화 세트장처럼 독특하게 어우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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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스토리 역시 흥미롭다. 이 공간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만든 웨스 앤더슨이 디자인한 카페이기도 하다. BBC가 선정한 위대한 영화 100편 중 하나로 선정될 만큼 미술성이 짙은 작품의 감독이 직접 디자인한 카페라고 하니 호기심이 생긴다. 그 사실을 알고 이 카페를 살펴보면 확실히 감독의 색깔이 잘 드러난다. 감독이 자주 사용하는 색감, 조형들이 그대로 복원되어 있는 것만 같다. 어느새 영화 안에 녹아들어 간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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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으로 공간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는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켜서가 아닐까?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감정이 떠오를 때 사랑에 빠진다. 예를 들어 향수, 그리움, 추억, 호기심과 같은 감정들이 유독 느껴지는 장소가 있다. 바 루체는 1950년대 이탈리아 문화적 향수를 불러일으키도록 설계하였다. 1950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단편 영화를 위해 만들어졌다는데, 1950년대를 살아보지 않았던 내겐 이 공간 자체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수많은 카페를 가보았지만 시대적 배경을 재현한 복장을 입은 사람들이 안내를 하고, 소품을 새로 만든 곳은 특별하게 다가온다. 1950년대를 향유한 사람들은 이 공간에서 어떤 감정을 느낄까? 아마 추억, 향수를 느끼지 않을까? 단순히 장소를 가는 것이 아닌 한 세계관 안으로 들어가 경험을 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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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장소의 특징에 대해 정리를 해보니 막연히 '이 장소가 참 예쁘네.'라는 생각을 넘어 내가 좋아하는 장소에는 생각보다 다양한 요소가 들어 있었다. 유명세도 있었고, 컬러, 소품, 스태프의 의상, 폰트, 마케팅 등이 섞여 '좋다'라는 감정이 나타나고 있었다.

요즘 성수역에만 가봐도 세련된 곳, 가봐야 한다고 광고하는 곳들이 넘쳐나는 시대이다. 홍수 속에 살고 있을 때 내 머릿속에 정확히 각인되기 위해서는 원래부터 유명세가 있거나, 유명세를 차근차근 만들어나가야 인상적인 공간이라는 인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공간이 유명해지려면 이렇게 컬러, 소품 등 눈으로 보여주는 시각 감각부터 청각, 후각 등 다양한 감각으로 사람들을 유혹하는 요소들이 많아야 할 것이다. 찍어내듯 나오는 공간대신 내 머릿속에 인상적인 장소들이 주변에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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