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삶의 밸런스 찾기
“벌써 퇴근해? 부럽다!”
공기업에서 주 20시간 일하는 시간선택제로 근무한지 올해로 8년째, 9시 - 14시 근무를 하다 보니 모두들 아직 일하는 시간에 퇴근을 하게 되어 동료들이 나의 근무형태에 적응하기 전까지는 수도 없이 듣는 말이었다.
그런데 듣다 보니 속이 탔다.
부러우면 다들 저처럼 월급 절반 받고 절반만 근무하시라고 말이 목구멍까지 나오는. 시간에 비례하는 월급인건지, 월급에 비례하는 시간인건지 헷갈리는 것은 일단 접어두고, 생각의 꼬리를 물다 보면 어김없이 과연 나의 이 근무형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시간의 제약이 있다 보니 일을 다 끝내지도 못하고 퇴근하는 것 같고, 나름 한다고 하는데도 자리가 비어 있는 시간으로 인해 저평가(?) 받는 느낌도 들었다. 다른 직원들이 근무 중인데 퇴근하려고 하니 눈치가 안 보인다면 거짓말이었고, 시간이 짧지만 제대로 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4시간의 시간 안에서 쥐어짜듯 노력하는 부분도 있었다.
진짜 문제는 회사 밖이다! 풀타임이 아니라 완전한 ‘워킹맘’으로 인정을 받지도 못하는 상황 속에서 먹이고 치우는 집안 일들도, 하원이나 픽업 등 아이들을 챙기는 일들도 거의 나의 몫이 되었고, 시댁이나 친정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시간적인 여유가 있는 사람처럼 여기고 호출 1순위가 되어 있었다.
분명, 처음엔 좋았다. 괜찮았다.
일도 하고, 내 아이도 돌볼 수 있는 일을 마다할 엄마가 어디 있을까. 그 어떤 전문직 부럽지 않은 괜찮은 조건이라는 생각에 꽤나 흡족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애매했다.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느낌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일하는 사람으로서 퍽이나 제대로 가열차게 일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가사일과 육아를 척척 잘해내는 것도 아니었다. 이것도 별론데, 저건 더 별로인, 하면 할수록 이것도 저것도 보람이기보다 부담이었다. 동동 구르며, 끙끙 앓으며 간신히 간신히 해내고 있는 일과 육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정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그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알아주지 않고 고마워하지 않고 함께 할 마음도 없는 희생은 갈수록 나를 지쳐가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사에서 심리케어 프로그램이 진행되며 개인상담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 상담에서도 나의 불만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한참 내 입장에서 열 내며 이야기했는데, 상담사는 조용히 듣고 있다가 의외의 이야기를 했다.
“선생님, 선생님처럼 이것 저것 다 잘해내고 싶은 분에게는 오히려 딱 맞는 근무형태라고 생각됩니다.”
이럴 수가. 나는 불만을 쏟아냈는데, 돌아온 이야기는 황당하게도 이게 잘 맞는 일이라니.
아이들도 잘 케어하고 싶고, 맡은 일도 잘해내고 싶은 나에게 삶의 균형을 맞춰주는 ‘맞춤형’ 근무환경이라는 말이었다.
휴! 뭔가 약이 오르기도 하고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었지만, 생각해보니 맞긴 맞았다.
모두 포기할 수는 없는 내 삶의 부분들 가운데 나만의 밸런스 찾기.
요즘은 다들 워라밸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 어려운 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문제에서, 내가 원했던 그리고 지금 내가 원하는 워라밸은 어느 지점인걸까. 8년전 다시 시작했던 이 일은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내가 가진 나의 역할들 사이에서 오히려 내 자신을 위한 배분이기도 했음을 다시 기억해 내본다.
그래, 반쪽이면 어때, 50점이 두개면 이것도 나름 100점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