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기 습관에서 벗어나려는 30대
나는 꽤 자주 지치는 편이라, -체력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일을 잘 마무리 짓지 못하는 편이다. 미루는 성향은 어릴 때부터 있었다. 벼락치기, 과제 미루기, 약속 미루기 등등 할 일을 잘 못 끝마치는 건 내 '완벽주의'성향 때문이었다.
매번 미루며 살아온 것치곤, 생각보다 잘(?) 컸다. 번듯한 대학교도 나왔고, 꽤 괜찮은 회사에 취직했고, 4년 차 디자이너로 연봉도 5천 가까이 된다.
하지만 여전히 '일'을 미룬다.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막판이 돼서야 꾸역꾸역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부워낸다.
혹자는 이런 습관이 생산성을 극대화로 끌어올려주는 방법이라 말한다. 하지만, 매번 미루기와 시름하는 당사자에겐 늘 자신을 벼랑 끝까지 내모는 비합리적이고 가학적인 방법이다.
미루고 미루고 미루다가, 완벽하게 성취해 냈을 때의 쾌감은 솔직히 이루 말할 수 없이 크게 다가온다. -약간의 겉멋을 더하자면, 놀 거 다 놀고 잘하는 애와 같은 타이틀이랄까?- 사실해야 할 일을 미룰 때의 스트레스는 너무나도 큰 압박감을 준다. 그리고 압박감이 클수록, 일을 끝냈을 때의 해방감을 더 크게 느낀다.
미루기도 중독이다. 하지만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다. 정신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힘들지 않았던 10대~20대 때는 '미루다가 폭발적인 추진력으로 단숨에 일을 끝내도' 지치지 않았다.
하지만, 30대를 넘어서니, '단숨에 폭발적으로'가 너무 힘들다. 미루면서 쌓이는 정신적 피로를 회사생활과 함께 감당하기 힘들고, 더욱이 '폭발적으로'를 뒷받침해 줄 체력도 없다.
2~3일 밤을 새워서라도 생산성을 높이던 어린 시절과는 너무 달라진 상황을 체감했다. 이제는 밤을 새 가며 일할 체력도 없고, 밥을 굶어가며 집중할 정신력도 없다. 그 상황에서 '중독된 미루기'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미루기 중독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30대는 완벽하게 생산성을 상실했다. 이제는 벼락치기로 생산성을 높일 수 없게 된 거다. 미리미리 조금씩, 끝내놓지 않으면 데드라인이 돼서 후회할 일만 늘어난다.
늘어가는 후회에, 나는 '미루기 중독'을 '완벽주의'의 수단으로 삼는 걸 그만두려고 한다. 이제는 미리 해두지 않으면 감당하기 어려운 나이가 되었다. 정말로 미루다가 골로 간다. 데드라인에 맞춰 생산성이 오르지 않으면 업무에서 실수가 나기 마련이고, 또 만족할만한 성과를 내지 못하니 그건 그것대로 삶의 질을 떨어트린다.
미루지 않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을 도입했다. '타임트레커'라고 '시간을 기록하는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매일 날마다 시간의 행방을 기록하는 다이어리로, 타임트래커를 쓴 날과 안 쓴 날 확연하게 생산성에 차이가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미루고 싶은 일은 기억만 해두고 미리 타임트레커에 의도적으로 '적지 않고' 있다. 이 방법은 무계획적 시간표 ( https://www.bbc.com/korean/news-47744491 )라고 불린다. 우선 내 삶을 먼저 살고, 그 안에서 '해야 할 일'에 투자가 가능한 시간을 현실적으로 가늠해 보는 방법이다.
시간을 적다 보니 분명 해지는 것들이 있다. 내가 원하는 만족감/성취감을 얻기 위해서 최소한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지 여부이다. 만족할 정도로 완성하기까지 50시간이 필요한 일이라는 걸, 타임트레커를 적으며 알게 된다면, 이후 같은 일을 반복할 때, '무계획적 시간표'를 도입해 50시간의 여유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서, 어느 날은 타임트래커를 작성하지 않기도 하고, 데드라인을 두고 완성시키지 못하는 날도 많다. 하지만, 최소한 미루기 중독을 관리하려는 노력이, 앞으로의 성취감을 다시 높일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