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에게 새해인사를 해야 할까?

이프로 부족했던 나에게 그 친구가 건넨 이프로

by 손바닥

나는 꽤나 꽉 막힌 사람이었어서, 누군가를 살갑게 대하는 걸 어려워했다. 조직생활을 하다 보면, 상사에게 살갑게 대하는 동료들이 있다. 그럴때면 속으로 '그 시간에 일이나 더하지'라는 안 좋은 생각을 했었다. 글이닌깐 표현을 '살갑다'라는 단어로 치환했지, 그 당시에 내 눈엔 그저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딸랑' 거리는 행위정도로 밖엔 보이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작은 실수도 넘어가기 어려울 때가 많다. 그 실수가 가져올 나비효과가 생각보다 클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늘 '꼼꼼히' 그리고 '묵묵히' 일하는 것만을 택했다. 하루 종일 말 한마디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마치 목소리를 잃어버린 인어공주'처럼 일만 했다.


나와 같은 년생, 남자동료는 달랐다. 그 친구는 활기찼고, 누구보다 부장님을 살뜰히 챙겼다. 부장님의 힘듦을 미리 알아채고 커피를 준비하거나, 주변 동료들에게 종종 같이 힘내자며 음료수를 돌렸다. (물론 그 음료수는 회사 복지 자판기에서 나왔지만...ㅎㅎ) 나는 아직도 그 친구가 줬던 이프로를 잊지 못한다. 복잡했던 프로젝트를 정리하던 중 그가 건넨 이프로덕에 머릿속이 좀 개운해져서, 야근이 좀 더 수월했었다.


그 친구는 특별한 능력이 있지는 않았다. 나는 디자이너였고, 주변 연구원 동료들은 데이터 엔지니어 혹은 개발자였다. 그 친구는 주로 영업을 하거나, 미팅을 조율하는 일을 했다. 그래서 야근을 할 때면 별다른 일이 없어 보이기도 했고, 어린 마음에 동료 연구원들과 나는 '저 친구의 '쓸모'를 느끼지 못하며 미워할 때도 참 많았다. (이제와 생각하면, 그 친구의 일도 매우 중요한 일이고, 저 친구덕에 우리가 프로젝트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건데 말이다. 그걸 모를 정도로 너무 어렸다.)


그 친구는 늘 미소를 잃지 않았다. 항상 부장님께 '감사하다, 고생하셨다'라는 이야기를 먼저 건네던 그는, 늘 중요한 프로젝트에 먼저 배정이 됐다. 그리고 항상 가장 많은 기회를 받았다. 그땐 그저 그 친구가 미웠다. 특별한 기술도 없으면서 우리(나와 개발자, 엔지니어들)의 성장기회를 빼앗는 것만 같았다. 그 애는 일도 안 하는데, 딸랑딸랑거리는 걸로 일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7년이 흘러, 신입시절 그때를 생각해 보면 '내가 참 어려석었구나' 싶어진다. 일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을 '누가'하는지도 중요하다. 일은 '사람'이 한다. 그래서 은연중에 '내게 친절했던 사람'을 찾게 되는 것도 맞다. 내가 끌고 가야 하는 프로젝트에,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먼저 찾게 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그 친구는 항상 친절했고, 항상 먼저 부장님의 어려운 점을 찾고자 했다. 그게 그 친구가 가진 무기이자, 가장 큰 장점이었다.


상사에게 먼저 건네는 말 한마디, 그 한마디가 가지는 힘은 그 어떠한 '잘함'보다 더 강력했다. 그 친구는 실수를 하면 '다음에 더 잘하면 되지'로 넘어갈 수 있었고, 조금만 잘해도 상사의 입을 타고 '그 녀석 참 열심히 해, 그리고 참 잘해'라고 소문이 났다. 그 소문은 강력했고, 그 친구는 누구보다 빠르게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친구를 보면서 미움과 시기, 부러움과 대단함을 동시에 느꼈던 것 같다. 처음엔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 싶었고, 나중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 번도 상사의 생일을 따로 챙기지 않았고, 상사의 가정사를 챙기지 않았다. 그 친구는 사소한 것 하나 놓치지 않고 상사를 배려해 왔다. 상사와 부하직원이라는 관계만 빼고 보더라도, 나를 위해 내 가족과 내 안부를 챙겨주는 친구를 더 아끼고 싶어 지는 게 당연한 사람 마음이다.


이제야 깨닫는다. 새해인사도, 부장님의 힘듦을 먼저 찾던 그 친구의 행동도, 단순히 잘 보이기 위한 아부가 아니라 험난한 조직 생활에서 함께 파도를 넘기고 있는 동료에게 건네는 예우이자 따뜻한 응원이었음을. 일은 차가운 모니터 앞에서 완성되지만, 기회는 사람의 온기 속에서 피어난다. 올해는 나도, 마음속에 있던 목소리들을 찾아 먼저 건네보고자 한다. 어색하게 머뭇거리는 손가락 끝에, 그 시절 나를 개운하게 했던 이프로의 온도를 담아 메시지를 적어본다. '부장님, 한 해 동안 감사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