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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yric Aug 05. 2018

From New York and Kansas City,

To Las Vegas and Los Angeles


  한 달 간의 미국 여행이 끝난 뒤, 빠르게 현실로 소환된 나는 그에 맞게 적응했고 누가 뭐라 하지 않았음에도 이제는 진정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압박감과 부담감에 스스로를 몰아치며 쉴 새 없이 바로 일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돌아온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지금 시차 적응을 할 틈도 없어 새벽 5, 6시면 눈이 떠졌고 망설임 없이 바삐 몸을 움직였다. 이는 무엇이든 붙잡고 해야 한다는 강박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한 달의 시간이 이제는 너무나 오랜 시간 같고 어렴풋한 꿈같았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되어버린 느낌의 과거와, 현실이지만 이제는 허구 같은 기억들에 더 이상 묶여있을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며, 그런 여유로움은 한국 사회에서 이제 이십 대 중반을 넘어가는 내게 더 이상 허락되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자꾸 그 시간들을 추억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스스로가 다시 그 시간으로 돌아가 추억에 잠기지 못하게끔 몸과 마음을 정신없이 다른 곳에 두기로 했고 그에 맞게 바쁘게 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애써 그 시간들을 외면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나는 시간의 틈이 생길 때마다 나도 모르게 그곳에서의 사진들을 몇 번이고 닳아 없어질 때까지 바라봄으로써 메꿔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결국은 애써 외면했던 시간들이 다시 나를 그때로 데려가는 것이었다.


  그곳에 있었던 시간들은 내게 진정한 자유를 주었고 그곳에 있는 동안 나는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느꼈다. 극명하게 다른 문화인만큼 그들의 문화는 실로 매력적이었으며 이 곳의 문화와 정서가 맞지 않던 내게는 진정 유토피아 같았다. 내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내게 피해를 주거나 간섭하지 않는 문화. 내가 무슨 옷을 입든, 어떤 사람이든 간에 그 누구도 나를 특별하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이는 어쩌면 타인에 대한 무관심으로 비칠 수 있었으나 동시에 타인의 개성을 실로 존중해주는 그들만의 방식이었으며, 타인의 과도한 관심과 오지랖에 늘 눈치 보며 살던 내게는 그 무엇보다도 가장 필요하고 절실했던 것들이었다. 그곳에서 느꼈던 자유로움과 존중받는 느낌은 피부로 와 닿았으며 반대로 내가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주목받던 것도 그 나름대로 즐거운 느낌이었다. 그들과 다르기에 주목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이상하거나 특별히 여기지 않는다는 역설적인 상황에 실로 매료된 것이다. 무엇을 입든, 무엇을 하든 간에 그 누구도 왈가왈부하지 않던 생활은 그토록 바랐던 만큼 삽시간에 나와 한 몸이 되었다. 그런 자유로움과 존중을 잔뜩 안고 이 곳으로 복귀한 내게 이 곳에서의 삶에 적응하는 데에도 또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수많은 현실적인 문제들이 들이닥쳤다. 물론 여행의 막바지에 모두 예상했던 것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이 끝나기 이틀 전 이 모든 현실들을 생각하며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돌아가기 싫었고 돌아오면 또 금전적 문제로 전전긍긍하며 마찰이 생길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나는 그냥 그곳에서 그대로 지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싶었다. 누리고 싶은 것들은 다 누렸으면서 현실적인 문제에는 부딪히기 싫어서. 정말 어린아이 같이 떼를 쓰듯 돌아가기 싫다는 막연한 마음에 그런 생각들을 했다. 그냥 이대로 이 곳에서 사라지고 싶다, 돌아가기 싫다, 그런 생각들이 자꾸만 머리에 스쳤고, 내 여행의 끝을 함께 지켜보고 있던 주변 친구들도 우려 섞인 말들을 건넸다. '이제 곧 돌아오겠네?', '돌아오기 싫겠다', 라는 말들이 들렸고 나는 그때마다 그에 맞장구치며 풀 죽어 있긴 싫었기에 되도록이면 의연하게 대처했다. 이제 놀만큼 다 놀았으니 어서 돌아가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이 좋은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겠노라고, 거짓 섞인 번지르르한 말들로 그들의 우려를 보기 좋게 걷어찼으며 스스로에게도 애써 최면을 걸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 현실적인 문제들 외에도 이미 수많은 것들이 나를 빠르게 현실로 복귀시켰으며, 혼란스러운 와중에도 그저 현실에 다시 몸을 내맡길 수밖에 없었다. 뭐든 해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짧은 시간에 수많은 일들을 벌려놓았으며, 이제는 시작할 일만 남은 것이다. 계산하고 계획하는 일들에 이제는 완전히 지쳐버렸다. 이 일은 시간이 얼마나 걸리고, 저 일은 급여를 얼마를 주고 하는 것들. 그런 것들을 재고 계산하는 일에는 완전히 진이 다 빠져버린 내게 계획보다 더 먼저인 것은 그저 경험하고 도전하고 행동하는 것뿐이었다. 좋았던 여행의 기억을 애써 외면하려는 노력과 현실에 발 빠르게 적응하고 더 이상 재정적으로 도움받으며 마찰을 일으키는 문제아 같은 삶을 청산하기 위해.


  7월 마지막 날 한국으로 돌아와 일상으로 적응하기까지 5일이 걸렸다. 주중에는 그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미뤄두었던 면허를 따기 위해 면허 학원에 등록했고 일을 잡기 위해 면접과 미팅을 보며 시간을 보냈으며 취침 시간과 기상 시간을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애썼다. 평소에 하던 공부를 위해 새로운 책을 구매하기도 했으며 여행의 밀린 빨래를 위해 돌아온 날부터 근 3일간은 빨래만 해대며 지냈다. (여담이지만, 나는 빨래에 굉장히 집착한다. 빨래에 관련한 쓰다만 글이 있는데,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빨래를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이다. 미국에 있는 동안에도 빨래방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되곤 했으며, 장소를 바꿀 때마다 빨래방의 위치들을 파악하는 등 빨래에 대한 강박이 무척이나 심했다.) 짐을 정리하고 집을 치우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돌아온 뒤의 평일은 모두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투자였으며, 토요일인 어제는 오래간만에 10시까지 늘어지게 잠을 잔 뒤 그간 못 봤던 친구를 만났고 저녁에는 혼자 맥주 한 잔을 하며 TV를 보는 등 일상생활로 조금 돌아오는 듯했다. 그리고 일요일인 오늘은 다시 어김없이 새벽 6시 30분에 눈이 떠졌지만, 한껏 게으르고 싶은 기분에 점심까지 누워 휴대폰을 만지다 다시 잠을 자기를 되풀이하며 실컷 미적대었다. 그리고는 대충 입고 모자만 쓰고 나와 김밥 한 줄을 사서 근처 벤치에 앉아 먹은 뒤, 서점에 가 미국에 있는 동안 좋아하는 작가가 낸 단편 소설집을 사서 카페로 왔다. 노래를 들으며 책에 푹 빠져있다가, 지원하고 싶은 프로그램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수정하기도 하고, 일정을 정리하며 다이어리를 쓰기도 하며, 여행 동안 모아둔 영수증과 입장 티켓, 가이드 맵 등 여행의 흔적들을 정리하기도 했다.


  이제 막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온 듯 하지만 아직도 내겐 깊은 우울감이 잠식되어 있다. 이 곳에서의 일상에 다시 적응하는 동안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느꼈던 나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기에 다른 이들은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나는 워낙에 남들의 눈치를 많이 보며 살기 때문에 공감대를 형성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 이를테면 길을 걸을 때 타인의 시선이 느껴진다거나, 길을 걸으며 혼자 뭔가를 먹는 것들이 꺼려져 한쪽 벤치에서 눈에 띄지 않게 해결해야 하는 것, 그나마 이조차도 어렵게 느껴진다는 것들이다. 타인의 무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나는 이 곳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돌아온 뒤에 줄곧 내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이 세계가 나와 어울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 곳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고, 나와 맞지 않는 이 곳을 비판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세계를 찾아 떠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요즘 내가 하는 생각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늘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더 적극적이며 시시때때로 이 곳을 뜨기 위해 준비하며 기회를 노리고 있다.


  돌아오기 전부터 걱정하며 우울해하던 나는 마치 월요일이 두려워 일요일부터 울적해하는 직장인의 마음이었다. 여행을 마친 모든 이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이는 모든 여행을 마친 자들에게 응당 주어지는 대가가 아닐까 싶다. 실컷 자유를 누렸으니 그에 대한 대가로 마땅히 바쳐야 하는 고통과 같은 것.


  그러나 꿈같은 시간에서 벗어나 현실에 맞닥뜨려야 하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운 것은 여행 동안 만난 사람들과의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내게 둘이나 셋, 혹은 그 이상보다는 혼자가 가장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혼자 여행을 계획했던 것이었고, 뉴욕에서는 거의 혼자 다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LA로 넘어가 친한 친구를 만나고 그 친구로 인해 알게 된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인연과 뜻밖의 인연, 그랜드 캐년 투어를 하며 만난 우연이지만 필연 같은 인연들을 만나며 많은 것들이 변했다. 물건을 구매할 때나 가게에 들어갈 때 등 서로 모르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인사하며 안부를 묻는 그곳에서의 문화가 처음에는 다소 낯설고 거부감이 느껴졌으나 후에는 무척 마음에 들어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하였다. 혼자가 좋고 혼자가 잘 어울리는 내게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이 잘 어울리기도 하는구나, 나도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구나.


  이렇게 여행은 새로운 내 모습을 알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나만의 엄격한 법칙 같은 것을 깨게 해주었다. 성격이 모나고 까칠한 내게는 나만의 룰 같은 것이 있는데, 예를 들면, 일요일은 마스크 팩을 하는 등 대대적으로 피부 관리하는 날로 정하는 것이나 피부에게 쉴 시간을 주기 위해 매일 화장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그런 시시콜콜한 나만의 법칙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일단 내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게 되면 이러한 규칙들은 반드시 깨지게 마련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날들이 많아짐으로써 그런 것들에 연연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규칙이 깨지는 느낌이 처음에는 다소 불편하고 불쾌할 수 있다. 나 또한 어렸을 때는 나만의 법칙을 지키지 못하는 것에 큰 불쾌감을 느껴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그런 유별난 것들은 점차 둥글게 무뎌져 갔고 이는 내 인생의 질을 조금 더 높여주었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않을 수 있게 해주었으며 시답지 않은 일은 툭툭 털고 넘기게 됨으로써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를 조금 내려놓을 수 있게 해주었다. 예전에는 얼마나 더 피곤하게 살았는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나 자신이 스스로에게 정해놓은 것을 깰 수 있는 이는 부모도, 친구도, 연인도 그 누구도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물론 시간이 흐름으로써 많이 무뎌지기도 했지만, 이번 여행은 또 한 번 내가 스스로에게 정해놓은 나만의 피곤한 법칙 같은 것들을 깨 주었다.


그리고 내일, 나는 다시 새로운 일상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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