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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 슬 Oct 29. 2020

나의 백만번 째 채식주의선언

죄송한데, 전 100살까지 살 예정입니다만...

    



그렇다. 나는 또 채식에 실패했다. 다만, 육식을 줄여나가는 중이다. 21살부터 매해 채식을 시도하는 나에게 있어 채식주의 선언은 흔히들 하는 다이어트 선언과 같다, 이유는 오직 ‘환경’ 때문에. 나는 정말 극단적인 환경주의자이지만, 어디가서 말하기엔 부끄러운 소비주의 인간이기도 하다. 인생은 완벽하게 살아가라고 있는 것이 아니니 그냥 대충 환경주의자라고 하자!      



대충 환경주의를 지향하지만, 채식주의엔 실패한 나의 이야기를 해야겠다. 요즘은 신념을 가진사람에게도 소비의 선택지가 다양한 세상이다. 친환경, 동물복지는 물론이며 소비가 후원으로 이어지는 방향성도 많다. 그리고 드디어 한국의 비건에게도 기회가 왔다. 기쁨도 잠시 대체 선택지들은 눈물나게 비싸다. 굳이?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악한 가격을 지닌 물건들을 구매하려면 신념과 지갑이 두둑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래 나를 지키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다는 어른들의 말이 틀린 게 하나 없다고 생각하며 대체 선택지에서 눈을 돌린다.


     

채식주의 이야기를 하다 왜 이런 곳으로 세냐고 물으면, 나의 채식주의는 거의 완벽하게 나의 얄상한 지갑으로 인해 실패를 거듭거듭 경험했기 때문이다. 고기는 아주 좋은 단백질원일 뿐만 아니라 대량 목축의 혜택으로 인류를 위한 값싸고 좋은 건강식품이 되었다. 그리고 동물성 단백질을 완전 대체하는 일은 여유 있는 자본가들에게 주어진 혜택이다.     



처음 채식주의를 결심했던 날이 여전히 생생하다. 그날도 나는 엄마와 극세사 이불을 덮고서 외국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있었다. 그날의 주제는 육가공 산업 이대로 괜찮은가?에 대한 논의 였는데, 사회자는 비인도적인 방식의 문제점에 대해 토로했다. 수익성을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소, 태어나자 마자 치킨이 되기 위해 부리가 잘려나가는 닭, 항생제를 맞는 돼지 등등 눈앞에 펼쳐졌다. 그날 우리는 말없이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정확히는 미디어가 전해주는 구체적인 현실에 할말을 잃었던 것 같다. 내가 뭐라고 지구에 저런 해를 끼치며 육식을 해야 하지? 그날 우리는 저녁으로 계란조차 먹지 않았다.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안타깝게도 이런 결심에는 지속성이 부족하다. 그래도 마트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고기는 동물이 아니다. 아니 이들이 원래 동물이였다는 것조차 느낄 수 없다. 덕분에 생명에 대한 죄책감 없이 쉽게 고기를 소비할 수 있다. 게다가 인간의 공감 능력은 개개인에 따라 크게 다르며, 동물의 삶에 공감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를 가진 사람들만이 살아가는 세계가 아니다.      



나 역시 세상사 하루하루가 걱정으로 가득한 어른이 되어버렸다. 가혹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동물들, 그리고 비인도적인 도축 방식에 마음이 너무 아프다. 그렇다고 나의 남은 인생에 ‘고기’를 완전히 지워버리지 않았다. 다만, 조금 더 인도적인 방향으로 이루어지길 바랄 뿐.     



여전히 나는 머리가 핑하고 도는 생리기간이 다가오면 삼겹살을 굽고 있으며, 나의 주머니는 얄팍하다. 그러니 육식을 지양할 수 있지만 완벽히 배제할 수 없다. 채식주의만큼이나 많은 시간과 금전이 드는 일을 지금 현재 모두에게 권유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마트에 들어서는 순간 탄소발자국이고 뭐고 칠레산 삼겹살을 집어드는 나를 보면서, 아 나는 정말로 환경주의자가 맞는 것인가! 하는 좌절을 경험하기 때문에. 변명하자면 조금 비싸도 계란 만큼은 동물 복지란을 먹는다.     



그렇다고 육식을 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비난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류는 아주 오랜시간 육식을 해왔고, 채식주의가 되기 위해선 많은 노력과 시간 그리고 공부까지 필요하다. 그러니 사람들이 가장 저렴한 비용을 내는 육식을 택할 수밖에. 그럴 사정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너무도 많다. 자신의 삶도 건재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어떻게 더 나은 소비를 위한 길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     




아 참고로 올해도 채식주의 선언을 했다. 이제는 남몰래 혼자서, 일주일 정도의 기록을 세우다가 천재지변으로 포기했다. 머리가 핑하고 어지러워졌고, 그렇게 다시 다짐하고 결심했다. 그래도 육식보단 채식 위주의 식습관을 가지자. 국산 식품을 먹어 탄소발자국을 줄이자 같은 것들을.


일본 최고령 마을의 식습관이었던 채식위주의 식사로 건강을 지키자. 그래야  100세 할머니가 되어서 이 지구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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