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데, 전 100살까지 살 예정입니다만...
그녀들은 모두 말했다. 자신이 너무 “늙었다”고.
브리짓 존슨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32살의 프리랜서 방송인이었고, 골드미스 다이어리의 최미자는 커리어우먼이었다. 그저 그녀들은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나가는 현대인이었을 뿐이다.
그때 나는 정말로 서른이 그렇게 올드한 나이인 줄 알았다. 결혼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나이. 막상 서른즈음에 그녀들을 보니 너무 어리기만 한 것 같다. 물론, 시대가 변했고 이젠 나이 따위에 의미를 붙이는 사람이 촌스럽게만 느껴지지만 여전히 마음 깊은 구석에서 가끔 그런 생각이 올라온다. 너무 오랫동안 미디어에 내 몫을 내어줬던 것 같다. 이젠 서른에 “老”를 붙이거나 스물다섯을 크리스마스 케이크 같은 것에 비유하진 않는다. 그치만 막상 그 나이가 되면 괜시리 마음이 몽글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여자의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같다는 말에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뭐라는 거야?하고 무시하면 될 일이지만, 지금보다 한 참 어렸던 스물 네살 무렵에 나는 지금보다 더 불안해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말이지만, 미디어에선 그런 말들을 쉽게 했던 것 같다. 고작 몇년전에. 이제는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한다. 그때 왜 그런 쓸데 없는 것들을 걱정하며 초조한 시간을 보냈을까?
이제는 미디어에서 지나치게 나이를 대상화하진 않는다. 그게 얼마나 무의미한지, 우리의 삶이 얼마나 긴 지 알려주기 때문에.
여전히 미디어에는 젊고 아름다운 사람이 쏟아져 나오며, 그들은 약속이나 한 듯 특정 나이가 되면 점차 사라진다. 그리고 그 자리는 또 다른 어린 사람들이 차지한다. 그렇다고 우리의 인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전보다 더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는 것 뿐.
물론 겨우 몇 살 더 먹었다고 어른이 되진 않는다. 어른이 되기 위해선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내 몫을 해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미디어가 보여주는 이미지에 자신을 부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나는 너무 늙었다” 밖에 남지 않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