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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원작 북리뷰 (두번째 파트)

오늘은 생존자인 Daniel Fernández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Daniel Fernández


제가 떠나기 전 어머니께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디저트를 만들어주셔서 남은 것은 냉동실에 보관해달라고 했습니다. 돌아오면 마저 먹겠다고. 그런데 결국 냉동실에 남게 되었습니다. 72일 후 12.24 일 도착했을 때 어머니가 다시 타르트를 꺼내주셨어요. 어머니는 제가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고 확신을 하셨고, 저 또한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점성술사는 생존자인 우리들을 꿈에서 시각화했다고 어머니와 지금의 제 아내에게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저는 KLM 을 타고 몬테비데오에 가장 먼저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공항 출입국에서는 여권을 보여달라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마치 죽은 자를 보는 듯한 눈으로 저를 바라봤죠. 저는 조난당한 비행기 생존자이며 여권이나 아무런 서류도 없다고 얘기했습니다. 그 공무원은 여권이 없으면 통과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얼마 지나 공무원의 상사가 오자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굉장히 오랫동안 저는 안데스 산맥에서 일어났던 일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원숭이에 가까운 원시인이였습니다. 목마름, 추위, 굶주림 등은 우리의 정신 상태도 피폐하게 만들었으며 환각 상태를 일으키곤 했습니다. 


생존자들은 돌아와서는 사고나 안데스 산맥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는 침묵했습니다. 왜냐하면 돌아오지 않는 동료들의 가족들이 동네 근처에 살았기 때문입니다. 여긴 작은 곳이죠. 그들에게 다시 아픔을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사고 30년 후에 터닝포인트가 생겼습니다. 2002년에 얼라이브라는 웹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각국에서 수많은 메세지와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겪은 일을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때 안데스의 이야기는 더 이상 우리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환갑이 되었습니다. 3 명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죽는 날까지 안데스 이야기에 헌신하기로 했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제가 받은 것을 돌려주고 싶습니다. 

제가 집에 돌아왔을 때 집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때까지 제가 인육을 먹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계셨어요. 기자가 그걸 언급하자 아버지는 기자의 멱살을 잡으셨어요. 저는 사실이라고 말씀을 드렸죠. 아버지는 그제서야 눈물을 흘리시며 저를 안으셨어요. 제가 안데스 산맥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제서야 인지하셨던 것 같아요. 



도시에 돌아와서는 적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이야기를 할 때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어요. 산맥에서는 우리는 속삭이며 서로 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도시의 소음에 저는 멀미가 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시골로 이사를 하고 거기서 30년을 살았습니다.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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