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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의 수도원, 포블렛 – 아라곤 왕들이 잠든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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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냐 타라고나 근교에 자리한 포블렛 수도원(Monasterio de Poblet).


1150년에 세워져 지금까지 살아 숨 쉬는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괜히 아닌 듯합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마치 중세의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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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 절제의 아름다움

포블렛의 성당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단아한 구조, 세 개의 긴 회랑, 그리고 동쪽을 향한 제대. 장식은 거의 없지만 햇살이 들어올 때면 그 단순함이 오히려 압도적입니다.
1695년에 봉헌된 이 성당은 지금도 수도사들이 하루의 기도를 이어가는 장소. 그 안에 앉아 있으면 “돌 속에 스며든 시간”이 고요하게 말을 거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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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의 잠든 자리 – 왕릉

1340년, 아라곤 왕 페드로 3세가 “나는 여기 묻히겠다” 선언을 하면서 포블렛은 왕가의 영묘가 됩니다. 알폰소 ‘정결왕’, 하이메 ‘정복왕’, 페드로 ‘의식왕’… 이름만 들어도 역사의 한 장을 장식한 인물들이 이곳에서 잠들어 있습니다. 한때 파괴됐다가 20세기에 다시 복원된 왕릉은 지금도 수도원 교회 안에서 위엄 있게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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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랑 – 수도원의 심장

수도원에 가면 꼭 거닐어야 하는 공간, 바로 회랑입니다.
정원과 분수, 단순한 기둥 장식이 있는 이곳은 수도사들의 일상과 기도가 이어지는 통로이자 마음의 쉼터. 물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고 있으면, 수도사들이 왜 이곳을 “작은 천국”이라 불렀는지 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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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 – 수도원을 감싼 요새

왕가의 묘지가 되면서 수도원은 단순한 신앙의 공간을 넘어 “요새”가 됩니다.
둘레 600m의 성벽과 13개의 방어탑이 수도원을 둘러싸고 있는데, 돌벽 위에 서서 바라보는 풍경은 정말 압도적입니다. 수도원이자 성, 동시에 역사의 증인. 이 복합적인 정체성이 포블렛을 더욱 특별하게 만듭니다.


여행 팁

위치: 바르셀로나에서 차로 약 1시간 → 하루 일정으로 딱 좋습니다. Montblanc 을 들렀다가 방문하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느낌: 화려한 성당을 기대한다면 다소 밋밋할 수도 있지만, 절제된 미학 속에서 “시간이 만든 고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추천 포인트: 성당의 빛, 회랑의 정원, 그리고 왕릉 앞의 압도적인 정적.


저는 포블렛에서 본 것 중에 왕릉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700년 전에 묻힌 이들과 같은 공간에 서 있다는 사실이 묘하게 다가왔습니다. “돌과 흙 아래 묻힌 시간”이 눈앞에 고스란히 서려 있는 듯했고, 그 앞에서는 화려한 건축보다도 인간의 유한함과 역사의 무게가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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