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이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한 여름밤에 운동을 끝내고 젖은 몸을 씻겨내고 뽀송뽀송하게 집으로 향하는 길 - 한낮에 뜨거웠던 열기가 식고 제법 선선한 공기가 내 몸을 감싸 온다. 그 느낌과 공기가 좋아 잠시 그대로 머물러있다. 그렇게 머물러 한 여름밤의 기분 좋은 상상을 시작한다.
"어디야? 아이스크림 먹자. 공원으로 나와!"
연인이 동네 공원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한껏 여름을 만끽하는 모습. 이 모습이 어느 연인들에게는 굉장히 익숙하고 평범할 수 있는 모습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상상으로만 존재하는 장면이다. 우리의 거리는 문자 한 통으로 쉽게 오고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게 이뤄질 수 없는 상상을 하는 연인이라 하여 우리는 그 사실에 크게 실망하지 않는다.
상상을 잠시 일시 정지해 두고 편의점으로 향한다. 편의점 아이스크림 박스에는 팥 맛, 배 맛, 우유맛, 밤 맛, 상어 맛, 꽈배기 맛, 초코맛, 떡 맛, 크림 맛 등등 너무 다양한 아이스크림이 있다. 근데 이 많은 것 들 중에 정작 미한이 먹고 싶어 하는 붕어 싸만코구마가 없고, 미한이 가장 좋아하는 빙빙바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미한이 그냥 좋아하는 비비빅을 집어 들고 카드로 계산하고 편의점을 나온다. 아이스크림을 쪽쪽 빨며 공원을 향해 걸으며 일시 정지해놓았던 상상을 다시 재생시킨다.
아 - 배고프다 소리가 들려온... 아니 이게 아닌데. 여하튼 상상에 더 몰입하기 위해, 더불어 미한이 더욱 그립기에 일간 이슬아에 소개된 제임스 설터의 소설 속 한 문장을 생각하며 미한의 시선으로 공원 가는 길을 바라본다.
"이 여름은 마치 우리가 함께 있다가 떨어져 있는 긴 하루처럼 느껴져. 당신을 생각하고 음미하는 시간 같아. 우리 함께 바다에 가자고 얘기하곤 했는데, 여기 당신 없이 있으니 당신의 눈으로 보게 돼. 그게 좋아.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이런 느낌은 없을 거야."
공원으로 가는 길 옆에는 인공 조성된 강이 계속 흐른다. 인공 조성됐기는 하지만, 강이 흐르며 내는 소리는 어릴 적 엄마랑 아빠랑 형이랑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곡성군 목사동면에 사는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댁 놀러 가 가재랑 다슬기를 잡으며 듣던 강물 소리와 유사하다. 한 여름밤에 듣는 그 어릴 적 추억 같은 소리는 내 귀에 시원한 추억과 청량함 그리고 시원함을 안겨준다.
그리고 그 강을 다시금 미한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강은 언제 생긴 것이며 왜 생겼고 깨끗한 물이냐, 마실 수 있냐, 수영할 수 있냐, 물고기 들은 어떻게 생긴 거냐 등등 깔끔한 탄산수 튀듯 튀는 질문들을 진지한 표정으로 연이어 해온다. 그리고 그 질문들이 너무 신선해, 질문을 듣는 내내 킥킥 웃는 내 모습이 보인다. 그렇게 우리는 시원하게 킥킥대며 걷다 공원에 도착한다.
내 눈에는 바로 공원을 함께 뛰는 러너 연인들이 들어오지만 - 미한의 눈에는 넓은 공터에서 보드를 즐기는 보더 연인들이 들어온다. 보더들을 부럽게 바라보는 미한의 모습을 보며 '내일은 달리러 나올래?'라는 진심과는 약간 결이 다른 질문을 던진다.
"내일은 보드 타러 나올래?"
미한은 한번 튕기는 시늉을 하지만 이내 신나는 표정으로 그러자고 대답한다. 그리고 한 술 더 떠 보드 타면서 먹을 간식을 얘기한다. 김밥이 좋겠지만, 라면이 좋겠지만, 다이어트 중이라 샌드위치가 좋겠어! 라며 약간 시무룩해진 표정을 하고 외친다. 나는 그 진지하며 신나고 또 시무룩함이 다 묻어나 있는 모습을 귀엽게 바라보며 그에 맞는 대답을 하며 호응해준다.
"샌드위치는 아무래도 서브웨이가 좋겠지? 피클, 올리브, 할라피뇨 빼고 소스는 레드와인식초?"
샌드위치 얘기를 시작으로 우리는 다시 공원을 걷기 시작한다. 나와 걷는 미한은 걷는 내내 끊임없이 무언가를 보고 끊임없지 무언가를 질문한다. 공원을 가득 채운 초록과 형형색색의 꽃들에 대해, 공원 여기저기 자리 잡고 앉아 무언가를 먹고 있는 가족과 연인들에 대해, 미한만큼 호기심 가득한 눈 빛으로 산책하는 귀여운 개들에 대해, 공원 내 편의점에서 파는 라면과 치킨 등과 같이 먹을 것들에 대해, 물방울 모양 조형물인지 알 수 없는 물방울 모양 조형물에 대해. 그런 미한을 선미(선홍빛 잇몸 미소)를 양껏 들어내며 행복하게 바라보며 여전히 킥킥댄다. 하지만 킥킥대기만 하면 미한이 실망할 것을 알기에, 진지한 미한을 최대한 만족시켜줄 수 있는 대답을 고민하며 진지하게 대답해 준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미한과 그런 미한을 바라보는 나는 한참을 걷다 잠시 벤치에 앉아 서로를 바라본다.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가 채워나갈 만들어나갈 미래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당장 내일 먹을 아침에 대해, 주말에 먹을 밀면에 대해 그렇게 가벼우면서도 이따금 진지하고 다소 간지럽고 간혹 오글거리는 대화를 나누며 우리의 한 여름밤을 가득 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