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
포켓몬스터 지우에게 늘 새로운 모험이 기다리듯, ㅋㅋ로스핏을 시작한 이후로 내게도 매일 새로운 모험이 기다리고 있다. 매일 예상하지 못한 다른 WOD(띵꾸 TMI *WOD : Workout of The Day, 여러 가지 운동을 조합해 만든 오늘의 운동)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크로스핏 모험을 시작하기 위해, ㅋㅋ로스 핏 던전에 입성하기 전에 내가 늘 들리는 관문이 하나 있다. 그곳은 바로 버스를 타고 내리는 '송내역'이다. 크로스핏 박스 거츠는 송내역과 3분 거리이고, 이 접근성 때문에 부천에 있는 3개의 정식 ㅋㅋ로스핏 박스 중 거츠에서 꾸준히 모험을 떠나고 있다. 그렇다 나는 송내역에 터를 잡고 살아온 상동 원주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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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고 눈 뜨고, 정신 차리고 보니 나란 녀석 아빠가 호날...(나란 녀석 우리 형 동생) 아니, 나란 녀석 송내역을 중심으로 터를 잡은 반달마을에 살고 있는 뽀시래기였다. 뽀시래기 시절 친구들의 집과 반달 상가, 반달 민영 유치원, 부인 초등학교 중심으로 반경 100M 이상 떨어진 던전으로 혼자 떠나는 모험을 하지 못했다. 그런 내게 송내역은 다른 던전으로 모험을 떠나는 출발점이자 던전 그 자체였고, 인생 1차 전직의 증서인 중학교 교복은 입어줘야 자유롭게 입장 가능한 던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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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4살 많은 진짜 우리 형과 함께라면 초등학교 만렙을 찍지 못해도, 인생 1차 전직을 못해도 송내역 따위 무섭지 않았다. 뽀시래기가 보는 우리 형은 풀템 타노스만큼 강력하고 믿음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친구들과 의견이 갈리면 "우리 형이 그랬어!", "우리 형한테 일을 꺼야!"무새였고, "야! 우리 형이 그러는데~"무새이기도 했다. 정말 친구들한테 재수 없는 존재였을 것이다. 뽀시래기 명구에게 풀템 타노스 같은 존재인 형과 송내역을 가는 날은 정말 모험을 떠나는 것처럼 신이 났었다. 그날은 처음 들어보는 도시에, 처음 들어보는 장소에 가서 형이 먹여주는 쩔경을 무럭무럭 받아먹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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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형에게 절경을 받는 시간은 영원할 수 없었다. 인생 1차 전직과 2차 전직을 하고 전직 스킬인 '질풍노도'를 시전 하자 형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형은 내게 쩔경을 먹여주던 파티원이 아니라, 내가 최종적으로 잡아야 할 보스 몹이 된 것이다. 형과의 사이는 크게 틀어지기 시작했고 형이 하는 말, 형이 시키는 일은 다 듣기는 했지만, 표정과 대답 없이 냉소적으로 실행하며, 속으로는 형을 향해 욕과 저주를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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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또 시켜... 지는 손이 없나 발이 없다. 내가 아주 종이 지?. 다쳐서 병원에나 입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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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어떻게 형을 다치기를 바라?"라며 손가락질하며 비난할 수 있겠으나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이니 스리슬쩍 그 손 거둬주길. "우리는 가장 평범한 인간들이 이미 하나의 괴물이라는 거, 예를 들어서 우리는 모두 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다소간 바란다는 것을 증명해 보일 수 있다. 이것이 적어도 어떤 문학이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알베르 카뮈 전집 7, 책세상 4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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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형을 향해 욕과 저주를 퍼붓는 날은 그렇게 바라던 형과 이별의 날 그러니까 형의 입대 날이 되고 잠시 멈출 수 있었다. 미운 정이 박혔는지 논산으로 향하는 형의 마지막 발걸음을 본 그날 눈물이 찔끔 흘러 베개를 적셨다. 베개를 적신 그날을 기점으로 형을 향해 퍼붓는 욕과 저주를 멈추며 형과의 전쟁을 끝냈다. 그날이 전쟁을 끝낸 날이기도 하지만 성인이 된 20살 대학에 입학하고, 22살 형이 전역을 하고, 24살 장교로 임관하고, 27살 이번에는 내가 전역을 하고, 30살이 된 지금까지 나는 형과 단둘이 있는 공간과 시간을 피하고 대화를 해도 30분 이상 이어지지 않는 냉전이 시작된 날이기도 하다.(축구를 볼 때만큼은 냉전이 잠시 멈추고 전반 하프타임 후반을 꽉 채워 축구 얘기를 나눈다. 역시 축구는 평화의 스포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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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냉전이지만 오늘, 모험을 시작하기 위해 송내역에 도착하자 뽀시래기 명구는 물론 뽀시래기 명구와 떨어질 수 없는 형과의 추억이 떠올랐다. 옛 추억에 잠긴 기념으로 갑자기 성격에도 없는 살가움을 형에게 표현할 수도 없는 노릇. 그저 이렇게 글이나 끄적끄적해본다. 그리고- 요즘 다이어트를 한다고 운동을 하는데 이번에는 그 다이어트에 꼭 성공하기를 속으로 빈다. 음- 거츠에서 4주년 기념으로 1달 이용권을 저렴하게 판매하는데 추천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