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장
오늘은 축구도 봐야 하고 자소서도 써야 해서 크로스핏도 쉴 겸 일간 크로스핏 연재도 쉬어갑니다. 대신 일간 크로스핏인 듯 아닌 듯 아닌듯한 짧은 크로스핏 이야기로 찾아왔습니다. :)
Open 19.5 Wod를 측정한 토요일, 많은 크로스피터들을 보고 내 태도에 반성했다. 그리고 반성으로 끝낼 수 없어 월요일 19.5 Wod 재측정을 했다. 시작할 때까지 남들(코치님, 민석 형님, 우연 형님, 민지 등등)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부담 없이 재 측에 임한다고 입을 털었지만, 사실은 이번에는 최선을 다해 한 개라도 더 하겠다는 마음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최선을 다해놓고 첫 측보다 결과가 나쁘거나 같은 결과가 나오면 쪽팔리니까...:);;;
재측정을 시작하기 앞서 진석 형님 재 측을 응원하며 관람했다. '하기 싫은 진석'과 '하나라도 더해야겠다는 진석'이 펼치는 싸움 속 치열함이 내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그리고 속으로 '아 나도 저렇게 치열하게 할 수 있을까? 하다가 힘들다도 또 대충대충 설렁설렁할 것 같은데'라는 부끄러운 의심이 마구 들었다. 그리고 곧 진석 형님 재 측이 끝나고 내 차례가 시작됐다. 바를 잡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속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대충 하겠다고 입을 털었다. 첫 측정에서 바르지도 않았던 제주도 서귀포시에 있는 내 인생 대방어 맛집 올랭이와 물꾸럭 사장님이자 내 동갑 친구 민규가 기증해준 박찬호 크림을 허벅지와 어깨에 덕지덕지 잔뜩 발라놓고 말이다.
첫 번째 쓰러스터를 시작과 함께 허벅지가 불타 터질 것 같았고 - 머릿속은 바로 나약한 타협을 외쳤다. 그리고 머릿속 나약한 타협과 손을 잡을까 고민하려는 찰나 진석 형님과 우연 형님 코치님 그리고 민지의 응원소리가 내 머릿속을 뚫고 들어왔다. 아 어찌 응원해주는 이들보다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타협하려는 손을 뿌리치고 다시 바를 잡고 쓰러쓰터를 시작했다. 1.2.3...29..30.31.32.33 힘겹게 끝을 내고 바로 철봉 밑에 자리를 잡았다. 처음 철봉을 시도하던 22살 명구를 떠올렸다. 한 개를 하겠다고 아등바등 최선을 다했던 명구를 말이다. 한 개 한 개 그 시절처럼 최선을 다하자 마음먹고 철봉을 꽉 쥐어 잡았다. 30.31.32.33개! 끝이 나고 다시 쓰러쓰터를 시작했다.
하,,, 시작하자마자 다시 나약함이 내게 손을 뻗었다. 처음과 달리 그 손을 쉽게 뿌리치지는 못했다. 그 손은 응원소리가 들려오지 못하게 내 귀를 틀어막았고 - 계속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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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해 포기하면 편해 :)..."
치킨 튀기는 기름 냄새 같은 그 유혹을 끝내 뿌리치지 못하고 유혹의 손과 바를 번갈아가며 수십 번 잡았다 놓았다를 반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분이라는 정말 길었는지 27개의 쓰러쓰터를 시간 내에 끝낼 수 있었다. (그렇다. 차라리 이 WOD가 20분이 아니라 10분이기를 바랐다.) 잠시 자빠져서 숨을 고르고 다시 철봉 밑에 자리를 잡고 - 22살 명구로 감정이입을 했다. 22살 명구처럼 또 한 번 한 개 한 개 최선을 다해 체스투바를 시작했고 25.26.27 끝! 으아!!!!
타고난 심폐를 지닌 원소기호 Fe가 아닌 나는 폐가 터질 것 같았다. 터질 것 같은 폐를 부여잡고 다시 바 앞에 섰다. "와... 씨" 농경사회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해 준 그러니까 우리 인간에게 축복을 준 '씨'를 절로 예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내가 먼저 나약함에 손을 뻗었다. 그 순간이었다. 2002년 월드컵 초딩 시절 광림교회에서 친구들과 한국 대 이탈리아전을 단체 관람하며 외치고 들었던 열광의 응원소리와 같은 응원소리가 들려왔다. 진석 형님 코치님 그리고 우연 형님의 응원소리였다. 그 응원소리는 나약함에 손을 뻗은 내 손을 급히 잡아 말렸다. 마치 2002년 태극전사가 그랬던 것처럼 터질 것 같은 폐와 바를 부여잡고 쓰러쓰터를 시작했다. .2.3..4.5..10..12..19..20.21 끝!! 이제 4개만 더 하면 첫 번째 기록과 동률이었다. 그 생각을 하며 철봉 밑에 다시 자리 잡았다. '도와줘 22살 명구야!'를 속으로 외치고 체스투바를 시작했다.
심장은 초당 오조오억 번씩 뛰고 있는 것 같았고, 체스투바를 한 개, 한 개 할 때마다 누군가 내 폐를 퍽퍽 치는 기분이 들었다. 아팠다. 그래도 22살 명구가 돼서 한 개, 한 개 최선을 다했다. 멈추고 싶은 순간, 타협하고 싶은 순간마다 내 열정 이상으로 응원해주고 있는 분들의 응원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멈출 수 없었고 타협과 손잡을 수 없었다. 15..16..17...18...19..20.21! 끝! 바로 자빠졌고 초당 오조오억 번씩 뛰는 심장에 맞춰 초당 오조오억 번씩 호흡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최선이란 이런 것이구나... 아 나도 손바닥이 까졌다. 와... 나도 드디어 진정으로 19.5를 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래요... 저 진정으로 19.5를 끝냈습니다. 첫 측보다 무려 17개를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