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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구 Jan 29. 2020

일간 크로스핏

원칙과 시스템. 

설 연휴가 끝나고 떡국과 갈비로 무거워진 몸 그에 반해 퇴사로 가벼워진 마음을 품고 크로스핏 박스 거츠에 입성했다. 오후 3시 30분에 도착한 거츠는 언제나 탄마가 가장 먼저 달려와 나를 반겨준다. 그리고 곧 익숙한 코치님들의 인사. 옷을 갈아입고 나와 오늘의 운동을 확인한다. 


3 Sets:

3 Minute Bike

30 Seconds Spiderman + Reach

30 Seconds Lateral Box Step-ups

30 Seconds Horizontal Ring Rows

30 Seconds Inchworms


Increse Bike Intensity Each Set


1."Speed Limit"

AMRAP 15:

Buy-In: 4/3.5k Bike Erg


Max Rounds in Time Remaining:

8 Burpee Box Jumps (24/20)

8 Chest to Bar Pull-ups


크로스핏을 시작한 지 3년 여전히 영어로 적힌 운동들이 무슨 동작인지 익숙하지 않다. 익숙하지 않지만 눈칫밥 3년인지라 다행스럽게 코치님들의 예비동작만으로도 '아! 이거구나!' 하는 수준은 됐다. 처음 크로스핏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코치님들과 운동하는 모습은 상상도 못 했었다. 코치님들의 크로스핏 실력을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도 코치님들의 수준을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그저 코치님들의 운동을 방해하지 않고, 내 몸을 챙기면서 운동을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됐다뿐이다. 


코치님들의 크로스핏 코칭 철학은 '부상 없이 가늘고 길게 크로스핏을 즐길 수 있게 하기'이다. 이 원칙에 맞춰 코치님들은 박스만의 운동 시스템을 설계하고 만들었다. 만들어진 시스템의 핵심은 '기초'이다. 기초를 바로잡지 못 한 회원에 대해서는 절대로 무게 욕심 혹은 부상 위험이 있는 동작에 대한 욕심을 낼 수 없도록 코칭한다. 나는 3년간 코칭 원칙과 시스템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운동을 해왔다. 그 덕에 단 한 번의 부상 없이 크로스핏을 즐겼고 또 즐기고 있다. 더불어 3년간 부상 없이 크로스핏을 즐긴 덕분에 코치님들과 적당한 신뢰를 쌓았다. 그 신뢰를 바탕으로 오늘처럼 코치님들과 함께 운동을 즐길 수 있게 됐다 생각한다.   


1월 1일 내가 가진 시선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사람 이야기가 담긴 책을 골라 읽기로 결심했다. 결심과 함께 이국종 교수님이 쓴 '골든아워'가 눈에 들어왔다. 책을 읽는 내내 목적과 달리 책 속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보다 이국종 교수님이 끊임없이 얘기하고 강조하는 '원칙과 시스템'이 눈에 들어왔다. 책 속에서 이국종 교수님이 얘기하는 '중증외상센터의 원칙과 시스템'은 고장 났고, 그 고장 난 원칙과 시스템은 이상한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책을 다 읽고 며칠 뒤 기가 막히게 아주대 의료원장 유희석이 이국종 교수님께 욕설을 하는 통화내용이 공개가 됐다. 


공개된 통화내용을 들은 후 '여전히 고장 난 원칙과 시스템은 오작동하고 있구나.', '여전히 작은 사람들이 만든 작은 조직은 오작동하고 있는 거대한 원칙과 시스템과 맞짱을 뜨고 있구나.'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국종 교수가 이끄는 조직과 오작동하는 거대한 원칙과 시스템의 맞짱은 2002년부터 시삭 돼  2020년이 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었다. 그렇다. 여전히 나는 원칙과 시스템이 오작동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었다. 그 변하지 않는 시대와 마찬가지로 그것들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도 그대로였던 것이다. 이 사실에 차마 나는 그들을 향해 용기 내서 더 싸우고 버티어달라는 응원 섞인 말도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통해 본 그들은 초인이 아니었다. 그저 나와 같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나와 같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그간의 긴 싸움을 끝내고 물러난다 하더래도 박수만을 받아 마땅하다. 나는 마땅히 온 힘을 다해 박수만을 쳐줄 것이다. 



#골든아워 #이국종 #중증외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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