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직접 소개 부탁드립니다.'

자주 하던 말인데 스스로에게는 왜 이렇게 어색한지

by 라민 육아 일 기

스스로 소개하는 일이 오랜만이라 어떤 것부터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두 돌 지난 아이를 키우고 있는...'이라는 문장부터 튀어나오는 것을 보니

몇 년 사이 굳어진 제1 역할은 '엄마'인가 봅니다.


초등학생 시절, 교실 뒤편 알림판에 붙일 장래희망 소개 딱지에는 늘 '아나운서'라고 썼습니다. 삐뚤빼뚤 쓴 학급 문집에도 그렇게 썼더라고요. 이웃 어른에 인사를 잘 못할 정도로 내향적 성격을 타고났는데 승부욕이 성격을 뛰어넘었는지 언젠가부터 남들 앞에 나서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는 연습과 말 거는 연습을 거울을 보고 수없이 한 뒤에 발표에 대한 두려움을 스스로 깰 수 있었고 학급 회장 같은 것도 해보고 어찌어찌 정말로 아나운서가 되어버렸습니다.


나서게 되었어요!




방송 데뷔는 10대 시절에 했습니다.

교복 입고 찾아가 오디션을 보았던 지역 방송국 라디오의 퀴즈 코너 리포터부터

지자체나 공공기관의 뉴스, 소규모 지역 행사 mc...

아무도 봐주지 않을 것 같지만 분명히 누군가는 보고 듣고 있는 그런 일을

조금씩 넓혀가다 보니 정말 '뉴스 하는' 아나운서가 되었습니다.


뉴스 데스크라는 곳에 앉아서 카메라 앞에서 말을 하는,

오늘 있었던 지역의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티비에 나오는 알려진 사람들과 함께 티비에 나오는,

오래 꿈꾸던.



꿈에 그리던 일이었고 또 적성에 잘 맞아서 누구보다도 오래 할 줄 알았지만,

웬걸 입사 4년 만에 내려놓고 말았습니다.

꿈은 현실이 되었고 직장인이라면 숨이 턱턱 막히는 시기가 한 번씩 오잖아요?

세차게 오더라고요.


그럼에도 돌이켜보면 좋았습니다. 평생 가져갈 무용담 소재이자 잊지 못할 날들이에요.




학생 때부터 방송 일을 하면서 쉼 없이 달리다가 멈추기를 반복했습니다.

일과 회사, 주변의 시선보다 나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할 때,

결혼을 했고 늘 고민하던 퇴사를 결심했고 자발적 경력단절이 되었습니다.

공허함이 몰려 올랑말랑 하던 차에 임신을 하면서 새로운 세계가 열렸어요.

그로부터 2년은 살림과 육아에 빠져 허우적댔습니다.


달라진 일상에 익숙해지던 시기, 아이는 걸음마를 떼고 말을 배우고 행동이 또렷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계획에 없던 복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전처럼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은 아니고 프리랜서로서요.

내 손으로 놓았기에 꿈에도 그리지 않았던 복귀.


제가 할 줄 아는 일 중에 가장 잘하는 일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아나운서 출신의 전업 주부, '엄마'로 살아가다가 다시 '엄마 출신'의 '아나운서'가 되었달까요.

엄마 역할은 계속될 것이니 '현역 엄마 아나운서'라고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내로 엄마로 할 일이야 늘 있었지만 경제 활동을 겸하니까 정말 바빠지더라고요.

어깨너머로만 엿보던 '워킹맘'의 세계로 입문했습니다.


객관적으로 살펴본 제 모습은 이전과 많이 달라져있었죠.

외면도 내면도.

움츠러들 시간도 없이 복귀한 지 일 년. 이제야 정신 차리고 지난 기록들을 정리해 봅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지 멋진 직업인이 되고 싶은지 물어온다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요?

어떤 대답이 더 있어(?) 보일까요.


가정과 일, 일과 육아. 어느 쪽도 소홀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하루아침에 슈퍼맨이 되는 건 욕심이겠죠.

시행착오 진행 중인 육아, 살림, 그리고 가끔은 일 이야기까지

서툰 글솜씨로 기록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는 것이 취미면서도 댓글은 남기지 않고 격한 공감에도 혼자 끄덕이고 말 뿐이었는데

제 이야기를 늘어놓는다고 하니 크나큰 도전을 하는 기분입니다.

아무도 관심 없을 것 같지만(?)

누군가는 보고 듣고 있다는 생각으로 풀어놓을 공간이 생겨서 좋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