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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몬 베유 Feb 27. 2024

회사 문화를 바꾸고, 회사를 다니고 싶어졌다.(2)

주니어 0년 차, 5개월 만에 회사문화를 바꾸다.

회사는 회사다. 아니 회사인가?


독서모임을 시작하려면 독서모임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업무와 관련된 독서모임은 회사 내에서 큰 터치를 하지 않는 분위기였고, 오히려 장려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책 구매도 사내 비용으로 청구할 수 있어서 저는 사람만 모으면 된다는 판단이 생겼습니다. 저에게 남은 일은 관심 있는 사람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몇몇 분들과 식사를 같이하며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를 확인했습니다. 특히 제 인문학과 관련되어 있는 제 학과와 그간 독서모임을 이끌었던 일들을 넌지시 흘렸습니다. 분명 관심은 있어 보였습니다. 조금 흥미를 가지기도, 눈빛이 호기심으로 빛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추진해 보려는 순간, 계속해서 마음속 허들을 넘지는 못하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뭐랄까. ‘아 너무 좋은데… 직접 하는 것까지는… 어렵겠는데요…’라는 마음을 읽기 너무 쉬웠습니다. 심지어 평소 책을 열심히 읽는 분들까지도요.


 무엇이 문제였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모임뿐만 아니라 그간 실패했던 모임들을 떠올렸습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여러 원인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당시 떠올렸던 원인들을 고민해 보면 다음과 같았습니다.


1_ 입사 1개월 차 밖에 되지 않은 사람이라 믿기도 어렵고, 정 붙이기가 어렵다.

2_ 내 인간관계가 아직은 서투르다.

3_ 독서모임에 관심을 보이는 것조차 사실은 거짓이다.

4_ 다들 독서 모임까지 할 힘이 없다.

5_ 회사는 그냥 회사다. 더 뭘 하고 싶지 않다.


정도의 원인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했을 때 가장 설득력 있던 고민은 4번과 5번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4번은 어느 정도 맞았던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독서 모임에 그 정도로 힘을 쓰고 싶지 않다’가 맞았던 것 같아요. 나머지 원인들은 지금 돌이켜보건대 그리 큰 원인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경직된 분위기 속에서 회사를 다니기는 싫었습니다. 업무적으로도 개발 내 소통 및 개발팀과 기획팀의 소통의 부재로 문제들이 발생한다고 느끼는 부분들이 있었거든요. 소통 없이 고객에게 서비스를 내보인다던가, 개발팀 내 소통이 되지 않아 테스트의 충돌이 나는 등의 문제들이 발생했습니다.


그럼에도 소통의 벽을 허물고 자발성을 키워야 했습니다. 편하게 소통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반대로 회사는 회사라는 마음속 이야기가 자꾸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무언가를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내면에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또 한 편으로, 회사에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게 꽤 나에겐 큰 리스크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회사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회사 내 어떤 일을 벌이는 건 리스크가 큰 편입니다. 나대지 말고, 잘하는 것도 못하는 척해야 하고, 눈 밖에 나면 어떻게 돌아올지 모르는 게 회사이기도 했습니다. 시키지도 않은 일을 벌이면 괜히 문제의 원인으로 몰릴 수 있는 리스크가 존재했습니다. 


다들 싫어하는 것 같은데 나 좋자고 하는 일이 그러면서도 리스크가 이리 큰일이 맞는지 고민했습니다. 이전 글에서 생각했던 “혼자 성장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부분을 내려놔야 하는지 생각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저는 나눌만한 실력이나 정보는 없었을뿐더러, 사실 이렇게 모임을 만드는 건 '성장'보다는 소통이나 인간성에 관련되어 있으므로, 나는 그저 혼자 성장하지 않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방법은 아닌가-라는 고민을 시작했습니다. 이제 저는 제 일에 집중하는 일이 남았습니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분위기도 화기애애 해졌으므로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내려놓을 무렵, 저는 광복절 전후로 제주도 여행 티켓을 끊습니다. 그리고 그 여행에서 실마리를 찾기 시작합니다. 제 실패 원인은 “재미가 없었다는 점” 이였습니다.


의미보단 즐거움, 깊이보단 재미


“형 없었으면 진짜 재미없었을 뻔했어요. 너무 감사합니다.”


 제주도 여행은 사실 저에게 하나의 도전이었습니다. 4박 5일의 일정 중 3일을 시끌벅적한 게스트하우스로 잡았거든요. 저에게 제주도 여행은 언제나 도보여행 아니면 조용한 카페에 가서 회고를 진행하는 시간으로 가득 차있던 여행이었어요. 그렇다 보니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더라도 조용하고 소박한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 버릇해왔습니다. 꼭 조용조용한 시간이 아니더라도, 혼자 여행하기를 좋아했어요. 혼자 건축물을 감상하고, 카페에 가고, 볕을 받고 독립서점을 갔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엔 ‘가능할까?’라는 질문이 들정도로 거의 매일을 파티로 잡아두었어요. 마지막 하루는 ‘그래도 버티면 마지막은 쉰다’와 같은 안전장치와 같은 날이었죠.


동기는 새로움이었어요. 새로운 환경에 나를 노출하면 어떤 결괏값이 나올지 궁금했습니다. 지금까지 경험한 ‘모임’ 이란 단어가 새롭게 변할지도 몰랐고, 나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살지 궁금하기도 했죠. 즐거움보다는 관찰이 목적이었고,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했던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처음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발을 들였을 때 얼어있었던 제 몸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렇지만 저는 살면서 듣도 보도 못한 저런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평생 ‘내향형이시죠?’라던 피드백을 받던 제가 ‘일단 외향형은 확실하다’라는 피드백을 계속해서 받았어요. 저도 사실 이런 사람인지 몰랐고, 시끌벅적한 공간을 나의 에너지로 채우는데 나름대로 힘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이틀차 부턴가는 ‘여기는 내 무대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갑자기 제주도 여행 이야기를 하는 건 나름대로 깨달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배운 건 다름 아닌 “의미보단 즐거움, 깊이보단 재미” 였어요. 목적으로 둔 ‘모임’의 개념이 달라지는 경험을 저는 하고 온 것 같았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의미와 목적을 중심에 두고 모인다고 생각했고, 재미는 저기 뒷전에 있는 상태로 쫓아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즐거움과 재미에 힘 점을 둔 경험을 하고 나니 시각이 좀 달라졌던 것 같아요. 재미를 이기긴 힘들었습니다.


해당 시각으로 지금까지 실패한 모임들을 돌아봤습니다. 분명 주체성은 확보가 됐는데 오래가지 못하는 책모임들을 떠올려봤어요. 왜 그 모임들은 오래가지 못했을까, 심지어 같은 목적이 있어도 왜 오래가지 못했을까 생각해 보면 재미가 없었습니다. 다른 공통적인 이유는 솔직히 못 찾았어요.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것뿐이었어요. 신나지 않았습니다.


제주도의 경험을 정리하며, ‘책모임’이라는 경험이 재미라는 메리트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긴 야, 지금 생각해 보면 “다닐만한 회사를 만든다”라는 제 목적에 책모임은 잘 부합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제야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밥을 같이 먹던 앱팀장님의 “아 축구 안 한 지 너무 오래됐는데…”라는 푸념이요. 이제 들을 귀가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3개월 차 사람을 모으다.


제주도를 다녀온 이후, 바빴던 프로젝트가 끝나고 업무가 정리되었습니다. 제 깨달음을 바로 몸으로 옮길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주변의 축구 구장들을 탐색했고, 시간대들을 둘러보았습니다. 한 번에 모아 볼 수 있는 플랫폼을 찾지 못해, 경기장을 찾는 일에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경기장을 찾아도 문제였습니다. 퇴근 후 축구를 하려는 직장인들이 얼마나 많았던지요. 평일 저녁의 시간이 전혀 나지 않았습니다. 


최소 인원을 맞추는 것도 걱정이었습니다. 축구(풋살)를 진행하려면 최소한 8명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저희 개발팀, 심지어 사내 전체 인원을 둘러봐도 남성은 10명이 좀 넘었습니다. 풋살을 진행하려면 한 사람, 한 사람의 취향과 취미가 맞아야만 했습니다. 시간과 취향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자발성이 모두 맞아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리스크를 걸어볼 만은 했습니다.


그리고 10월 초, 살펴보던 구장에 딱 1시간 자리가 났습니다. 예약을 고민하던 찰나, 앱 팀장님의 독려에 예약을 걸어버렸습니다. 솔직히 취소 위약금은 내가 내야겠다-는 마음으로 일단 예약을 진행했어요. 10월 11일,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DM을 보내 참여 의사를 살폈습니다. 그리고 10월 19일, 대망의 첫 경기를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꽤 성공적이었습니다. 전략팀과 재무팀, 개발팀 내에서도 앱팀과 백엔드팀 그리고 CTO님도 함께 참여하는 풋살 모임이 됐습니다. 머쓱하긴 했지만 대화할 일이 거의 없던 서로가 대화를 시작했고, 말을 트고 인사를 했습니다. 저 역시 친해지고 싶었던 다른 분들과도 이야기를 시작했고, 이후로도 개발적인 이슈나 문제가 있을 때마다 좀 더 편하고 쉽게 질문하고 답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성사된 첫 번째 매치. 개발팀을 넘어 타 팀끼리의 소통도 시작할 수 있는 좋은 계기였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는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서로에게 편하게 질문하고 대답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비록 제가 그들은 아니지만 개발팀 내 좀 더 편한 분위기로 의사소통이 가능해졌습니다. 연말 회고 당시에도 이 부분에 대한 긍정적 피드백이 존재할 뿐만 아니라, 축구라는 주제로 서로 스몰토크가 가능해지며 자연스러운 소통의 시작점이 됐습니다. 자발성과 재미, 이 두 가지가 맞닿아 만든 성과였습니다.


이후 IT 이슈에 대해 소통할 수 있는 사내 메신저 채널까지 파며, 개발팀 내 소통오류로 인해 개발이 의도된 대로 구현되지 않은 이슈들은 압도적으로 줄었습니다. (소통 오류로 인한 이슈가 제 기억으로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비록 개발팀 내 소통의 이슈들은 종종 있기도 한 것 같지만 이전에 있었던 소통의 부재로 인한 악순환은 압도적으로 줄어들어갔습니다.


한강이라는 이점, 어떻게 사용할까?


하지만 한 가지 약점이 있었으니 바로 여성분들의 참여였습니다. 최근 ‘골 때리는 그녀들’ 등의 축구 프로그램이 이슈가 되며 많은 여성분들이 축구를 하기 시작했지만 그럼에도 아직까지 저희 사내에는 축구 참여의 허들이 높은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3번 정도 이어진 축구 매치에서 여성 분들의 참여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먼저 떠오른 생각은 ‘여성분들의 참여도를 높인다’였습니다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발성과 재미가 결여된 TOP-DOWN방식의 참여 유도는 지속성도, 재미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시행착오를 발판 삼아 완전히 다른 아이템을 떠올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 번 시행착오를 겪으며 배운 것이 있었으니 바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정말 다행히도 앱팀 B님의 이야기가 도움이 됐습니다. 목요일 점심 1시간 30분마다 B님은 가끔 혼자 자전거를 타고 한강 다녀온다는 이야기를 흘려주셨습니다. 사람들이 해보자는 사고에서 그 이야기는 과거 어느 한 페이지에서 가벼운 탁구공처럼 튀어 올랐고, 저는 그 아이디어를 바로 낚아챘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DM을 보내 한강 갈 사람을 구했습니다.


걸어서 15분 정도 가면 이러한 풍경이 있습니다.

그렇게 11월 2일 한강모임이 성사되었습니다. 앱, 기획, 프런트 팀의 인원이 모두 모여 점심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정말 기뻤던 건 한강 나들이가 하나의 문화로 스며드는 느낌이 들었던 점이었는데요. 그다음 주, 앱 팀은 친목도모를 위해 한강을 다시 다녀왔습니다. 이후, 겨울에도 ‘봄 되면 한강 가자’는 의견이 계속 나올 뿐만 아니라, 봄바람이 불면 '다시 한강 갑시다'라는 의견이 나올 정도로 사내의 문화는 변화가 생겼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모임을 모으지 않았다면 해당 모임은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강이 아닌 전시라던가, 카페 탐방, 대화등등의 기획을 추진했다면 모이는 사람이야 있었겠지만 문화로 자리 잡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상상됩니다. 반대로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지리적 이점이 만났을 때는 조그맣지만 하나의 문화로써 자리 잡는 선례가 나타났습니다.


회사가 한강과 가깝다는 점에 대해서는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또 어쩌면 사람들이 밖에 나가는 점도, 다른 개발팀보다 여성분들의 비율이 좀 더 높다는 점도, 성적인 경계를 넘어 개발팀원들이 나들이를 좋아하는 점도 운이 좋았다고 솔직히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다만 해당 자원들을 잘 이어 붙일 때 그 시너지는 꽤 괜찮게 나는 선례를 저는 보았습니다. 


하지만 ‘조그맣지만 하나의 문화’가 회사 전체의 문화가 되는 사건이 있었으니, 어느 날 CTO님은 저를 따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줬습니다. “00님, 동아리 대표님이 공식적으로 지원해 주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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