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과 응원봉. 이 두 가지 단어는 언뜻 보면 이질적으로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얼마 전 국회의사당 앞에서 깊이 만났어요. 이를 깊이 생각했습니다. 전혀 만날 수 없을 것 같던 이 두 가지 키워드는 어떻게 국회에서 만났을까. 나름대로 고민해 본 결과를 나눠보고 싶습니다.
8년 전쯤 이 맘 때, 촛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해 소중히 촛불을 모시던 기억이 납니다. 겨울이라 유난히 빨리 찾아오던 밤, 촛불은 서로를 밝혔습니다. 누군가의 촛불이 꺼지면 옆 사람이 다시 붙여주고, 초가 다 타거나 실수로 잃어버리면 누군가 옆에서 초를 나눠주기도 했었습니다. 종이컵을 뚫어 바람을 막으려고 애썼지만 겨울의 바람은 종이컵을 뚫고 초를 꺼뜨리기 일쑤였는데, 그때마다 사람들은 초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 어떻게든 촛불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이번 시위에서 초보다 소중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응원봉이었습니다.
아이돌 팬들에게 응원봉은, 그때 제가 지켰던 초보다 더 소중한 것 같았어요. 그것이 어디 있든 말입니다. 이를 잘 들고 다니기 위해 응원봉 파우치를 살뿐만 아니라, 남에게 양도하거나 대여하기를 조심해하는 등 응원봉은 정말 중요한 아이템인 것 같았습니다. 물론 같은 팬들에게 적극적으로 빌려주는 팬도 있긴 하다-라고 말씀해 주실 수 있지만 저는 장소가 많은 걸 말해준다고 생각해요. 물론 사람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돌 응원봉은 각 집의 깊은 서랍, 가장 잘 보이는 곳, 아이돌들의 아이템을 모신 콧등 대부분 정말 소중한 곳에 모셔져 있어요. 그런 면에서 이 굿즈는 의외로 정말 소중하고 상징적인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저는 이 아이템이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돌의 추억을 함께한 아이템 같거든요. 응원봉은 그 아이돌의 콘서트를 떠올리게 해요. 그 아티스트가 뛰어놀던 무대를 떠올리게 하죠. 너무 감성적일 수 있지만 그 응원봉은 아이돌이 노래를 부르다 울컥하던, 땀 흘리던, 고맙다고 하던, 팬(나)과 함께 노래를 부르던 그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템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손흥민의 유니폼을 입고 영국에서 손흥민의 경기를 함께하고 응원했는데, 심지어 손흥민이 골까지 넣었다면 어떨까요. 평생 좋아하던 팀의 주 경기장에 가서 슬로건을 들고 응원했다면, 그런데 그 경기를 정말 멋있게 이겼다면 어떨까요. 집에 돌아와서 가끔 보는 유니폼과 슬로건은 그때 추억을 떠올릴 겁니다.
저에게 중요한 건 이들은 그 응원봉을 들고 시위 현장에 나왔다는 겁니다. 아무리 평화 시위라고 한들, 어쨌든 시위현장은 격하고, 약간의 격양 상태가 있으며, 남들에게 쉽게 흠집이 날만한 상황입니다. 이들은 왜 응원봉을 가지고 왔는가. 그리고 나는 왜 아이유 응원봉을 가지고 갈 생각을 하는가. 이 고민을 해봤어요.
제 옆에 있던 분들은 응원봉을 흔드는 모습이 남달랐습니다. 노래가 나오자 흔드는 모습이 소위 말해 ‘경력직’ 같았어요. 응원봉을 잘 알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꽤 오래되어 보이는 응원봉을 가지고 왔습니다. 저는 그분의 응원봉 연식과 ‘쪼’를 보며 대략 짐작했어요. 아 응원 경력 최소 5년 차구나.
아직도 현장에서 나오는 노래에 맞춰서 응원봉을 흔들던 그분들이 기억이 납니다. 마치 다들 알았다는 듯이요. 이후 영상들을 보니 다들 자체적으로 파트를 분배하여 화음을 넣는 등 소위, 경력직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신기하지 않습니까. 이들은 콘서트를 목적으로 그 자리에 모인 것도 아닙니다. 합창을 목적으로 모인건 더더욱 아닙니다. 그들이 같은 목소리를 냈던 건 같은 정치적 사안이었고, 그들이 들고 있던 건 촛불이 아닌 응원봉이었어요.
그렇다 보니 그들의 응원봉엔 사실 통일감이 없었어요. 촛불과 같은, 동일한 컬러와 높이가 아니었습니다. 각 팬들의 컬러들이 형형색색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죠. 그렇지만 거기서 하나 되어 그들은 같은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러면서 화음을 따라 다른 목소리를 냈습니다. 당시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저는 이후 몇몇 인터뷰나 트위터등에서 그 이유 중 하나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런 뉘앙스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군대에 가있는데, 그 아이돌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
모든 이들이 이런 마음으로 시위현장에 참여한 건 아닐 테지만, 이전에 함께 “사회정의”를 외치던, 그리고 거기서 시위의 동력을 얻던 분들과 다르게 MZ의 참여 방식과 동력은 좀 달랐어요. 응원봉을 들고 나온 이유는 다름 아닌, 내 사랑하는 아이돌이 고생하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이 시점이었습니다.
K-POP이 양지로 나오기까지에는 수많은 노력이 존재했습니다. 인식의 개선, 팬덤문화의 쇄신, 건강한 문화 구축, 팬과 아이돌의 좋은 소통방식 등등 무수한 역사가 그것을 뒷받침 했습니다. 저는 깊이 관여하진 않았지만 수많은 팬과 아티스트들의 노력아래 K-POP은 어느샌가 음지문화에서 양지문화로 올라왔고, 수많은 노력이 쌓인 결과 K-POP은 이제 하나의 문화로써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돌’이 꿈인 친구들이 무시를 받던 시대에서, 이젠 ‘아이돌’이 많은 어린이들의 꿈이 된 시대, 부모들 역시 이를 말리지 않는 시대로 변했습니다.
그 중요한 자리에 언제나 응원봉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티스트를 좋아하기 때문에 , 아티스트를 응원하기 때문에 흔드는 응원봉 말입니다. 응원하는 마음이 물리적인 힘을 받아 빛으로 나타나는 응원봉은 매 콘서트마다, 녹화 때마다, 팬미팅 때마다 그 자리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아이돌문화를 서서히 양지로 올렸습니다. 그렇게 아이돌에게 진심으로 흔드는 응원봉은 조금씩 대중들에게도 전달된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아이돌 문화를 비난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양지로 올라온 아이돌문화는 시위까지 영향을 미쳐 ‘임을 위한 행진곡’과 ‘광야에게’가 진지하게 울려 퍼지던 분위기를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로 변화시켰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응원봉의 출현은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저는 다시 위의 문장이 떠올랐어요. “지금 제가 좋아하는 아이돌이 군대에 가있는데, 그 아이돌이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요.”라는 문장 말이에요. 물론 시위에 나온 사람들은 아이돌 때문은 아닐 겁니다. 옆 사람이 다치지 않는 마음부터 시작하여, 내 아이, 내 친구, 내 동료들이 위협받지 않을 마음으로 나오거나 더 넓은 의미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지지하기 위해, 사랑과 평화를 이룩하기 위해 나온 분들이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이분들 역시 응원봉을 가지고, 빌리고 나왔어요.
여기에 응원봉을 흔드는 마음을 포개어보면 어떤 공통분모 같은 문장이 떠오릅니다. ‘응원봉은 그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에, 사랑하기 때문에 흔드는 것이다’라는 문장이요.
저는 다른 곳에서 사용하는 다른 모양새가, 사실 같은 곳에서 사용하는 같은 모양새로 변한 것 같았어요. 응원봉은 시위 현장에서나 콘서트 현장에서나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흔드는 용도로 사용된 것 같았어요. 저에겐 ‘지금은 비록 그 아티스트(아이돌)를 위해 콘서트를 가지 못하지만 당신의 안위를 위해 직접 행동하고 있어-. 그때 당시 내가 열심히 응원봉을 흔들었던 것처럼 여기서도 흔들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어요.
물론 단순히 빛을 내는 용도로, 꺼지지 않는 촛불의 대용품으로 가지고 온 사람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기 먼 곳에서, 집안의 성스러운 곳에서, 고이 모셔둔 곳에서 응원봉을 가져올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단숨에 집고 나온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아이돌을 응원하는 마음과 내 주변 사람들을 지키려는 마음이 비슷하게 이어져있다는 이 감각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한강작가의 말처럼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과 같은, 응원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연결해 주는 금실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아이돌 콘서트 현장의 놓였던 수많은 응원봉의 불빛과 국회 시위에서 놓인 다채로운 불빛은, 그 예술은 이어져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랑이라면요.
인도네시아에 있는 친구로부터 최근 아이돌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블랙핑크가 여기서 유명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히잡을 쓴 여성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를 당당히 ‘좋아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블랙핑크는 그들에게 구원과도 같다”-고 말입니다. KPOP이 아무리 상업적이라고 할지라도 누군가에겐 해방이고, 역설이고, 구원이었던 것이지요.
물론 KPOP의 모든 아이들이 비슷한 방식의 방향성을 띄진 않겠지만 많은 가사들이 해방과 자유를 외칩니다. BTS의 가사 “한 사람에 하나의 역사 /한 사람에 하나의 별 / 70억 개의 빛으로 빛나는 / 70억 가지의 world”라는 가사부터 소녀시대의 “특별한 기적을 기다리지 마 / 눈앞에선 우리의 거친 길은 /알 수 없는 미래와 벽 / 바꾸지 않아, 포기할 수 없어” 와 같은 가사들, “누가 뭐라 해도 난 나야 / 난 그냥 내가 되고 싶어” 혹은 “다른 문을 열어 따라갈 필요는 없어 넌 너의 길로 난 나의 길로” 와 같은 가사들 말입니다.
KPOP은 일상에서의 탈출구이자 누군가에겐 구원, 그리고 누군가에겐 희망이었어요. 그리고 거기엔 무엇보다 그 아티스트와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결국 이런 것들이 양지로 팬덤을 나오게 하고, 시위와 응원에도 합류하게 끔 한건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거기서 응원봉을 흔들게 한건 아닌가 싶습니다. 단순히 “내 아이돌을 지키겠다”는 마음부터 나와, 친구와, 주변 사람들의 해방을 원하는 마음까지요.
그러던 중 한강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소감을 보며 다시금 응원봉을 들고 흔드는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그 문장을 하나 소개해드리고 싶어요.
“세상은 왜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세상이 고통스러워서, 폭력적이어서, 해방을 원해서 응원봉을 들고 나온 팬들이 보여준 건 (동시에) 아름다운 모습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계엄이 두려워 며칠간 잠을 못 잤다는 친구부터, 사이렌 소리만 들리면 긴장하는 친구, 긴급재난문자만 보면 아직도 두렵다는 친구, 계엄을 내가 겪지 않았음에도 내가 끌려갈까 봐 무섭다는 친구, 시위 때 물대포를 맞아 정신을 못 차렸던 그때를 기억하던 친구 등 세상은 이토록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역설적이게도 국회에 응원봉을 가지고 간 건 그들이었어요.
동시에 세계는 그토록 아름다웠습니다. 응원봉을 들고 노래를 부르는 친구들, 핫팩을 나눠주던 친구들, 춥지 않냐고 안위를 묻던 친구들 역시 모두 그 친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응원봉을 흔들었어요. 콘서트 경력직 5년 차의 모습으로요. 그 경력과 바이브로요.
무엇보다 그들의 응원봉을 흔들게 한, 참여하게 한 경력은 사랑의 경력은 아닐까 싶습니다. 누군가를 진심 어리게 사랑하던 마음부터, 평화를 사랑하던 마음, 친구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까지. 그 마음들이 한데 모인 것 같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응원봉을 빌리기도 하고, 또 사기도 했어요. 참 신기하게도요. 본인이 아이돌 팬이 아닌데도요 심지어.
광장에서 응원봉은 누가 들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응원봉은 정말 응원봉의 역할을 어디에서든지 간에 다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빛과 빛으로 이어진 사랑의 모양은 응원봉의 빛으로 누군가를 응원하는데 쓰이고 있는 것 같았어요. 그 빛은 금실처럼 이어져 응원하는 쪽과 응원받는 쪽을 잇는 것 같았고요. 시위가 끝나도, 응원은 어딜 가나 이어질 겁니다. 누군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요. 제 응원봉은 어디에 쓰일까요. 여러분의 응원봉은 어디에 쓰일까요. 사랑의 경력을 부디 계속 쌓아가기를 응원합니다. 제 마음의 응원봉을 흔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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