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에 용기를 준 철학자 TOP3 (1)
손절 - 폭력적 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이 태어난다는 것
손절에 용기를 준 철학자 TOP3
우리는 왜 손절할까요? 자세히 보면 상황과 맥락은 모두 다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사람이 나에게 악영향을 끼친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손절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어른이나 주변 사람들은 “사람 귀한 줄 모른다” 라며 손절을 고민하는 우리를 비난하기도 하죠. 사실 우리 내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도 저 사람이 해준 게 얼만데’부터 그 사람과의 추억, 내가 그 사람을 믿고 의지했다는 것에 대한 실망까지 다양한 요소들이 우리의 손절을 방해합니다.
저도 정말 많은 사람들을 손절하며 살아왔고, 그때마다 큰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실진 모르겠지만 대학교 때 많은 사람들부터 중고등학교 친구들, 완전한 손절까진 아니지만 어느 정도 거리를 둔 부모님까지. 이들을 떠나며 나에게 들러붙어 있던 사회적 관습과 두려움이 강했었습니다.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가 아는 한, 인문학적으로는 손절을 좀 더 지지하는 것 같아요. 물론 인문학자들이 ‘손절’이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한 적은 없지만, 제가 스스로 손절을 지지한다는 근거를 찾았던 이야기들을 공유하려고 합니다!
그 사람으로부터 탈주한다는 것
우리가 손절을 고민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부정적 영향’ 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성격이 맞지 않거나 습관이나 가치관이 맞지 않아서 일 수 있지만, 폭력적이거나 일방적인 관계가 지속될 경우에 우리는 손절을 고민합니다. 여기서 이 고민을 깊이 한 사람 중 한 명이 ‘들뢰즈’라는 철학자라 들뢰즈를 가져와보았어요.
들뢰즈 철학의 핵심 중 하나는 바로 **탈주(deterritorialization)**입니다. 그는 모든 삶이 연결과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고, 어떤 흐름이 고착되거나 폭력적으로 변질될 때 그로부터 탈주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 같습니다. 더 나아가 기존 시스템에서 탈주해서 다시 새로운 무언가와 연결되는 것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본 것이죠.
그러면 단순히 탈주가 회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들뢰즈는 특정한 체계나 관계가 우리의 욕망을 억압하거나 왜곡할 때, 그 속에 머무르기보다는 새로운 연결을 찾아 나서는 것이 삶을 더욱 생산적이고 창조적으로 만든다고 보았습니다. 들뢰즈는 그런 의미에서 탈주를 하나의 용기로 본 것 같아요. 이와 관련된 개념이 바로 **리좀(rhizome)**인데요, 리좀은 고정된 중심이나 위계 없이 자유롭게 확장하고 연결되는 관계망을 말합니다
폭력적 관계는 들뢰즈가 말하는 리좀적인 연결을 파괴하고, 억압적이고 위계적인 구조를 강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손절은 단순히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묶고 있던 폭력적인 체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리좀적 연결을 찾기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어요. 위계 없는 방식으로 타인과 연결되어 새로운 모습으로 말이에요.
떠나지 않을 수 있는 대안과 그 한계
들뢰즈는 욕망이 억압당하는 것을 삶의 가장 큰 장애물로 보았습니다. 폭력적인 관계에서 욕망은 왜곡되거나 제한되기 쉽습니다. 이런 경우, 탈주를 통해 더 건강하고 자유로운 흐름 속으로 자신을 이동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이러한 과정을 단순한 도망이 아닌, 창조적인 재배치로 보았어요.
물론 한 사람과도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어떤 친구가 자꾸 나에게 취미를 강요해, 나는 거기서 벗어나 영화 메이트로 갈 수도 있고, 그러다가 영화취향을 강요해, 이번에는 여행 메이트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관계 맺는 상대가 다양한 방식으로의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그리고 내가 이미 상대의 지배욕의 대상이 되었다면 다양한 방식으로의 관계는 어려운 것 같아요.
결국 손절은 들뢰즈의 철학에서 억압적이고 고정된 관계로부터 탈주해, 새로운 흐름 속에서 욕망을 다시 발견하는 행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새로운 욕망과 연결되어 새로운 나를 찾고, 새로운 삶의 패턴을 만들어가는 거지요. 손절을 통해 얻어진 시간과 새로운 방향을 가지고 말입니다.
손절에서 새로운 나로
손절 이후, 새로운 흐름을 찾는 과정은 새로운 연결의 시작점이 됩니다. 억압적인 관계에서 벗어나게 되면, 우리는 다시금 자유로운 욕망의 흐름 속으로 자신을 위치시킬 수 있습니다. 새로운 관점과 연결되며 우리는 과거의 관계가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돌아보고, 그 관점을 통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새로운 연결과 가능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별 이후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책을 읽으며 단순히 이별의 경험뿐만 아니라 삶의 전반적인 부분을 돌아보며 자신의 과거를 재정립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들뢰즈는 삶을 고정된 구조나 위계가 아니라, 생성(becoming)과 연결로 이루어진 과정으로 보았습니다. 손절을 통해 우리는 단순히 관계를 끊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욕망과 감정을 새롭게 배치하며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을 만들어갑니다. 글을 쓰고, 새로운 사랑을 하고, 때때로 새로운 취미를 만들기도 합니다. 때로 새로운 운동을 배우기도 하고, 분노로… 새로운 사업을 해서 성공을 하는 경우도 있죠. 그 결과, 우리는 더 나은 공기를 마시며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실제로 건강하지 않은 관계를 손절하고 나서,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며 삶의 균형을 되찾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셨을 거예요. 이런 변화는 단순히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들뢰즈가 말하는 리좀적 연결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더 많은 가능성과 자유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이 과정은 단순히 도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용기 있는 선택이며, 나를 억누르던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더 풍요롭고 생산적인 삶을 추구하는 행위입니다. 새로운 공간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고, 억압적 관계에서 벗어난 욕망은 자유롭고 창조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냅니다.
결국, 들뢰즈가 말한 탈주는 새로운 세계와 자신을 발견하는 여정입니다. 손절은 이 여정의 첫걸음이자, 더 건강한 연결과 자유를 향한 삶의 선언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고정된 틀을 깨고, 새로운 흐름 속에서 더 나은 나를 만들어가며, 다시금 더 좋은 공기를 마시게 되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