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절에 용기를 준 철학자 TOP3 (2)
더 자유롭고 주체적인 나를 위해
우리가 손절을 고민할 때, 단순히 상대방을 탓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물론 상대방이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에 대해 책임을 묻고 나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에겐 나 자신도 돌아보는 기준도 중요했습니다. 내가 그 관계에서 상대방에게 어떤 기대를 걸었는지, 그리고 그 기대가 어떻게 실망으로 이어졌는지 생각해보는 과정은 내가 관계에서 어떤 욕심과 욕망을 가지는지 바라보는데 충분했습니다.
이런 고민을 할 때, 저는 라깡의 철학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라깡은 사람들이 상대방을 바라볼 때 상대에게 사회적 규범과 문화, 그리고 자신만의 기대를 투영해서 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진짜 그 사람과 관계 맺은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걸었던 기대, 이상, 환상과 관계 맺은 것이지요. 예를 들어볼까요?
• 이 친구는 끝까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거야.
• 내 부모는 나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거야.
• 이 번 남자친구만큼은 나를 죽을 정도로 사랑해 줄 거야.
이런 식으로, 우리는 관계 속에서 상대방에게 스스로 이상적인 역할을 부여합니다. 이 역할이 충족된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만족감을 느끼지만, 문제는 그 역할이 깨질 때 생깁니다.
문제는 이 환상이 언젠가는 벗겨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내가 기대한 역할과 다를 때, 우리는 충격을 받고 실망하고 때때로 멘탈이 나가 허우적거리기도 합니다. 라깡은 이 순간을 진짜(실재)를 마주하는 순간이라고 말합니다. 즉 실재는 실재는 우리가 관계 속에서 만들어낸 이상적인 모습과 기대가 깨지고, 상대방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입니다.
예를 들어:
• 부모님이 늘 완벽할 줄 알았는데, 그들도 실수하고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인간임을 깨달을 때.
• 친구가 내 이야기에 항상 귀를 기울일 것 같았는데, 어느 순간 그들이 나를 무시하거나 질투하는 모습을 볼 때.
• 연인이 나를 무조건 행복하게 해 줄 줄 알았는데, 사실은 나를 조종하거나 이용했음을 알게 될 때.
이처럼 우리가 상대방에게 걸었던 환상과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 실망과 혼란이 찾아옵니다. 이때 우리는 관계를 계속 이어가야 할지 손절할지 고민하게 됩니다.
신기한 건, 손절을 진행하며 오히려 자기 자신에게 걸었던 기대도 정리된다는 사실입니다. 손절을 통해 우리는 좀 더 우리가 스스로에게 걸었던 실망과 기대 역시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그 사람을 통해 채우려고 했던 욕망들을 우리는 스스로 마주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 정말 불쌍한 누군가를 계속 챙겨주며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환상을 유지하곤 했었습니다.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건 사회적으로 볼 때, 윤리적으로 볼 때도 나쁜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친구가 더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됐고, 저는 점차 그 사람을 끊어냈습니다.
신기한 건 그 사람을 끊어내기를 고민하기 시작할 때 저에게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욕심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이는 당시 관계를 맺을 때는 볼 수 없던 판단이었습니다. 저는 언제부턴가 저보다 커져버린 '나는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와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결국 그를 끊어냈습니다.
‘좋은 아들’, ‘좋은 딸’, ‘좋은 여자친구’, ‘좋은 부하’ 등 우리에게는 자신이 유지하고 싶은 수많은 환상들이 있습니다. 상대방들은 그것을 보고 우리의 이상적인 모습을 기대하거나, 때로는 이용하기도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역할을 끝없이 유지하려다 보면, 결국에는 스스로를 소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손절은 단순히 상대방과의 관계를 끊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 자신에게 부여했던 역할과 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이기도 합니다. 내가 상대방을 통해 채우려 했던 욕망과,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스스로를 얼마나 억눌렀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죠.
손절은 곧 내 욕망을 재배치하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라깡은 욕망이 단순히 나 혼자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손절은 관계의 틀을 깨면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욕망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손절을 통해, 더 이상 외부의 기대나 이상적인 역할에 끌려다니지 않고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다고 생각합니다.
이렇듯 손절은 무작정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손절 이후 잘 정리가 된 이야기는 오히려 자신의 취향과 단단한 내면을 만들었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손절을 통해 단순히 나쁜 관계만을 청산하는 의미만 가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을 지키는 좋은 손절은 나의 욕망을 다시금 바라보고, 내가 억눌린 것이 무엇이었고, 그래서 내가 좀 더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또 다른 기회일 수 있습니다.
결국, 손절은 단절이 아니라 새로운 연결을 위한 용기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 자유롭고 주체적인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손절을 고민하고 있다면, 그 끝에는 단순히 혼란과 슬픔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나와 새로운 가능성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