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생이니까 언니가 성공하기만을 기다려야지
"야 미친, 내 말 좀 들어봐 봐"
언니에게 전화가 오면 항상 듣는 첫마디다.
"어, 왜. 밥은 먹었어?"
"어. 방금 먹었는데, 내 말 좀 들어봐"
"어, 뭔데. 말해."
"야, 아니. 개 웃기다고. 힉힉. 오늘 엄빠 만났거든? 근데 힉힉. 개 웃기네. 엄마가 개 빡쳐 있는 거. 그래서 내가 아빠한테 엄마 왜 저렇게 화났냐고 물어봤거든? 근데 어제 아빠가 엄마 미용실에서 드론 날렸다는 거야. 파마 기계에 드론 부딪혀서 날개 다 부서질뻔하고, 바닥에 있는 머리카락 다 공중부양하고. 난리도 아니었다는 거. 미친개 웃기지 않냐?"
언니는 '하하하' 웃지 않는다. '호호호'도 아니고 '낄낄낄'도 아니다. '힉힉힉 웃는다. 웃을 때 숨을 들이마셔서 그렇다. 언니의 웃음소리는 마치 거친 수건으로 창문 문지르는 소리 같다.
언니는 문득 웃겼던 일이 생각날 때, 고민이 있을 때, 남자친구랑 싸웠을 때 내게 전화를 건다. 순전히 안부를 묻기 위한 전화는 거의 없다. 그래서 전화의 첫마디는 항상 "야. 내 말 좀 들어봐 봐"다. 그건 마치 "너는 나를 위해 태어난 내 동생이니, 지금 네가 뭘 하고 있든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당장 모든 일을 멈추고 내 말 들을 태세를 갖춰"라고 말하는 것 같다. 물론 내 일과 중 언니 전화를 받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그래서 매번 이번엔 또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를 하려나 기대한다.
아주 어릴 적, 내가 유치원생이고 언니가 초등학생이었을 때부터 언니는 친구이자 보호자였다. 맞벌이 부모님은 늦은 저녁에 돼서야 집에 들어왔고, 그전까지 우리는 서로를 돌봐야 했다. 사실상 언니가 나를 돌보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냉장고에는 항상 '동생이 언니에게 지켜야 할 10가지 규칙'이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어느 날, 나는 그 규칙 중 하나를 어겼던 것 같다. 언니는 어른이 아이를 혼내듯 벌을 주었다. 방에 있는 의자를 거실로 겨우 끌고 와 거기에 나를 앉혀 두고, 몇 분간 손을 들고 있으라는 벌이었다. 엄마 아빠가 없는 집에서 언니는 최고 어른이었기에 나는 그 벌을 묵묵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1분쯤 손들고 있었을까, 팔이 저릿하고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 같은 통증에 팔을 내리고 소리쳤다.
"나 팔 아프다고! 그만할래!"
규칙에 가자 없던 언니는 곧장 15cm 자를 가져와 손바닥을 때리기 시작했다. 속절없이 손바닥을 맞고 있던 나는 언니가 뭔데 나를 때리냐며 엉엉 눈물을 터뜨렸다. 엄마 아빠가 올 때까지 언니와 단둘이 있어야 하는데, 언니가 나를 미워하는 것 같아 서러웠다. 언니는 나를 안아주고 내 빨간 손을 문지르며 미안하다 말했다.
또 다른 날, 유치원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언니가 없었다. 1교에 하교하는 언니는 분명 3시에 내가 집에 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항상 거실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그날은 집에 오니 아무도 없었다. 언니가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안방, 작은방, 부엌과 화장실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진짜 아무도 없다는 걸 실감했다. 집에 누군가 올 때까지 나 혼자 있어야 했다. 갑자기 거실이 너무 넓게 느껴졌다. 정수리가 뜨거워지고 눈물이 차올랐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언니가 없어. 언니가 오늘 버스 타고 엄마 미용실 가자 그랬는데. 나 유치원 끝나고 집에 오면 바로 출발하자 그랬는데. 엄마 퇴근할 때 같이 차 타고 집에 오자 그랬는데. 집에 왔는데 언니 없어."
"언니 없어~? 언니 잠깐 어디 갔나 보다. 언니 찾으러 밖에 나가지 말고 좀만 기다리고 있어. 언니 곧 올 거야."
믿을 수 없었다. 잠깐 볼 일 보러 나간 거라면, 그건 내가 집에 오는 걸 보고 나서 했어도 되는 일이었다. 언니 세상에 나와의 약속보다 중요한 일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이 넓은 거실에 나를 혼자 두고 언니는 더 큰 세상으로 떠나버린 것이라 확신했다. 나는 해가 다 질 때까지 혼자 엄마 아빠를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꺽꺽 울며 거실을 돌아다녔다. 더 이상 이렇게 혼자 버틸 수 없다 생각했다.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전화기를 집었다. 그때 전화기 밑에 깔려 있던 쪽지를 발견했다.
'연주야. 언니 잠깐 친구랑 놀구 갈게. 너 집에 오기 전에 들어갈게. 근데 언니 없어두 놀래지 마. 언니 금방 갈게. 같이 버스 타구 엄마한테 가자. 정류장 분식집에서 새우튀김 사줄게.'
11살이었던 언니는 1시에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문득 깨달았을 거다. '어차피 동생은 3시에 올 테니 2시간은 자유다!' 초등학생에게 2시간은 떡볶이도 먹고,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반 남자애들 이야기를 실컷 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래도 동생이 먼저 집에 도착하면 또 혼자 엉엉 울어버릴 수 있으니, 빨리 집 가서 쪽지만 써 두고 나오자 생각했을 거다. 그렇게 친구들과 놀다가 3시가 훌쩍 넘어버린 거다.
언니가 헐레벌떡 집에 들어왔을 때, 내 얼굴은 이미 눈물 콧물 범벅이었다. 그리고 언니를 보자마자 온갖 저주를 퍼부었다. 언니는 내 눈물을 닦아주며 침을 꿀꺽 삼키고 말했다. "엄마한테 가자. 새우튀김 사줄게. 그만 울어."
우리는 58번 버스를 타고 엄마에게 향했다. 6624번 버스를 갈아타기 전, 정류장에 있는 분식집에 가서 새우튀김 두 개를 샀다. 게맛살을 새우튀김으로 만든 것으로, 새우는 하나도 들어가지 않은 새우튀김이었다. 튀김을 하나씩 들고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내가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근데 돈은 어디서 났어?"
"엄마가 너 튀김 사주라고 돈 구고 갔어"
'그럼 그냥 내가 사 먹게 나한테 돈 주고 가면 되는 거 아닌가.'
나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언니는 항상 옳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었다. 같이 슈퍼에서 빵을 사 먹어도 내가 고른 옥수수빵은 맛이 형편없는 반면 언니가 고른 고오스 초코빵은 황홀한 맛이었다. 포켓몬 스티커도 들어 있었다. 다음번에 슈퍼에서 내가 고오스 초코빵을 고르면 언니는 더 맛있는 빵을 골랐다. 언니는 항상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초등학교 입학 직전 크리스마스 선물로 부모님에게 받은 패딩도 마찬가지였다. 내 것은 숏패딩, 언니 것은 롱패딩이었다. 둘 다 같은 브랜드, 같은 핑크색에 길이만 다른 패딩이었다. 나는 키가 작아 맞는 롱패딩이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선물을 받자마자 내가 처음 한 말은 "내 건 왜 이래?"였다. 반응을 한껏 기대하는 엄마 아빠를 향해, 나도 공주 드레스 같이 발목까지 내려오는 패딩을 입고 싶다고 말했다. 언니랑 완전히 똑같은 걸 사줘야지 왜 항상 다른 걸 사주냐고, 왜 언니만 항상 더 좋은 걸 갖냐고 소리쳤다. 아마 내 것이 롱패딩, 언니 것이 숏패딩이었어도 상황은 같았을 거다.
언니 물건은 다 멋져 보였다. 언니는 항상 더 많은 사랑을 받고, 더 좋은 물건을 갖고, 더 옳은 선택을 하는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 받은 선물이 우리의 운명을 정해 버린 걸까. 지금도 겨울이 되면 나는 숏패딩, 언니는 롱패딩을 꺼낸다. 겨울에 롱패딩을 입고 줄줄이 김밥처럼 돌아다니는 건 멋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리본이 주렁주렁 달렸거나, 반들반들한 가죽 질감의 패딩을 입는다. 언니는 친구에게 선물 받은 아웃도어 브랜드의 롱패딩 하나로 겨울을 난다. 그러다 우리 둘이 만나는 날이면 언니는 말한다.
"야. 안 추움? 너 똥꼬 얼겠어. 개 멋 부리다가 얼어 뒤진다. 따뜻하게 입고 다녀"
그럼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턱에 힘을 주고 대답한다.
"하나도 안 추운데? 롱패딩 개 구려서 입기 싫은데?"
대학 졸업과 동시에 화장품 판매원으로 취직한 언니는 네일 팁 판매원, 백수, 바리스타를 거쳐 지금은 카페 사장님이 되었다. 가게 문을 하루라도 닫으면 월 수입이 간당간당 하다며 매일 오전 열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 일한다. 하지만 항상 손님이 북적하진 않다. 한가할 땐 가게 문을 바라보며 멍하니 손님을 기다린다. 그러다가 문득 웃긴 일이 생각나면 전화를 거는 것이다."야 미친. 내 말 좀 들어봐 봐. 힉힉힉" 창문 닦는 소리를 내면서. 그렇게 내게 모든 일화를 다 쏟아내고 나서야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다시 멍하니 가게 문을 바라본다.
재작년, 둘이 동시에 백수였던 시절을 생각한다.
"야. 뭐 하냐"
"나 면접 보러 나는 중"
"이따 만나서 카페 가실? 내가 살게. 나도 이따 면접 보러 가는데, 만나서 면접 썰이나 풀자"
돈은 없고 시간은 많았던 우리는 자주 만나서 사람은 왜 일을 하며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다. 둘 다 일 하기 싫고 커피나 마시며 놀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면접 본 회사의 사람들 성격은 좋아 보이지만 제시한 연봉이 형편없다는 이야기, 요즘 화장품 매장 면접에서는 중국어 가능 여부를 심심찮게 물어본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대화의 마지막 문장은 항상 같았다.
"우리 이렇게 시간은 많고 돈은 하나도 없어서 걱정만 했던 시절이 그리울 만큼, 둘 다 바빠졌으면 좋겠다"
그때가 정말 그리워진 지금, 나는 언니의 시간을 자주 생각한다. 매일 오전부터 새벽까지 몸을 분주히 움직이는 언니의 모습을 상상한다. 돈이 언니의 건강과 시간을 빼앗고 있다는 염려를 한다.
단 두 시간 만이라도 언니와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싶다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언니가 소처럼 일해서 아주 많은 돈을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나, 엄마, 아빠의 인생을 언니가 멋들어진 인생으로 탈바꿈시켜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 왜냐면 언니는 언니니까. 언니는 나의 영원한 친구니까 내가 심심할 때마다 나와 놀아줘야 하고, 언니는 나의 영원한 보호자니까 평생 날 돌봐주어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