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어쩌면 곧 이사를 준비하게 될 수도 있을거란 생각에 한동안 집을 손보지 않고 지낸 적이 있다. 방충망에 찢어진 틈이 보여도 그러려니, 카펫에 얼룩이 생겨도 뭐 어쩔 수 없지, 창틀에 먼지가 쌓여도 흐린 눈을 하며 거의 일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식물을 늘리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그러다 결국은 수빈이가 원하던 곳에 합격하며 이사가 다시 꽤나 먼 미래로 미뤄졌고 그 후로 얼마간 다시 집 구석구석을 손보고 재정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벽에 페인트를 칠하고, 가벽을 만들고, 주방 싱크볼을 교체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 낡은 캣타워가 눈에 걸려서 캣타워를 만들었다. 지금 집의 천장 높이와 가구 배치, 구조에 맞춰진 캣타워이다. 이걸 만든 지도 꽤 긴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애들이 우다다를 하다 촘촘히 감긴 삼줄에 신나게 스크래칭을 할 때, 가장 높은 층과 해먹에서 겁도 없이 깊은 잠을 잘 때 더할 나위 없이 큰 보람과 기쁨을 느낀다. 작년 연말이었나 올해 연초였나 에는 테이블을 만들었다. 직접 집을 지은 부부의 다큐를 보다가 너무 감격한 나머지 나는 테이블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단순하지만 규모가 큰 작업이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서 일주일 가까이를 잠을 설쳐가며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식탁 역시 시판되는 식탁에 비해 긴 길이와 좁은 폭을 가진, 이 집과 우리의 식탁 생활에 최적화 된 형태라 언젠가 이 집을 떠나 새로운 곳에 짐을 풀게 될 날에 대해 종종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집에 가서의 일은 거기에 간 뒤에 생각하기로 한다. 이번 주에 벌인 일 역시 꽤 충동적으로 결심했다. 사실 늘 그렇듯 오랜 시간 묘하게 거슬리고 불편함을 느끼던 구조가 있었기에 갑자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갑자기가 아닌. 언젠가는 해야 할 일이었지만 언제가 될 지는 아무도 몰랐던 프로젝트를 어느 날 아침, 바다에 다녀와 아침을 먹은 뒤 갑자기 실행에 부치게 되었다. 이유를 꼽자면.. 날씨가 좋았고, 아마도 이 이후론 얼마간 춥고 흐린 날씨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었다는 점이다. 좋은 날씨를 핑계삼아 나무를 사러 가고, 흐린 날씨를 핑계삼아 북유럽 사람들처럼 천천히 오래오래 가구를 만들어보겠다, 이런 의미였다고 할 수 있다.
포부는 크지 않았다. 원래 있던 선반 장이 나간 자리 뒷 벽에 딱 맞는 너비와, 기둥 하부에 발가락을 찧지 않는 크기로 선반 장을 짜 넣을 것. 각재끼리의 결합은 스크류를 사용하지 않고 끼워맞출 것. 중간의 판재는 테이블 상판을 집성하느라 구입한 비스켓 조이너를 사용해 결합할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기존의 선반장보다 덜 흔들릴 것.
결과적으로 천천히 오래오래 공들여 가구를 만드는 일은 불가능했다. 비를 비해 집 안에서 사부작사부작 톱과 대패, 끌을 이용해 나무를 다듬으며 온 집안에 나무부스러기를 흘리고, 그 위를 뒹굴어 털 구석구석 그 것들을 묻히고 다니는 바람이를 보니 따로 작업실을 마련하지 않는 이상 오랫동안 끌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정식 짜맞춤까진 아니지만 철물을 사용하지 않고 각재를 조립해서 꽤 큰 하중을 견디는 구조를 만드는 게 처음이라 내내 높은 긴장 속에서 작업했다. 0.3mm 굵기의 펜 선을 남기고 톱질을 해야 할지, 펜 선을 포함해 자를지를 고민해야 했다. 내 손작업 인생 역사상 단 한번도 요구되지 않았던 정밀함과의 싸움이었다. 끌과 대패 등의 날물을 정교하고 예리하게 관리하는 것이야 말로 목수의 가장 기본적인 자질이라는데, 내 끌과 대패는 테라스에서 비를 맞고 온통 녹이 쓸어 있어서 밤중에 숫돌을 찾아 그 것부터 갈아야 했다.
정교한 톱질을 위해 등대기 톱도 새로 구입했다. 이 톱은 절대로 절대로 녹슬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사용 후 다시 케이스에 넣어 벽장에 잘 보관해 두었다. 저번 톱도 이랬다면 좋았을 것을...
여튼 짜맞춤 결합을 위한 정밀한 톱이니까 나도 더 나은 톱질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큰 차이는 없었다. 그냥 조금.. 아주 조금 나은 정도였다. 체력적으로 피곤해 질 수록 톱질도 더 엉망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건 교정이 가능한 방향으로 톱질 선이 치우쳐서 나중에 고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반대 방향이었다면 비싼 목재를 새로 구입해야 하거나 실수로 생긴 빈 틈에 우드 퍼티를 한 가득 채워넣는 모질이같은 짓을 해야 할 수도 있었다.
반 밀리미터의 톱 선과 끌을 내려치는 단 한번의 망치질에 일희일비 하며 조금씩 지치기도 할 무렵, 대략적인 뼈대가 완성되었다. 생각보다 잘 들어맞는 부분도 있고 예상처럼 틈이 벌어진 부분도 여럿 있었는데 본드를 발라서 결합하고 클램프로 고정을 해 보니 틈이 많이 줄었다. 우드 퍼티를 미리 주문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비스킷 조이너로 홈을 파고 (이 때 실수가 좀 있었지만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다행히도!) 양쪽 다리와 판재들을 결합하는데 이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손은 두 개인데 7개의 조각을 한번에 연결하려고 하니 본드는 흐르고, 판재는 넘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 때 흐른 본드가 하도 많아서 나중에 오랜 시간 닦고, 긁고. 갈아내야 했다. 결국 클램프의 도움을 받아 조립을 완성하고 세우는데 무게가 상당했다. 부재 하나하나는 그리 무겁지 않은 작은 조각들이었는데 다 연결되고 나니 생각보다 많이 무거웠던 것이다. 또 얼핏 머릿속에 이사할 날이 떠올라 막막했지만 다시 한번, 이사할때의 일은 이사 할 때 생각하기로 했다.
길고 두꺼운 화이트 오크 다섯 장을 집성해 만든 저 무거운 테이블도, 벽에 달린 십수개의 선반들과 사실 덩치로 따지자면 테이블 못지 않은 캣타워도, 이번에 만든 이 선반장도 새 집에서는 그 공간에 딱 들어맞는 가구가 아닐 지도 모른다. 새 집에 가면 어느 벽에 어떤 선반을 달면 좋을 지, 이 공간을 최대로 활용하는 구조는 무엇일 지 알게 되기까지 또 새로운 한 참이 걸릴 것이다. 새로운 폭의 벽과 새로운 높이의 천장을 갖게 되겠지. 그 때가 되면 내가 만든 가구들은 또 다른 형태로 변화해 새 집의 구석 구석을 채우게 될 것이다. 튼튼하고 무거운 화이트 오크 식탁은 어쩌면 아래에 서랍을 만들어 빙수의 책상이나 내 작업대가 될 수도 있겠고 벽과 창가에 달린 길고 좁은 벽선반들은 원목에 거의 아무런 가공을 하지 않은 상태이니 집성을 하거나 길이를 줄이는 방식으로 무엇이던 될 수 있겠다. 캣타워 역시 몇 개의 벽선반 만을 더해서 규모를 키우는 게 가능하고, 천장 높이가 다르다고 해도 세로 구조목을 조금 자르거나 이으면 된다. 이번에 만든 선반장은 언젠가 양 옆과 뒷쪽에 벽을 세운 뒤 전면부에 경첩을 달아 그릇장으로 쓸 수도, 어쩌면 갖게 될 별채에 똑같은 선반을 서너개 더 만들어 내 그릇들을 전시하는 용도로 쓰이게 될 지도 모르겠다.
공간에도, 이웃들에게도 정이 많이 들고 많은 추억이 켜켜이 쌓인 이 집을 떠나는 일은 언젠가 분명히 일어날 일이라 그 날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지만 우선은 이 집에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나중에, 새로운 집에서가 아니라 이 집에서 찾을 수 있는 안락함과 편안함을 최대로 끌어내 우리 가족의 안식처인 이 공간을 최대한 따스하게 만들기로.
샌딩을 마치고 오일링까지 마무리 되어 내 살림들이 올라가고 나니 선반장이 더욱 마음에 든다. 오래 전 부터 우리 집에 있었던 것 같기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 모습 그대로 일 것 같기도 한 모양과 질감이다. 이렇게 내 손에서 탄생한 가구가 집에 하나 더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