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에서 꽃반지 만들던 스무 살의 우리가 벌써.
얼마 전, 수빈이의 서른 번째 생일이었다. 잠시 친구였고, 7년간 남자 친구였다가, 4년 전부터는 남편이 된 수빈이와 함께한 지가 벌써 12년째. '우리가 벌써 서른이네, 서른 하나네' 하며 우리가 겪게 된 온갖 노화의 증상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지만 여전히 나는 남편에게서 스무 살 앳된 수빈이를 본다. 파스타와 케이크를 좋아하고, 생일 선물로 복슬복슬한 양 인형을 받고 싶다고 말했던 남자애. 단정한 셔츠에 가디건, 청바지를 입고, 검정 크로스백을 매고 스니커즈를 신고 다니던. 이마를 덮은 앞머리에 아기 멍멍이처럼 생긴 눈으로 날 봤던 수빈이.
수빈이가 잠자고 운동할 시간도 없이 일하는 걸 보다 보니 생각이 복잡해질 때가 종종 있다. 지금은 일과 공부로도 유난히 바쁜데 사실 그뿐만 아니라 너무 많은 것들이 수빈이가 신경 써야 하는 일이다.
보험료, 렌트비, 세금, 신용카드 등 온갖 돈에 관한 것들부터, 자동차 관리, 큰 장보기, 나와 보리구름이의 건강상태, 임시 보호하는 고양이 관련된 일, 이웃(주로 윗집)과의 소통 역시 그렇다. 그런 일들에 치이는 수빈이를 볼 때, 꽤 자주 마음이 아리다.
어제는 문득 수빈이와 얼굴을 아주 가까이 대고 눈을 바라보고 있다가 수빈이가 싱긋 웃었는데 그 웃음에서 스무 살 수빈이가 보여서 눈물이 났다. 십일 년 전 내가 알던 그 어린 남자애의 어깨에 짐을 지우지 않고, 함께 꽃구경하다 풀 반지 만들고, 길거리 노점에서 머리끈을 고르고, 인형을 사고, 사진을 맘껏 찍고, 피아노를 치고, 고속버스에서 스윙칩을 먹으며 서너 시간 한가롭게 농담 따먹기나 할 수 있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때 우리가 너무 간절했던 것들. 밤마다 헤어지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되는 것. 함께 할 시간과 공간. 함께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먹고 뒷정리하는 저녁. 우리 모두에게 익숙하고 소중한 가구와 온갖 살림들. 다정한 고양이들처럼. 그때의 우리가 가지지 못했던, 카페에서 손을 잡고 앉아 머릿속에 그리던 그 많은 것들을 지금의 우리가 가졌다는 생각도 했다. 수빈이도 그렇게 생각해 주었으면.